요한복음 14장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두 번에 걸쳐 공부했고, 이어서 예수님에 대해서도 공부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예수님, 또 우리가 아는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하고 정리하면서 지금까지 알아왔던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넓어지는 기쁨을 누리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런 시간으로 끝내면 안 되고, 마음에 새기시고 계속 되뇌이시면 좋겠습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도 계속 말씀하시고,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하고 쭉 설명할 수 있도록 계속 연습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하나님 중 마지막으로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이번 주와 다음 주, 2주에 걸쳐 함께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는 아버지 하나님은 1등, 아들 그리스도는 2등, 성령님은 3등쯤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에 대한 이런 이해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령님은 태초부터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교회 시대의 주역이시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각 사람의 마음 깊이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바른 방향을 알려 주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이 시대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 올바른 성령 이해가 필요합니다. 은사주의 운동이 교회를 휩쓸고 지나가는 이 시대에, 말씀에 근거한 성령 이해를 통해서 인격적인 성령님과 그분의 사역, 그리고 은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기 바랍니다.
제가 말씀드린 내용 중에 한두 가지가 아주 중요한데, 첫 번째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 이 순서가 등수가 정해져 있다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이 어떠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시고, 성령은 예수님께서 "내가 보혜사 곧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하셨으니까 예수님이 보내야 올 수 있는 분이고, 예수님의 심부름꾼쯤 되니까 조금 더 하등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자리를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으로 관념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오해부터 일단 불식시켜야 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이 다 동등하시다는 것을 먼저 계속해서 생각하셔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성령에 대한 이해를 굉장히 저급하게 갖게 됩니다. 성령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 예수님과 똑같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성령님, 하나님, 예수님은 다 동등하신 분이시다. 이것이 삼위일체의 출발이거든요. 이것을 먼저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두 번째로 은사주의 운동이라고 되어 있는데, 요즘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신사도운동, 직접 계시, 직통 계시 등등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방언을 강조하고 예언하기를 즐겨하고, "하나님께서 지금도 은사를 통해서 역사하고 계신다"라고 말하는 것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다 배제하고 은사가 가장 신앙생활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말하는 은사주의 운동, 예를 들면 아말감 이빨이 금니로 된다거나, 기도해서 밀면 넘어진다거나 하는 것, 이런 것이 은사주의 운동의 하나의 일면이거든요.
그런데 이 부분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아말감이 금이 된다 한들, 능력 있는 목회자가 손도 대지 않았는데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내가 뒤로 넘어간다 한들, 그래서 그 다음 어떻게 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최종 목적은 내 삶의 변화에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최종 목적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서 내 삶의 더러운 부분이 다시 깨끗해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삶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은사를 가졌다고 해서, 그 은사를 체험했다고 해서, 아말감 이빨이 금니가 되었다고 해서 내 삶이 변화되었는가? 나는 과연 그리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이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은사주의 운동의 가장 심각한 오류가 바로 이 부분입니다. 은사에는 열광하면서, 사람들이 굉장히 따라가고 추종하고 쫓아가는데, 그런데 그분의 삶이 과연 예수께서 말씀하신 제자의 삶인가? 지난 시간에 예수님 공부할 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배웠습니다. 질 만한 십자가, 정말 무거운 십자가를 져서 "이건 참 무겁다" 하는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가고 있는가? 과연 도덕적인가? 세상 사람들이 볼 때도 "저 사람은 도덕성이 괜찮은 사람인가?" 이 문제에 은사주의 운동가들이 걸려서 대부분 다 넘어지십니다. 이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성령은 절대로 3등이 아니다, 그리고 성령을 공부하는 것은 은사주의 운동을 추종하고 따라가기 위함이 아니다, 이것을 먼저 기억하시고 그다음 공부를 하겠습니다.
성령이라고 하면 구약하고 성령하고는 관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관계가 굉장히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사의 연표를 가지고 세계사의 큰 흐름을 나누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성경을 공부하면서 크게 3등분으로 역사를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이전과 예수님 오시고 난 이후, 이렇게 일단 2등분으로 나눌 수 있고, 예수님 오시고 난 이후도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과 승천하시고 난 이후, 그러면 크게 역사는 3등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