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얼마 전 이를 뽑는 경험을 했습니다. 사건이라 표현할 만큼 두 가지 큰 교훈이 있었고, 생각보다 굉장히 아프고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어금니를 발치하면서 경험한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본에 충실한 것이 참으로 필요하다는 교훈입니다. 어금니가 오래전에 씌워져 있었는데, 그 씌워놓은 이가 잇몸에서 들떠 그곳으로 음식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썩기 시작했고, 치과에서는 이제 씌운 것을 뜯어내고 이를 뽑은 후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발치 후 치과 선생님께서는 양치를 평소에 제대로 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잇몸에서부터 시작해서 위로 닦아 올리면서 하루에 세 번, 삼 분씩 꼼꼼히 양치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 잇몸에 음식물이 끼어 썩고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치하는 법을 다시 배웠습니다. 나이 오십이 가까이 되어서 어릴 때 배워야 했던 양치질을 새롭게 배우며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기본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아주 기본적인 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까 큰 문제가 일어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깨달음은 평소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를 뽑고 나니까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불편했습니다. 자꾸 혓바닥이 그쪽으로 가서 허전해지고, 자기도 모르게 음식을 그쪽으로 씹기도 하며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계속 신경이 쓰입니다. 그러면서 인간관계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늘 함께 있던 사람, 늘 곁에 있는 사람이 너무 소중하고 중요한데, 그 사람에게 나는 정말 그 소중함을 표현하며 살았는가. 그 사람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 상실감과 공허함으로 혹시 낙심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기본에 충실한 인간관계, 사람을 사랑하고 곁에 있는 사람을 돌봐주고 손잡아주는 인간관계를 나는 평소에 성실하게 해왔던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사람을 잃고 나서 후회해 본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가까운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어가고 계십니까? 사랑하는 가족, 함께 있는 분들, 일터에서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는 동료들에게 어떤 관계를 맺어가고 계십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가족 같은 제자들에게 주님은 극진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이들에게 머물러 있지 않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잘하시니까 이 사랑이 널리 전파되고 퍼져가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의 날개 그늘 아래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어떻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지 깨닫고 은혜받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회당에서 권위 있는 말씀을 능력 있게 전하시니까 숨어있던 귀신이 견디지 못하고 자기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그 귀신 들린 사람을 치유하시고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말씀 가르치기를 다 마치시고 회당을 나오셨습니다. 그다음에 예수님이 심방을 가십니다. 그 첫 번째 심방이 예수님의 가장 사랑하는 최측근 제자였던 베드로의 장모였습니다.
베드로의 집에 가니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워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 그 여인을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아마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첫 번째 심방을 보고 이런저런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첫 번째 하신 심방이 가장 가까운 제자의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첫 심방이 가장 가까운 사람의 집에 가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가치 판단을 유보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선과 악의 문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이 이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하시는 방식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극진하게 챙기고 돌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만약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가 이제 막 주님을 따르기 시작했는데, 그 가정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장모의 열병입니다. 이 때문에 가정의 모든 일이 다 멈추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가정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신다면, 예수님이 신경 써주지 않고 고쳐주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제자인 베드로가 주님을 마음 다해 따를 수 있겠습니까? 걱정이 되어서, 염려가 되어서 주를 따를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가장 심각한 베드로 가정의 문제부터 해결해 주시고 그리고 나서 너는 나를 따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예수님을 닮는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행동,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 모두를 다 따라가기를 소망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관계도 가장 가까운 관계부터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가까운 가족, 사랑하는 자녀, 남편, 아내, 일가친척, 늘상 만나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어떻습니까? 그들의 문제를 내 문제로 여기고 계십니까? 내 자녀의 아픔과 내 남편, 내 아내의 고민과 걱정을 나도 함께 끌어안고, 그 고민을 내가 해결해 주겠다고 함께 밤새워서 염려하고 울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그건 그들의 문제이고 나는 지금 내 일이 바빠서 내 사랑하는 가족의 문제를 함께 고민할 시간이 없다며 애써 외면하고 계시지는 않으셨습니까?
성경은 가까이 있는 자들의 문제를 살피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을 보시면 말씀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눈에 보이는 가족과 형제, 가장 가까이 있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표현하신 것은 눈에 보이는 제자, 가장 가까이 있는 제자들을 극진히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를 내 문제로 끌어안고 이 문제를 내가 해결하겠다 하시면서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족을 주셨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을 지극히 사랑하라고 주셨지 않겠습니까? 그들을 지극히 사랑하며 하나님 사랑을 표현하라고 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