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_3394.JPG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영화가 있다. 실존하는 인물이나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다룬 작품이 그러하다. 하지만 어떤 영화는 해당 문구를 쓰지 않았음에도 지극히 사실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가벼운 하이틴 영화를 찾다 우연히 마주하게 된 낯선 작품, <폴아웃>처럼.

네이버에 검색해도 전혀 정보가 나오지 않는 <폴아웃>은 하이틴 영화다. 차를 타고 신나게 노래를 들으며, 학교 내 SNS 스타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는지와 같은 귀여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등교한다. 화장실에서 마주친 SNS 스타를 힐끗 쳐다보기도 한다. 하지만 밖에서 들리는 의문의 소리. 탕, 탕, 탕. 기존 하이틴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던 이야기는 곧 완전히 바뀐다. 주인공 ‘베이다’와 SNS 스타인 ‘미아'는 황급히 변기 위로 올라가 숨는다.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은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꽤나 자주 나온다. 남의 나라에까지 전해질 정도의 큰일이라면, 해당 국가에서는 얼마나 잦은 일일까. 대부분의 총기 사건이 학교에서 일어난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과 같은 영화를 통해 하나의 상징이 된 미국의 하이틴은 사실 분홍빛이 아니었다. <폴아웃>이 총기 난사 사건이 휩쓸고 간 후의 리얼 하이틴 스토리를 보여준다.

다시 춤을 출 수 있게 될 때까지 슬픔을 감내하는 방식은 아이들별로 다르다. 누군가는 조용히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는 밖으로 나가 싸운다. 베이다는 전자에 속한다. 베이다의 절친인 닉은 관련 법안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총기 규제 시위를 주도한다. 베이다와 함께 생존한 미아는 베이다와 같은 방식으로 그날의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한다. 서로 완전히 다른 줄 알았던 두 사람이 함께하게 되는 이유다. 반면, 베이다와 닉은 자연스레 멀어진다. 영화 초반 함께 웃으며 노래를 부르던 친구보다 잠들 수 없는 밤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 낯선 친구가 다시 춤을 추고 싶게끔 만든다.

IMG_3423.JPG

베이다는 총질한 사람 하나 때문에 6분 만에 내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말한다. 낙엽만 떨어져도 웃을 나이에 베이다는 매일 같이 가쁜 숨을 내쉬며 일어나고 밖을 나서는 것도 두려우며, 당연하게도 학교로 돌아가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다시 간 학교에서는 마약으로 하루를 버티고 환각에 펜을 씹는다.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그날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까 오줌도 참는다. 그러다 캔이 찌그러지는 작은 소리에도 놀라 바지에 실수를 하고 마는 베이다의 인생은 그의 울분 그대로 완전히 망가졌다. 이런 ‘베이다’의 하루들을 보다 보면, 마지막 즈음 울먹이며 얘기하는 ‘잊고 넘기기엔 너무 힘들다’는 말이 비록 내가 해결하기 어려운 남의 나라 문제라고 한들 관심 갖고 찾아보게 만든다.

<폴아웃>이 지극히 사실적인 이유 중 하나는 결말에 있다. 베이다는 춤 레슨에 간 미아를 기다린다. 그 모습은 총기 난사 사건 이전과 비슷해 보인다. 웃으며 미아와 문자를 나누는 표정이 하이틴스럽다. 그러나 이내 핸드폰에 뜬 알람 하나. ‘오하이오주 고교 총기 난사로 12명 사망 확인’이라는 헤드라인이다. 또 다른 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에 베이다는 가쁜 숨을 몰아쉰다.

총이 없는 한국이기에 <폴아웃>이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아주 가깝다. 총기 난사 사건은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일 같이 살해된 여성의 소식을 듣는다. 가족으로부터, 애인으로부터, 스토커로부터 혹은 성범죄로 겪고 스스로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만, 법은 여전히 똑같다. 변하지 않는 체계에 대한 분노는 국적과 상관없이 가쁜 숨을 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