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16:4-6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자웅을 겨루던 삼국시대, 그때의 전략적 요충지는 한강 유역이었습니다. 한강을 중심으로 한 땅을 차지하는 나라가 삼국의 패권을 쥘 수 있다고 여겼기에, 여러 나라가 앞다투어 한강 유역을 차지하려 분투했습니다. 가장 먼저 이 지역을 차지한 나라는 4세기의 백제였습니다. 백제는 강한 군사력과 안정된 국내 정치를 바탕으로 한강 유역을 장악하고, 일본과 무역하며 그 위세를 떨쳐갔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도 채 백 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북쪽에서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시대를 거친 강력한 고구려가 남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장수왕은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기며 계속해서 남진했습니다. 5세기는 고구려의 시대였습니다. 한편, 남쪽의 신라는 그 당시 가난한 변방의 작은 나라에 불과했습니다. 4세기 백제가 발흥할 때 신라는 국가의 기틀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차근차근 하나하나 이루어가기 시작합니다.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의 시대를 거쳐 약 백 년 동안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백제와 동맹을 맺기도 했고, 바다 건너 당나라와 동맹을 맺으며 자신들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갔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백제는 타락했고, 고구려는 내분에 휩싸입니다.
신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차례대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며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습니다. 결국 삼국통일은 가장 먼저 시작한 백제도 아니었고,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고구려도 아닌, 가장 늦게 출발한 신라가 이루게 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빨리 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보다 한 걸음이라도 앞서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야 내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긴 인생에서 변수는 무수히 많습니다. 가장 앞섰다가 가장 먼저 망한 백제가 될 수도 있고, 늦게 출발했지만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신라가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읽은 하나님 말씀에서도 우리 신앙인들은 주변 사람들이 앞서가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하나님께서 알려주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고 소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창 16:4)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임신했습니다. 얼마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까? 자연의 법칙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고 결혼하고 동침하면 자녀를 낳는 것, 그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자연스러움을 바라보는 사래의 마음입니다. 하갈에게는 이토록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 왜 나에게는 자연스럽지 않고 쉽지 않은가? 왜 나에게는 이토록 힘겹고 어려운 일인가? 이것을 바라보는 사래의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사래는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출발해서 하란까지 오는 동안 줄곧 자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실 때 두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땅의 약속과 후손의 약속이었습니다. 땅의 약속에는 아브람이 사실 관심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후손의 약속에는 마음이 활짝 열립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그 약속을 믿고 가나안 땅에 왔는데, 가나안 땅에 온 지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자녀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갈에게는 그것이 그토록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동침하매 임신하였더라.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쉬운 일이 왜 나에게는 자연스럽지 않고, 왜 나에게는 쉽지 않은가?
우리 주변 사람들은 하는 것마다 잘되고 쉬운 일이 나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하는 것마다 꼬이고, 하는 것마다 넘어지고, 변변하게 무언가 이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때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사래가 사실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래가 시작해서 아브람에게 말합니다. "내 여종 하갈을 당신에게 줄 테니 그를 통해서 자녀를 낳으라"고. 그런데 막상 그들이 바라고 소망했던 일이 현실이 되고 나니, 그것을 마음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갈등이 일어납니다. 사래는 이 갈등을 두 가지 방향으로 해소하려고 했습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창 16:5)
아마 아브람이 표정 관리를 제대로 못한 것 같습니다. 아브람이 눈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래가 먼저 시작한 일이고, 그 시작한 일대로 임신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래서 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사래가 그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화를 냅니다. 불같이 화를 냅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제 그 화는 하갈에게로 향합니다.
"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당신의 여종은 당신의 수중에 있으니 당신의 눈에 좋을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 (창 16:6)
하갈도 사람이 변했습니다. 이전에 그렇게 말 잘 듣던 하갈이 여주인을 멸시합니다. 그러자 사래가 견디지 못하고 하갈을 학대했고, 하갈은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아마 이렇게 된 이후에 사래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자기 연민의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래에게는 이렇게 어려운 일이 하갈에게는 이토록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라니. 그것을 보고 사래는 견디지 못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습니다. "하나님, 제가 뭘 그리 잘못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란에서 떠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십 년 동안 붙들고 기도했는데, 롯도 아니라 하시고,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도 아니라 하시는데, 그럼 하나님 왜 저에게는 자녀를 주지 않으십니까?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쉬운 일이 왜 나에게는 이토록 어렵단 말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경험을 할 때, 다른 사람은 참 쉬운 일이 나만 힘들고 나에게만 어려울 때, 다른 집 아이는 시험에 잘 합격하고 취직도 잘 되고 하는 일마다 잘 되는데 나는 잘 안 되고, 내 사업은 손대는 것마다 잘 안 될 때,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어떻게 말씀드립니까?
성경을 보면 수많은 믿음의 위인들이 이런 문제로 깊이 고민합니다. 특히 악인의 번성을 바라보는 선한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의 필생의 숙적은 사울이었습니다. 다윗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궁궐에서 쫓겨납니다. 다윗은 십수 년을 광야를 헤매고 다녀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에게 기름 부어 "너는 왕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빨리 왕으로 세워주셔야 하는데, 기름 부은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왕이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