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인을 멸시한지라

본문: 창세기 16:1-6

현대 사회를 정의하는 여러 표현 중 '초연결 사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터넷과 각종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여 우리 모두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집 밖에서도 집안의 가전제품을 통제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일이 지금 현실로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온 세상이 이처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멀리 떨어진 두 나라가 전쟁하고 있는데, 그 전쟁 때문에 우리까지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물가가 오르고, 기름값이 치솟고, 증시가 폭락합니다. 전 세계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듯이 영적인 세계, 특히 죄의 문제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죄를 한 번 지으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가 우리 인격 속에 들어오면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한 번 지은 죄가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세 번이 되어 계속해서 우리를 죄의 늪으로 빠뜨리며 인격 자체를 파괴해 버립니다. 한 인격이 파괴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가족 공동체 안에서 한 사람이 죄로 넘어지면 그 다음 사람, 또 그 다음 사람으로 이어져 결국 가정 전체가 죄로 파멸하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한 집단이나 공동체가 죄로 물들면 시간이 지나면서 깨어 있지 않으면 교회 공동체 전체가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의 가정이 그렇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불러 가나안 땅에 데려다 놓았는데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죄를 지은 것입니다.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애굽에 가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죄가 죄를 낳았습니다. 거짓말의 결과로 물질을 얻었고, 그 물질 때문에 롯을 잃었습니다. 물질과 함께 딸려 들어온 것들 때문에 아브람의 가정이 지금 심각한 국면에 처해 있습니다. 한 번의 죄는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해답을 찾고 새로운 방향을 잡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너지는 가정, 함께 서야 할 믿음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창 16:2)

사래가 먼저 시작했고 아브람이 받아들였습니다. 사래가 하갈을 아브람에게 주어 그 가정에 자녀를 생산하고자 했습니다. 만약 순서가 바뀌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브람이 먼저 시작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브람이 "하갈을 통해서 자녀를 낳아 봅시다"라고 말했다면, 이 일은 결코 성사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람이 먼저 시작했다면 사래가 반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래가 시작했기 때문에 이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사래가 이렇게 말하는데 아브람은 어떤 반대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여 버렸습니다. "이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잠깐 멈춰 봅시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런 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이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이 가정에 죄가 들어왔고, 아브람도 같이 넘어지면서 동시에 이 가정은 심각한 국면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기억나는 것은 에덴동산에 죄가 들어올 때입니다. 하와를 통해서 아담이 함께 무너지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 3:6)

뱀이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남편 아담에게 선악과를 줍니다. 아담도 저항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한번 걸러 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것인데 왜 이걸 먹었습니까?"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냥 아내가 주는 것을 그대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함께 죄를 지었습니다. 한 사람이 무너지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제대로 서 있지 못해서 동시에 함께 무너져 내렸습니다.

간혹 우리 가정을 보면 영적인 주도권을 한 사람에게 완전히 일임해 놓은 가정이 있습니다. "내 남편이 목회자이기 때문에, 내 남편이 교회 장로이고 집사이기 때문에, 남편의 가정이 믿음 생활을 잘 아는 3대, 4대째 신앙생활 했던 가정이기 때문에 내 남편이 하는 말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고 남편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무너지면 어떻게 됩니까?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아내가 성경을 십독했기 때문에, 교회에서 모든 봉사를 열심히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우리 아내를 다 잘한다고 칭찬하기 때문에 신앙적인 부분은 당신이 다 알아서 책임지십시오. 저는 그냥 따라가겠습니다." 만약에 그 아내가 넘어지면 그 가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래가 무너지고 이어서 아브람이 무너지고, 하와가 무너지고 이어서 아담도 무너지고. 만약에 아브람이 제대로 서 있었다면, 아담이 제대로 서 있었다면, 이 가정은 이런 식으로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 사람이 무너지면 한 사람은 제대로 서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사람이 무너지면 "그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세워 주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냥 속절없이 온 가정이 한꺼번에 다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영적 일치를 이룬 마노아의 가정

사사 시대에 단 지파의 마노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사 시대는 말기로 갈수록 타락해갑니다. 사사 시대 말기에 미덕은 자녀를 많이 낳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서 자녀를 많이 낳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첩을 두었습니다. 한 남자가 여러 아내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사사들까지도 그랬습니다. 자녀를 심지어 수십 명을 낳았습니다. 그래 놓고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이것이 그 사회, 그 당시의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단 지파 마노아는 결혼한 후에 자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 사회 분위기에 따르면 다시 장가들어서 자녀를 낳으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대로 믿음의 정절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두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이 자녀를 주시면 감사하고, 아니면 그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났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삿 13:3-4)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났습니다. 자녀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얼마나 기쁩니까? 얼마나 행복합니까? 이제는 잔치를 벌여도 좋을 일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마노아가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 아내에게 나타나신 여호와의 사자가 나에게도 한번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내에게는 말씀하시고 왜 저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정말 우리 가정에 자녀를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면, 하나님 저에게도 나타나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아이를 어떻게 길러야 할지를 저에게 깨닫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 구했고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납니다.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삿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