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외치는 사람들 (막 11:7-11)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침공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한 편에 서고,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이 연합군을 이루어서 약 4년 동안 싸웠습니다. 결과는 연합군의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났다고 해서 전쟁이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쟁 배상금 문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19년 6월에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됩니다. 전쟁 당사자들이 함께 모여서 어떻게 전쟁 배상금을 분담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독일에게 부과된 전쟁 배상금은 1,320억 금 마르크였습니다. 그 당시 규모로는 거의 천문학적인 액수였습니다. 그 당시 독일의 1년간 세금 수입이 60억 금 마르크였으니, 단순히 계산해도 약 22년 동안 세금 전부를 고스란히 갖다 바쳐야 해결되는 거대한 금액이었습니다.

이렇게 전쟁 배상금이 매겨지자 그때부터 독일은 절망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끝났구나, 특히 젊은이들은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열심히 아껴도 그것은 고스란히 전쟁 배상금으로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모두가 낙심한 채로 세월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때 그런 틈바구니를 비집고 일어서서 정권을 잡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아돌프 히틀러였습니다.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의 무효화를 주장합니다. 갚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희생양을 찾았습니다. 유대인이었습니다. 그 당시 자본과 언론을 장악하고 있었던 유대인들 때문에 우리 민족이 이렇게 되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사실 터무니없는 논리였지만 희생양이 필요했던 독일인들, 그리고 영웅이 필요했던 독일인들은 히틀러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망과 낙심, 민족주의와 선동가적 기질을 가진 히틀러가 함께 결합해서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1차 세계대전 이후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없었습니다. 왜 우리가 전쟁에 졌는지, 왜 우리가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되었는지 이런 반성이 없었고 희생양만 찾았기 때문에 그들은 또다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1. 영웅을 찾는 사람들

오늘 읽은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 시절의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유대인들은 똑같이 영웅이 필요했습니다. 아주 힘겹고 어려운 세월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의해서 나라를 빼앗기고 그들은 자존심이 밑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도대체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영웅이 필요했습니다. 영웅을 찾았는데 그 영웅 노릇을 할 수 있는 분이 눈에 보였습니다.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에게 선한 손길을 베푸는 분이었습니다. 이분이야말로 우리의 영웅이 되실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나귀 타고 입성하시면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입성 때 벌어졌던 일과 입성 이후에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민중들의 마음속 깊이 있는 그들의 탐욕을 보게 될 것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우리의 삶을 새롭게 결단하기를 원합니다.

나귀를 가져온 두 명의 제자들은 안장을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서 나귀 등에 얹고 예수님을 그 위에 타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합니다. 여러 사람들이 길바닥에 자기 겉옷을 깔아 놓습니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메시아를 영접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소리 높여 외칩니다. 오늘 본문 9절과 10절입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그들은 다윗의 나라를 꿈꾸고 있습니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사실 이때 이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던 이때보다 다윗의 나라는 천 년 전에 있었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나라를 그들은 꿈꾸고 있습니다. 다윗의 나라가 영광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전장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다윗의 시절에 여러 나라들을 복속시켰습니다. 갈 때마다 승리했습니다. 찬란했던 영광의 나라였습니다. 다윗 왕국의 백성이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자부심이 넘쳤습니다. 그렇게 찬란했던, 위대했던 나라로, 천 년 전의 나라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분이 오늘 지금 나귀 타고 입성하시는 저 예수님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지금 그들의 자존심은 로마인에게 갈갈이 찢겨 있었고 짓밟혀 있었습니다. 식민지 처지를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הוֹשִׁיעָה נָּא)!" 호산나의 뜻은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입니다. 이제 우리를 이 지긋지긋한 식민지 압제에서 구원해 달라는 간절한 외침이었습니다.

1-1. 반성 없는 열망

우리는 이들의 외침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이들의 외침이 정당합니까? 아니면 정당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식민지 백성이 이제 우리를 식민지에서 해방해 달라고 자기의 영웅으로 생각한 분에게 외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만약 그 자리에 우리가 있었더라도 우리는 호산나 하고 외쳤을 것입니다. 식민지 생활이 너무 비참하고 치욕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이들의 무서운 죄성을 보아야 됩니다. 아주 심각한 죄성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반성이 없었습니다. 왜 우리가 식민지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헤매고 있어야 되고, 600여 년 동안 식민지의 삶을 벗어날 수 없는지에 대해서 자신의 삶을 뿌리 깊이부터 반성하는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식민지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 시절 이때로부터 약 6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전 586년에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깁니다. 주인만 바뀝니다. 바벨론에서 페르시아로, 페르시아에서 그리스 제국으로, 그리스에서 로마로 주인만 바뀌었지 그들은 약 600여 년 동안 여전히 식민지였습니다.

1-2. 근본 원인의 망각

최초에 그들이 식민지가 될 때 그들은 국력이 약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우상숭배 때문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에게 무릎 꿇고, 탐욕 때문에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더 잘 살기 위해서, 돈 때문에, 물질 문제 때문에 엎드렸습니다. 우상숭배에 엎드리면서 그들은 영적으로 타락했고, 도덕적으로 타락했고, 성적으로 음란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냈지만 선지자들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선지자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그들을 하나님은 그냥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나라를 빼앗고, 깨닫게 하시려고 나라를 식민지로 삼아 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최초의 원인이 되었던 우상숭배, 탐욕의 문제, 물신 숭배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600년 동안 그대로 그 문제는 오래된 해묵은 문제로 마음속 깊이 뿌리내려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산나!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 해방을 주십시오! 식민지 백성으로 부끄럽습니다!" 이런 말만 외치고 있었습니다. 왜 식민지가 되었는지 모르고, 왜 600년 동안 이런 상황이 지속되어 있는지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 없이 자꾸만 해방만 갈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에 나라가 독립이 된다 해도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나라가 독립을 한다 한들 그들은 여전히 우상숭배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여전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여전히 물질이 최고의 우상으로 있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또다시 나라를 빼앗아야 됩니다. 깨닫게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나라의 주권 회복은 먼 나라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가서 죄 문제를 해결해야만 그들의 그다음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죄 해결임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그들의 민족 해방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뒤집어진 것입니다. 틀어져 버린 것입니다. 여전히 이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정치적 해방자로 생각하고 "호산나! 구하옵나니 이제 우리를 구원하소서!"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