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황제였던 나폴레옹은 1769년에 태어났습니다. 그가 스무 살이 되던 1789년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납니다. 혁명 이후의 프랑스는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이 혼란했던 시기를 나폴레옹은 잘 이용했습니다. 그의 탁월한 정치적 감각과 실력으로 정적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고 제압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최고의 자리인 제1집정관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형식적으로는 공화정이었지만 내용상으로는 완전한 1인 독재 체제를 공고히 해 갔습니다.
그의 1인 독재를 지원해 주는 여러 그룹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그룹이 예술가 집단이었습니다. 그 예술가들을 나폴레옹은 잘 대접했고, 예술가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선전하고 선동하는 일에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자크 루이 다비드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1802년에 나폴레옹을 그린 이 모습이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나폴레옹'이라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우리에게 나폴레옹을 기억하는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백마를 탔습니다. 그리고 힘찬 군주의 모습을 보입니다. 붉은 망토를 둘러쓰고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본 나폴레옹은 마음에 아주 들었습니다. 다섯 점을 더 주문해서 유럽 각지로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실 이 그림의 역사적 배경은 1800년입니다. 알프스 산맥을 넘어서 이탈리아를 원정하러 갔는데 제2차 이탈리아 원정에서 전쟁에는 실패했습니다. 지고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지고 돌아왔던 그 패배의 모습은 이 그림에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고 돌아온 이후에 반성이나 잘못된 참회의 모습은 없고 오히려 강력한 군주의 모습만 그려 놓았습니다.
나폴레옹 사후에 들라로슈는 이 그림을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재구성합니다. 고증을 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사실은 이런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노새를 탔습니다. 초라한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을 넘고 있습니다. 분위기도 음산합니다. 전쟁에서 지고 돌아올 것 같은 불길하고 불안한 느낌의 그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그림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나폴레옹이라고 하면 앞에 보았던 그림, 그것이 나폴레옹의 힘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이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고 1807년 나폴레옹의 대관식 그림도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나폴레옹이 조세핀에게 황후의 관을 씌워 주는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점이 문제입니다. 사실 황제의 대관식에서 하이라이트는 교황이 황제 머리에 손을 얹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복 기도해 주는 장면, 그 시간이 하이라이트입니다. 하지만 그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황제가 교황 앞에 무릎 꿇는 것을 그림으로 남기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 오히려 황제가 스스로 황후의 관을 들고 조세핀에게 관을 씌워 주는 이 모습이 왕의 권위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라 해서 이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그는 프랑스 군대 100만 명을 전쟁으로 몰아내어서 죽음으로 몰아냈던 사람입니다. 나중에 실패한 이후에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 가서 말년을 쓸쓸히 맞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의 강력한 힘과 능력을 기억합니다. 아마 군주는 이런 것을 기대하고 소망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폴레옹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의 군주는 자신의 이미지가 후세에 길이 기억되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그래서 사실과는 다른 모습으로 자신을 그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 그분은 왕 중의 왕이시고 모든 권세를 다 가지신 분이신데 그분은 자신의 모습을 억지로 꾸미지 않습니다.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계십니다. 나귀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나귀 타신 예수님이 과연 오늘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 과연 나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함께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또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전부의 기대를 다 걸고 있었습니다. 개인의 기대와 나라와 민족의 모든 명운을 그분에게 다 걸었습니다. 그분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시면 온 세상을 뒤집고 우리에게 해방을 남겨 주실 유일한 분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한 번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그것이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기시다가 한 곳에서 멈추십니다. 사람들은 급한데, 얼른 가서 예수님이 로마를 치시기를 원하는데, 주님은 가다가 한 마을에 발걸음을 멈춥니다.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예수님께서 벳바게와 베다니에 도착하셨을 때 두 명의 제자들에게 심부름을 시킵니다.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용은 그것입니다. 건너편 마을에 가면 나귀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 나귀는 한 번도 사람이 타지 않은 나귀 새끼인데 그 나귀를 풀어서 데려오라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 내용은 우리에게 낯선 내용이고, 왜 이렇게 하셨을까? 우리는 오늘 이 질문에 몇 가지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벳바게와 베다니에 사람을 보내셨을까요? 벳바게와 베다니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입니다. 원래 대도시가 있으면 그 대도시 주변에는 대도시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공동체가 형성되기 마련입니다. 대도시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 그 도시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군집을 이루고 살아갑니다. 예루살렘 주변의 벳바게와 베다니가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나병 환자의 집단 거주지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끔 방문하셨던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도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나사로와 마르다, 마리아의 집도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도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예루살렘에 가시면서 그 가난한 자들의 동네에 들르십니다. 그곳에 가셔서 주님께서 나귀 한 마리를 요청하십니다. 나귀는 그곳에 흔한 동물입니다. 그들이 농사짓기 위해서, 먹고살기 위해서 항상 가지고 있는 아주 연약한 동물이고 모든 가정에 다 있는 동물이었습니다. 그 동물을 주님께서 요구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주님은 벳바게와 베다니에 가서 나귀를 요구하셨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 가지입니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도 주님의 사역에 동역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 시절이나 오늘 우리 시절이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돈이 있어야 신앙생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견입니다. 예수님 시절도 그랬습니다. 성전에 올라갈 때 재물을 잔뜩 가지고 가야 대접받습니다. 짐승을 많이 가지고 가야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았습니다. 황금 함에 금덩이라도 갖다 놓아야 사람들에게 인정받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사람들은 신앙생활 할 때는 물질이 있어야 신앙생활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 시절 주님께서는 누구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과 함께 동역했던 사람들을 보십시오. 가난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고, 주님과 함께 그 길을 걸어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사회에서 유리되고 방황하고 손에 가진 것 없는 사람들, 그분들이 모두가 다 주님의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부자들은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