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갠 고기 사이로

본문: 창세기 15:7-21

러시아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공산화의 길로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국 한 나라의 공산화에 머물지 않고 주변 여러 나라들을 차례로 공산화시켜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거대한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소련식 공산주의는 100년을 채 가지 못했습니다. 20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1990년대부터 소련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과거 공산화되었던 나라들이 하나하나 독립해 나갔고, 우크라이나도 그중 한 나라였습니다. 1991년 우크라이나는 국민 투표를 통해 소련 연방에서 벗어나 독립 국가의 길을 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이 결정에 대해 미국과 러시아가 심각한 우려를 표시합니다. 핵무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소련은 우크라이나 지역 안에 핵시설과 핵무기를 다수 배치해 두었기에, 만약 그대로 독립하면 미국, 러시아에 이어 우크라이나가 세계 세 번째 핵 보유국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핵 보유국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핵을 포기하고 서방의 경제 원조를 받을 것인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결국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핵을 포기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1994년 12월, 미국, 러시아, 영국 등 서방 열강들과 우크라이나가 부다페스트에서 양해각서에 서명합니다.

이 양해각서에는 크게 세 가지 내용이 담겼습니다. 첫째,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보장해준다. 둘째, 군사적·경제적 어떤 위협도 가하지 않는다. 셋째, 만일 우크라이나가 심각한 핵 위협에 직면했을 때는 유엔 안보리가 즉각적인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유엔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 시대가 자국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시대라 하더라도, 강대국들이 전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문서로 서명한 협약을 종이조각처럼 찢어 버리는 일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앞으로의 세계에서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각자도생의 원리에 따라 각 나라는 군비 확충에 열을 올릴 것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자기 중심적이고, 누구의 말도 어떤 이의 행동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에서 하나님은 한 사람 아브라함과 당신이 하신 말씀을 굳게 지키시기 위해 언약식 조약을 맺어 가십니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바뀌고 국가 간 조약도 지키지 않는 험악한 세상이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언약을 우리와 함께 지키시고 맺어 가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믿음을 세우시는 언약의 하나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그에게 찾아가셔서 하늘을 바라보게 하시고 뭇별을 보여 주셨습니다. "네 자손이 저 하늘의 뭇별처럼 많아지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겨 주셨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이후부터 이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의 확증입니다.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창 15:7)

하나님께서 이어서 아브라함에게 땅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땅의 약속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자손의 약속과 연동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손을 하늘의 뭇별처럼 많아지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약 땅의 약속을 하지 않으시면 그 많은 자손들이 어디에 살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땅의 약속을 하셨다는 것은 분명히 후손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지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땅의 약속을 듣고 증거를 요구합니다.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창 15:8)

하나님이 땅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무엇으로 믿겠습니까? 아브라함의 질문이 어떻게 느껴지십니까? 발칙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감히 하나님께 이렇게 증거를 요구하다니, 아브라함이 이래도 되는가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만을 보시고 이를 의로 여기셨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증거를 내놓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기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습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의 이런 태도가 무리하거나 잘못되었다면 하나님이 책망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꾸짖고 타이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일절 언급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요구대로 증거를 보여 주시며 언약을 굳게 세워 가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마음 중심과 생각을 다 보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보통 우리가 누군가에게 질문을 할 때는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진짜 몰라서 묻는 것입니다. 몰라서 알고 싶어서 진심을 다해 묻고 또 묻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고, 그 땅에 하늘의 뭇별처럼 많은 후손이 살게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하나님 저는 믿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싶은데, 하나님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이것이 아브라함의 진심이고 단순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진심을 아시기에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질문 중에는 의도된 질문도 있습니다.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나쁜 의도를 가진 질문도 있습니다. 주로 정치인들이 현학적인 질문으로 상대방을 힘들게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 3년을 사실 때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악한 의도의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학자, 대제사장들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다 악한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서 때로는 정면돌파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비유로 설명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우회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브라함의 질문에는 악한 의도가 없습니다. 믿고 싶어서, 알고 싶어서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

사사 시대에 기드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대단히 소심했습니다. 밀을 타작하는데 포도주 틀에서 타작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미디안 민족에게 압제받고 있었던 시절이었기에 넓은 마당에서 밀을 타작하다가 미디안 사람이 보면 빼앗길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가족과 자녀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포도주 틀에서 발로 조금씩 타작했습니다. 그 정도로 소심했습니다. 그냥 착한 인물입니다. 자기 가족 식구들 굶기지 않기 위해서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아주 소시민적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옵니다. "큰 용사여"라고 부릅니다. 미디안 민족에게서 이스라엘 민족을 너를 통해서 구원하겠다 하셨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연약하고 부족한데, 나는 이렇게 모자란 구석이 많은데,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의 사자를 나 같은 사람에게 보내셨는가? 혹시 내가 악한 사탄에게 속고 있는 건 아닌가? 그래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저도 할 수만 있다면 우리 민족을 미디안의 압제에서 구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저를 찾아오시는 것이 맞습니까?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양털 한 뭉치를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땅 위에 놓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게 맞다면 하늘의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게 해 주십시오. 주변 땅은 깨끗하게 말라 있고 양털만 적셔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발칙하구나, 네가 무리하구나"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믿고 싶어 하니까 하나님은 증거를 보여 주십니다. 자고 났더니 양털만 촉촉하게 젖어 있습니다. 주변은 다 마른 땅입니다. 그런데도 믿지 못합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한 번 더 묻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