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15:6
사랑의 유효기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미국 코넬대학의 신시아 하잔 교수는 약 5천 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사랑의 유효기간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하면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생성되는데, 연구 결과 약 18개월에서 30개월까지 도파민이 지속적으로 생성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사랑의 유통기한은 길어도 900일, 30개월 정도가 전부라는 뜻입니다. 이 연구를 들어보고 지난 삶을 한번 살펴보면 수긍이 되기도 합니다.
남녀가 만나 뜨겁게 사랑할 때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10초 만에 금방 답이 옵니다. 하루에 서너 번을 만나도 전혀 질리지 않고 지루하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전화하고, 헤어져도 밤새도록 보고 싶다며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릅니다. 보아도 보아도 또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고 2년쯤 지나면 시들해지고 시큰둥해집니다. 잘 반응하지도 않고, 귀찮아지기 시작합니다. 이쯤 되면 이별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계속 만나야 하나, 아니면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나 고민의 갈림길에 서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통계에 의하면 아무리 길어도 유통기한이 30개월이라고 하는데, 30개월 넘게 교제하고 사귀던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습니까? 만약 이 통계가 100% 진실이라면 사람들은 결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도파민이 더 이상 생성되지 않는데 어떻게 결혼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이 이루어지고 가능한 이유는 사랑의 비대칭성 때문입니다. 비대칭성이라 함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더 많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흥미를 잃어도, 상대방이 문자 메시지에 늦게 답해도, 별 반응이 없어도, 내가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아끼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도파민도 크게 의미가 없고 통계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혼이 가능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는 별개로, 또 다른 의미에 있어서 사람들은 지속성이 떨어집니다. 공부하는 학생을 떠올려 보십시오. 중간고사 시험을 망쳤습니다. 그때 한순간은 열심히 공부해서 기말고사에는 성적을 끌어올려야겠다고 결심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삼사 일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결심은 하는데 이것을 실천해 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박 중독에 빠진 가장이 자신의 도박 때문에 가족이 피폐해지고 어려움을 겪는 것을 봅니다. 다시는 도박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시 그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사람은 결심하지만 지속성이 떨어집니다. 우리 믿음도 마찬가지이지 않습니까? 한때 뜨겁게 봉사하고 뜨겁게 사랑하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그토록 많이 울부짖고 기도했는데, 어떤 계기로 차갑게 식어버립니다. 그런데 거기에 발맞추어 하나님도 우리를 모른다 하시면 우리의 구원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사랑의 비대칭성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에 대해서 흥미를 잃어도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흥미를 잃지 않으시고 여전히 사랑하시며 여전히 보호하시고 여전히 아끼십니다. 그래서 구원이 가능합니다.
오늘 읽은 이 짧은 한 절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진심을 이해하시고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진수와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사랑을 덧입고 있는지, 이렇게 사랑을 받은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함께 깨닫고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롯이 소돔 땅에 살고 있었는데 왕들의 전쟁에 휘말려 들어갔고, 아브라함은 롯과 그의 가족과 재물을 다 건져주었습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롯을 다시 데려오고 싶었는데, 재물까지 다 찾아준 이후에 롯은 재물과 가족과 함께 소돔 땅에 정착하고 말았습니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사실 실패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정신을 차리고 나니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돌라오멜과 그 일당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히 보복할 것입니다.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환상 중에 나타나셨고, 나는 너의 방패가 되고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방패라는 말씀은 위로가 되고 은혜가 되는데, 지극히 큰 상급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자녀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큰 상급은 필요 없고 아들 하나만이라도 주셨으면 좋으련만, 자녀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볼멘소리를 합니다.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 우리 집에서 기른 이 종이 나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내 몸에서 날 자가 너의 후사가 될 것이라 말씀하시고, 손잡고 밖에 나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보여주십니다. 저 하늘의 별들처럼 너의 후손을 많게 하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하늘의 별을 만드신 분이 너의 가정에 자녀 하나 주지 못하겠느냐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위로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믿음이 생겼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6)
이 짧은 한 절 말씀이 기독교 신앙을 나타내고 표현하는 정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 질문거리가 생깁니다. 오늘 우리가 세 가지 질문거리를 가지고 함께 찾고 답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었다고 했는데, 그러면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이 무엇을 믿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무엇을 믿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아니라, 그 사람이 아니라 내 몸에서 날 자가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 저 하늘에 별들처럼 너의 후손을 많아지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는데 그 믿음을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저에게 뭇별을 보여주시고 믿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말이라도 하나님께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그 믿음이 생겨서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를 그의 의로 여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기만 했는데, 그 믿음은 가슴속에 있기만 하고 마음에 품기만 했는데, 하나님은 어찌하시고 이를 그의 의로 여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줍니까? 하나님은 우리 마음 속속들이를 살피고 돌보시며 중심을 들여다보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 마음에 품은 것을 다 그대로 나타내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예물을 드리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만 해도 다 보고 계시고 다 알고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수십 년 동안 길들여진 습관이 있습니다. 마음에 품었다면 표현하라고 배웠습니다. 사랑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어떻게 내 사랑을 알겠습니까? 말로 표현하고 고백해야 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말해야 됩니다. 말만 해서는 안 됩니다. 표현해야 됩니다. 맛있는 것을 사주든지,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을 대접하든지, 그가 꼭 필요한 것을 채워주든지, 그래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입증해 보여야 됩니다. 그래야 상대방이 믿어줄 것 아닙니까? 우리는 그렇게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자꾸만 뭔가를 표현하려고 합니다. 행동하려고 하고 행위로 나타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과 마음 중심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생각만 해도 그 생각이 진심이라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 생각이 진심인 것을 아시고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