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오는 속담 가운데 "평생 소원인 누룽지"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속담일 수도 있고,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속담입니다. 그런데 이 속담에는 유래가 있습니다. 중국의 대단한 부자인 진(陳)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이 분이 길을 가다가 행색이 초라한 한 걸인을 만납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병색이 완연하고 몹시 불편해 보이며 굉장히 힘겨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부자가 걸인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나에게 말해 보시오. 어떤 소원이든지 내가 들어 주겠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그때 그 걸인이 눈을 껌벅이며 이 부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 같은 것이 소원이라 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누룽지라도 배 터지게 먹어 봤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우리는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정도 소원을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의 그 당시 현재 상황이 그러했고, 그분이 살아온 삶의 수준이 그러했기 때문에 그 수준의 소원밖에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오셔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무엇이든지 말해 보라" 하시면 어떤 소원을 말씀하시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순간을 꿈꿔 왔지만 막상 그런 일이 닥치면 "어떤 소원을 아뢸까? 내가 이야기를 해도 될까? 안 될까?" 망설일 때가 많습니다.
오늘 읽은 하나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의 소원과 제자들의 소원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한 것이었고, 제자들의 소원은 자신의 욕심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의 소원을 듣고도 절망하지 않으십니다. 시간이 지나며 성장하고 성숙하며 하나님의 소원을 그들의 소원으로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올 한 해를 시작하는 우리의 내면을 살피는 은혜의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라고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죽으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지시고 고난받고 돌아가셔야 하는 그 고난의 험한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우리가 가는 이 길의 목적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 33절과 34절을 보시겠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한마디로 말하면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목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이 목적은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내가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고 쫓겨난 이후부터 마음속에 소원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 소원은 다름 아닌 많은 사람들의 구원이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백성들이 구원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그 소원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면서 그가 가졌던 유일한 한 가지 소망은 아버지 하나님의 소원을 내가 이루어 드려야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원만 가지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 3년, 그 이전의 30년, 33년을 사시면서 유일한 한 가지 소망은 하나님의 소원 성취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한 길을 오로지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시면서 시험도 있었습니다. 사탄 마귀가 사십 일 금식하시는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시험에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적대하는 무리들이 대적했습니다. 바리새인, 서기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대적해 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셨습니다.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겠다는 그 유일한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주님은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시다가 이제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그 길을 올라가셨습니다.
우리는 한 해를 시작하면서 마음속에 선한 뜻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내가 올 한 해는 하나님 뜻을 이루어 드려야지. 내가 올 한 해는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유혹을 받습니다. 사탄의 시험을 받습니다. 대적하는 무리를 만납니다. 사람 때문에 시험에 듭니다. 그래서 꺾여 나갑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 "내가 언제 그런 소원을 품었나?" 할 정도로 그 소원은 마음속에서 사라지고 없어집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갑니다. 다시 새해가 되면 또 결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수십 년 한평생을 신앙생활 해왔습니다.
이제 우리가 올 한 해를 시작하시면서 이제부터는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소원을 내가 가지고, 주의 소원을 이루어 가고, 그 소원을 성취시켜 드리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겠다고 결단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었는데, 제자들의 소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오늘 말씀 35절을 보십시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와서 질문합니다. 이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 제가 소원이 있는데 말해도 될까요? 들어 주실래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인자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다른 말로 하면 "소원이 무엇이냐? 말해라. 네 소원이 무엇이냐?" 이 질문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설레게 합니다. 소원을 말하라니, 그것도 예수님께서 "네가 어떤 소원이든지 말하면 이루어 주실 것인가" 마음이 설렙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하고 위험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달아 보시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신앙고백적 질문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백번 신앙고백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내 마음에 있는 소원을 아뢰는 것 또한 신앙고백입니다. 현재의 내 상태를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원은 곧 나 자신입니다. 과거로부터 생각해 왔던 것이 축적되어서 지금 내 마음의 소원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것을 끄집어내서 주님께 아뢴다는 것은 "주님, 내 상태가 지금 이렇습니다. 저는 지금 이런 수준에 있습니다"라고 주님께 고백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물어보신다면 우리는 주의 깊게 대답해야 됩니다. 내 신앙의 상태와 수준이 있는 그대로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