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15:1-5
태조 이성계는 1392년에 조선을 창건했습니다. 고려 말기의 복잡하고 어지러운 국내외 정세를 조선 창건이라는 일대 사건으로 희망의 시대로 전환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희망도 7년을 채 넘기지 못했습니다. 왕자의 난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정도전을 비롯한 조선의 개국공신들은 이성계의 여덟 아들 중 막내를 세자로 책봉했고, 이에 반감을 품은 이방원과 그 일당이 정도전을 비롯한 개국공신들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왕자들 사이에는 반목이 깊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이성계는 함흥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 역시 평생을 전쟁터에서 싸우고 피 흘린 장군이었습니다. 나라를 세운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함께 피 흘렸던 공신들이 자기 아들의 칼에 죽어 나가고, 아들끼리 서로 죽이려고 다투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자 더 이상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살 수 없어 함흥으로 떠났습니다. 함흥에 들어온 그는 소나무를 지극히 아꼈습니다. 소나무와 말을 나누고, 소나무 옆에서 활을 쏘기도 하고 활을 걸어두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함흥 본궁송'이라 불리는 나무입니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이 이 함흥 본궁송을 멋지게 그렸습니다.
아무리 멋진 소나무라 하더라도 말할 수 없는 식물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위대한 장군도 사람을 믿을 수 없고 신뢰하지 못해서 소나무와 소통했던 이 웃지 못할 일이 오늘 우리에게도 왜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사람에게 실망하고 때로는 배신당하며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는 인생이 오늘 우리 가운데도 적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람도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고 불안의 근원을 해소해 주시며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위대함과 극진한 사랑이 오늘 우리 삶에도 그대로 임하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소돔 땅에 살고 있던 롯은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왕들의 전쟁에 휘말려 들어갔습니다. 포로가 되었고 재물을 빼앗겼습니다. 롯 입장에서는 재앙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롯을 사랑하셔서 그를 향한 놀라운 구원 계획을 행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한 번에 망쳐버렸습니다. 그가 들어가서 전쟁을 하고 롯과 롯의 가정을 구출해 나오고 재물을 찾아주었습니다. 아브람의 기대는 한 가지였습니다. 롯을 다시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재물을 찾아준 것이 역효과가 나서 롯의 가정은 소돔 땅에 완전히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아브람은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롯의 가정을 위해서 무모한 전쟁을 일으켰는데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허무감이 몰려왔습니다. 오히려 두려워졌습니다. 보복당할까 봐 몹시 두려웠습니다. 그돌라오멜과 그를 둘러싼 일당들이 아브람과 동맹한 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그돌라오멜과 그의 동맹군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서 아브람과 318명의 전사들이 가서 승리하고 돌아왔으나, 전면전을 일으키면 이길 수 없습니다. 어떻게 싸워 이기겠습니까? 아브람은 이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보복이 확실시되는 시점에서 불안과 초조,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런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친히 찾아오십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 15:1)
하나님이 이런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나는 너의 방패가 되고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환상 중에 보여주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환상은 기도하는 자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데 환상이 보이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오늘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엎드려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찾아오시고 나타나십니다. 그중 한 가지가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람이 지금 불안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제가 몹시 불안합니다. 두렵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저의 불안을 거두어 가 주시고 저를 이 불안에서 건져 주십시오."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아브람 시대뿐만 아니라 신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여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행 11:5)
베드로가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뼛속 깊이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을 개 취급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중에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늘에서 보자기 같은 것이 내려옵니다. 보자기를 열어보니 유대인들에게 금지된 음식이 가득 있습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일어나 잡아먹어라." 베드로가 말합니다. "하나님, 저는 유대인으로 살면서 이 부정한 음식들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내가 정하다 하였으니 너는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들을 멀리하지 말라, 교회 공동체 안에 이방인들을 환대하고 받아들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본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갔고, 이방인 고넬료와 그의 가족을 만나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아브람도 불안해서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에게 친히 찾아와 주셨습니다.
사람들마다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이 제각각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안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을 합니다. 열심히 돈을 벌고 일을 하면 불안이 사라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은 모았는데 내 몸은 피곤하고, 일이 끝나고 나면 공허가 몰려옵니다.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불편하고 여전히 두렵고 걱정이 차오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만납니다.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술을 마십니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걱정 근심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원할 수 없습니다. 그 친구와 헤어지고 나면 더 큰 공허가 내 마음속에 찾아옵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불편하고 걱정 근심이 나를 짓눌러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불안의 근원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왜 불안합니까? 사람들이 불안한 이유는 내 능력 밖의 일이 나에게 곧 닥치고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왜 불안하겠습니까? 해결하면 그만인데 왜 불안하겠습니까? 나의 능력으로는, 내 물질로는, 내 경험으로는 도대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불안하고 걱정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아브람 개인의 힘으로는 다가오는 보복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에 그는 불안과 두려움과 초조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자이신, 전능자이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능력 밖의 일은 내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나를 지으시고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손을 내밉니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불안하니 하나님 친히 찾아오셔서 이 불안의 근원을 해결해 주십시오." 그래서 기도하는 것 아닙니까?
오늘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살다 보면 내 능력 밖의 일을 얼마나 자주 만납니까? 많이 만나지 않습니까? 될 대로 되라지 하고 그냥 던져두면 우리는 세상 세파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잡고 기도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주겠다. 막아주겠다. 걱정하지 말라" 하십니다. 오늘도 우리 인생에 기도하는 자에게 친히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하나님의 음성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집니다. 아브람의 상태가 과연 하나님께 이렇게 뻔뻔하게 기도해도 되느냐,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의 기도도 들으시고 친히 찾아오시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계획을 망쳐 놓지 않았습니까? 롯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아브람이 끼어들어가서 하나님이 롯을 건져오는 그 상황을 휘저어 놓고 말았습니다. 즉 죄를 지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그가 망쳐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의 기도도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는가, 이런 상황에도 하나님이 친히 개입하시는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아브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찾아오셨지 않습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내가 너의 방패가 되겠다." 좋으신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손을 내밀기만 하면, 입술을 벌려 기도하기만 하면 아버지 하나님은 찾아오시고 건져주시는 분입니다.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마 14:29-31)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 건너 물 위로 걸어오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걸어오라 하소서." 예수님께서 "걸어오라"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어서 주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일으키는 풍랑이 베드로를 두렵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시선과 베드로의 시선이 마주쳐 있었을 때는 물 위를 걸어갔지만 시선이 흔들립니다. 바람이 일으키는 풍랑을 보고 마음에 의심이 생겼습니다.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 순간 물속에 빠져 들어갑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님께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합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