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14:1-12
오늘날 현대 국제 질서에서 과연 영원한 우방은 존재할까요? 자국의 이익이 최우선인 국제 질서에서 영원한 우방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가운데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과 소련은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한때 손을 맞잡았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되었습니다. 어제의 우방이 오늘의 적이 된 것입니다.
미국과 중동의 관계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인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이라크를 은밀히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의 대통령이 되고 대량살상무기를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미국은 북한과 함께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했습니다. 어제의 우방이 오늘의 적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오늘날 현대사회뿐 아니라 아브라함과 롯이 살았던 고대 사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이처럼 복잡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 질서 가운데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일까요? 도대체 누구를 의지하고 무엇을 믿으며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롯은 애굽에 가서 비옥한 땅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농사가 잘 되고 목축하기 좋은 땅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기회만 된다면 저런 곳에 가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왔습니다. 그 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삼촌인 아브라함과 심하게 다투고 아브라함이 롯을 떠나보냈습니다. 롯은 기다렸다는 듯이 소돔 땅으로 떠났습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는 말씀도 롯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야만성과 폭력성 따위는 생각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저 돈 많이 벌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소돔 땅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심각한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 소돔 왕 베라와 고모라 왕 비르사와 아드마 왕 시납과 스보임 왕 세메벨과 벨라 곧 소알 왕과 싸우니라" (창 14:1-2)
복잡하고 낯선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롯이 살고 있었던 소돔 지역에는 여러 도시 국가들이 있었는데, 그 도시 국가들의 왕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모든 다툼, 모든 전쟁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싸웠을까요?
"이들이 십이 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제십삼년에 배반한지라" (창 14:4)
배반 때문입니다. 소돔 지역을 둘러싼 도시 국가들의 맹주는 그돌라오멜이었습니다. 가장 강력한 권위와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있던 수많은 도시 국가의 왕들은 그돌라오멜을 섬기며 그의 보호를 받으며 지냈습니다. 소돔 왕, 고모라 왕, 그 외의 여러 국가들의 왕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2년 동안 섬겼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제 그들도 성장하고 발전했습니다. 더 이상 그돌라오멜을 섬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반란을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돌라오멜을 섬기고 있는 도시 국가의 왕들도 있었습니다. 그 왕들이 함께 세력을 결집합니다. 그돌라오멜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조공을 바치지 않고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 이들을 정벌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국제 사회의 정세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세상과 사람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사실 소돔과 고모라 왕을 비롯한 여러 왕들은 12년 동안 그돌라오멜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다른 외부 세력이 침탈해도 그돌라오멜에게 조공을 바치고 그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12년 동안 보호받았던 안면을 바꿉니다. 이제 당신의 보호가 필요 없으니 우리는 독립하겠다며 배반합니다. 그런데 그돌라오멜도 마음이 넓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12년 동안 받아먹었는데 이제 성장하고 발전했으니 독립된 나라를 이루라고 떠나보내 주면 좋을 텐데, 영원토록 복속시키고 영원히 조공을 받으려 했습니다. 반란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조공을 바치지 않는 것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국제 사회의 질서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법칙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람을 통해서 상처를 받습니다. 조직에게 상처를 받고 조직을 배신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꼭 이 모양입니다. 지금 내 앞에서 웃고 있고 나에게 간이라도 빼줄 것 같이 대하는 사람이라도 언제 나를 이용할지, 어떻게 나를 배신할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사람에게 속고 속이는 경험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충성한 조직에 배신당하는 경험도 있습니다. 그런 경험이 누적되면 더 이상 사람을 믿지 않게 됩니다. 이 사람을 믿고 충성을 다했는데 그 사람이 나를 떠납니다. 또 다른 사람을 믿고 충성을 다했는데 그 사람도 나를 이용합니다. 누구를 믿어야 되겠습니까? 어떻게 사람을 신뢰하고 조직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시편 18편에서 우리가 신뢰할 분을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 18:1-2)
사울에게 있어서 다윗은 은인 같은 존재였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얼마나 많이 도와주었습니까? 사울이 한때 악령에 시달리고 있을 때 다윗이 궁중 악사가 되었습니다. 악기를 연주해서 사울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골리앗 때문에 이스라엘이 큰 위기에 빠졌을 때 다윗이 골리앗을 이김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었습니다. 사울의 군대 장관이 되어 가는 곳마다 승전보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다윗 덕분에 사울의 나라, 이스라엘의 영토가 갈수록 확장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다윗을 좋아하니 사울의 권위도 덩달아 높아졌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런 다윗을 배신했습니다. 다윗의 인기가 높아지자 왕권을 위협받는다고 생각한 나머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광야로 내몰았습니다. 십수 년 동안 쫓겨 다녔습니다. 다윗은 충성을 다했지만 주군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목숨을 위협받았습니다. 창을 던지고 칼을 겨눕니다. 시간이 한참 지났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울의 손에서 다윗을 건져 주셨습니다. 그때 지어 부른 노래가 시편 18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나의 반석, 나의 산성, 나의 요새, 나의 바위라고 합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백 년이 지나도 천 년이 지나도 반석, 산성, 바위, 요새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변합니다. 한때 나를 등용한 왕이라 할지라도 안면을 바꾸고 나에게 창을 던지고 칼을 겨눕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하나님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지금도 나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를 건져 주시고 구원하여 주신 그 놀라운 은혜는 변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말했습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사 2:22)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코에 호흡을 가진 자들입니다. 권력이 있는 자나, 물질이 있는 자나, 강한 자나, 약한 자나, 그 코에 호흡이 떨어지면 우리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 존재들은 셀 가치가 없다고 했는데 어찌 인생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토록 변치 않는 하나님, 저 하늘에 계셔서 지금도 우리를 살피시고 굽어보시며 우리 인생을 죄에서 건져 주신 그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계십니까? 사람 믿었다가 상처받고 또 다른 사람에게 더 크게 상처받아서 이제는 더 이상 내 마음을 줄 곳이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영원토록 변치 않는 하나님을 통해서 큰 위로와 은총과 축복을 함께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