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 일을 하다보면 내가 채용공고로 들어온 직무가 아닌 다른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게 됩니다. 스타트업에서는 아무래도 인력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직무별로 일이 되는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도맡아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스타트업에게 가장 큰 허들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정말 적은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린 기획이나 스프린트, 애자일 등의 방법들이 도입되는 이유도 빠르게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유연하게 피봇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죠.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이 더 많은 업무 영역을 커버해야만 하고 다양한 능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저는 마케터로 일하고 있지만, 실상 마케터로 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주로 기획과 관련된 일을 했었고 기껏해야 공모전용 IMC와 학교 주변 상가들 대상으로 매출 증대를 위한 마케팅 활동을 해본 게 다였죠. 제가 마케터가 된 이유는 콘텐츠 제작과 SNS 채널 관리를 해봤다는 이유 하나였습니다.
들어가서는 정말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톤앤매너 설정 및 피드 관리, 콘텐츠 기획 및 제작, 대표 캐릭터 제작, 캐릭터 세계관 구축, 앱 홍보 영상 제작, 투자자용 안내 영상 제작, 애널리틱스 분석, 키워드 분석, SEO 구축을 위한 기획, MBTI 테스트 기획 및 제작 등 뭐 쓰고 나니 크게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 저런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하다보면,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들어온게 아닌데.. 나는 대체 언제 전문 영역을 키우지?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특히 1/2년 차 주니어 분들의 가장 큰 고민도 ‘제 전문 영역도 없이 잡부가 되는 기분이에요’라는 질문이 참으로 많습니다. 저 또한 그랬고요. 나중에는 저를 마케터라고 말해도 되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퍼라고 하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의 'T-Shaped Marketer Framework' 도표인데요. 'T자형 인재'라는 개념이 있어요. 중심 몇 가지를 잘 익힌 다음, 다른 역량까지 양옆으로 확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표에서 보면, 정 가운데에 '콘텐츠 마케팅'과 'SEO'가 있습니다. 이 둘은 기본적으로 갖춰놓고, 다른 기능으로 확장해나가는 방식인데요. 이러한 방식은 '융합'이라는 개념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좀 고리타분해졌지만, 대학에서 흔히 내세우는 융합형 인재, 통섭형 인재라는 말과도 같죠.
한 분야에서 1등을 하려면 100만 분의 1, 1000만 분의 1의 확률에 가깝잖아요. 그런 식으로 하나에 매몰되기 보다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어떤 분야에서 100명 중에 1등 정도만 해도 좋고, 이와 관련된 분야에서 10명 중에 1등을 하게 된다고 했을 때, 이런 다양한 역량이 곱해져서 한 사람의 전문적인 능력이 생긴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유튜버 이연님도 이런 말씀을 하셨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도 중요하다. 그게 더 잘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그림을 잘 그리거나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림을 나만큼 그리면서 말도 나만큼 하고, 애플도 좋아하고, 영상도 만들고, 디자인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 요즘 시대가 다양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만 하는 사람, 반 고흐 같은 사람이 잘될 시대가 아닌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