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화목하라 (막 9:38-50)

세상의 기업들은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분투하고 있습니다. 합종연횡도 하고 자기 기술 개발도 열심히 합니다. 때로는 경쟁 기업과 소송도 불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경쟁 관계에 있던 기업이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의아하기도 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으르렁거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총수들이 손을 잡고 사진을 찍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삼성과 애플이 전략적 제휴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삼성과 애플은 서로 갤럭시와 아이폰으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는 것만 해도 서로 소송이니 여러 가지가 얽혀 있습니다. 그런데 두 기업이 어느 한 분야에서 손을 잡았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삼성 스마트 TV를 구입하면 애플의 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드웨어에 자신이 있는 삼성과 콘텐츠에 자신이 있는 애플이 서로 전략적으로 손을 맞잡은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경쟁 관계보다 이 분야에서는 서로 공생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완성차 기업인 벤츠와 BMW가 서로 손을 잡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두 기업은 서로 완성차 업계에서 유럽을 넘어서 전 세계에서 앞다투는 잘나가는 기업들입니다. 그런데 두 기업이 차량 공유 서비스를 각각 시작했습니다. 벤츠는 '카투고'라는 업체를 시작했고, BMW는 '드라이브나우'라는 업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유럽에서 우버에 밀려서 좀처럼 시장 확장성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기업이 합작 회사를 설립합니다. 서로 손을 맞잡은 것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우버에 대항하기 위해서 서로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이처럼 잘나가는 기업들, 세상의 기업들도 경쟁 관계에 있다가 서로 손을 잡기도 합니다.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면 세상의 모든 기업의 특징은 판을 깨지 않습니다. 오히려 판을 더 넓혀가고 지경을 넓혀가며 더 많은 것들을 얻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1. 하나님 나라의 보편적 가치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사실 우리는 하나의 교회에만 집중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교회, 내가 신앙생활하고 있는 이곳이 잘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가장 최종적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각을 좀 더 넓혀 보면, 눈을 조금 더 크게 떠 보면, 하나님 나라라는 더 크고 더 위대한 가치가 우리에게 주어진 지상 과제이고 사명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그 말씀을 들려 주십니다.

요한이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자기가 예수님께 칭찬받기 위해서 나옵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요한이 길을 가다가 어떤 사람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만히 보니까 그분이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이 사람이 우리와 함께하는 공동체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제자들도 아니고 안면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물어봤습니다. "당신 우리 선생님 아느냐?"고 그랬더니 그분이 너무 기뻐하셨겠지요. 요한이 혼을 냈습니다. "다시는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지 말라"고 나무랐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이런 일들을 주님께 이야기하고 "저 잘했지요?"라고 칭찬받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그래, 우리 편이 아닌 자를 혼내 주었으니 잘했다."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금하지 말라." 이어서 40절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라는 보편적 가치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누군가가 독점하는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 이름은 누군가가 특허 내어서 우리 열두 명의 제자만 사용하는 그 이름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누구나 다 부를 수 있고, 주님의 이름은 누구나 다 불러야 되는 이름입니다. 주님의 이름이 온 세상 만방으로 펼쳐져 나가야 구원받는 백성들이 널리널리 많이 생겨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 이 본문의 요한은 주의 이름이 전파되는 전도를 가로막는 어마어마한 큰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1-1. 전도의 참된 자세

우리 교회 전도대가 화요일은 오전과 오후로, 토요일은 오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전도를 합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일이 있다고 합니다. 정해진 장소에서 전도하는데 가보니까 다른 교회 전도팀에서 그 자리에서 전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여기 내 구역이니까 딴 데 가서 전도하시오" 하고 쫓아내고 싸워야 됩니까? 아니면 저 너머로 물러나야 됩니까? 조용히 딴 데로 가야 됩니까? 자존심이 상하고 싸울 일이니까 "이건 상도에서 안 되는 거야" 하고 싸우는 일은 조폭이나 하는 일입니다. 구역을 가지고 서로 다투는 건 조폭들이나 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역을 가지고 다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일이 있으면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며 다른 곳으로 가서 전도해야 옳습니다. 왜 기뻐해야 됩니까? 이 땅에 이곳에서 전도하는 또 다른 교회가 생겨난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우리 교회 말고도 전도하는 교회가 이렇게 많이 생겨나는구나! 우리의 목표는 이 양산 땅이 아니라 이 나라 온 나라 전체, 그리고 세계 열방이 우리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 만방으로 전파되는 것, 하나님께서는 그걸 바라고 계시고 우리도 그 일에 쓰임 받고 훈련받고 동역하는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우리 교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우리 교회 참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하십시오" 우리 그렇게 전도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우리가 폭을 넓혀서 전도한다면 "가까운 교회 가십시오. 예수 믿고 구원받으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참 좋은 하나님, 구원받고 그 하나님 통해서 온 가족이 구원받으십시오" 이렇게 전도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우리가 천국 가면 어느 교회 출신이냐는 것으로 다투지 않을 것입니다. 천국 교회는 유일한 하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이 계시고, 천사들이 함께 찬양하는 이 천국에서 우리는 함께 모여 예배할 그때를 기억하고 고대합니다.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는 건 천국의 모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천국 가서 "나는 대형 교회 출신입니다. 나는 저 산골 작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다 왔습니다" 이렇게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한 교회의 공동체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는 우리의 동역자들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2. 다양한 하나님의 교회

교회를 보면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습니다. 예배만 봐도 오늘 우리 교회처럼 이런 모습으로 전통적인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있고, 또 어떤 교회는 훨씬 더 역동적인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있습니다. 일어나서 찬양하고 춤추고 방언도 하고 안수 기도도 하고 예언도 하고 그런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살아 계시고 이단만 아니라면 우리가 그분들을 비난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금 신앙 정도에 따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에 따라 오늘 이 교회에서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있을 뿐, 모든 교회는 우주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라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교회 중에는 아주 특별한 공동체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섬기고 돕고 있는 교회 중에 노숙인들을 섬기는 교회가 있습니다. 제가 그 교회 목사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봤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 성도들은 냄새를 잘 못 맡는 은사가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노숙인들이 냄새가 심하지 않습니까? 주일날에서 함께 예배 드리는데도,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고 예배 드리는데도 냄새가 나서 코를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성도들은 괜찮다고 합니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합니다. 그런 특별한 분들이 함께 모여서 노숙인들을 섬기고 식사를 대접하는 그 공동체, 하나님 보실 때 아름다운 교회 아닙니까?

농아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리는 교회도 있습니다. 농아인들이 함께 모여 자신들의 삶의 애환과 고통을 나눕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입니까? 외국인 공동체도 있습니다. 이 땅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분들이 주일날이면 함께 모여 자기 나라 언어로 예배 드립니다. 찬양도 하고 말씀도 듣습니다. 함께 성경도 읽습니다. 함께 식탁 교제를 나눕니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공동체 교회 아닙니까?

교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여러 기관 단체도 있습니다. 신학생들을 길러내는 신학교도 있습니다. 이단과 사이비를 구별해 내는 신학 연구소도 있습니다. 방송국도 있습니다. 몸이 아파서 교회 가서 예배 드리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24시간 복음 방송을 송출하는 여러 방송국도 있습니다. 이 모든 기관들, 이 모든 교회들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두가 한 동역자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인식하고 기억하고 계셔야 됩니다.

2. 물 한 그릇의 상급

그런데 그중에는 형편이 좀 나은 공동체도 있고 형편이 어려운 공동체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특정한 공동체들은 형편이 좋지 못합니다. 그러면 형편이 나은 교회가 형편이 어려운 분들을 돕는 것이 상식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십니다. 41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절대로 상을 잃지 않으리라. 형편이 좀 나아서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할 힘이 있으면 베풀고 대접해 주라. 우리 모두가 같은 동역자들인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모두가 다 함께 다 잘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말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