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본문: 창세기 13:1-13

영국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프란시스 베이컨은 과학자들 중에 세 부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개미 같은 과학자, 거미 같은 과학자, 그리고 꿀벌 같은 과학자입니다. 개미 같은 과학자는 부지런합니다. 실험도 열심히 하고 자료를 열심히 모읍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실험과 자료에는 열심인데 창의적이지 않습니다. 거기까지입니다. 거미 같은 과학자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료와 실험 데이터를 가지고 시스템을 만듭니다. 마치 거미가 거미줄을 짜듯이 열심히 시스템을 만듭니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게으르게 행동합니다. 일하지 않습니다. 먹이가 걸리기를 기다리는 거미처럼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고 생산성이 없습니다.

꿀벌 같은 과학자도 있습니다. 벌이 열심히 날아다니면서 이 꽃, 저 꽃을 다니며 꿀을 따고 자신의 몸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유익한 꿀을 생산해 내는 것처럼, 꿀벌 같은 과학자는 자신을 통해서 성실하게 일하고 열심히 일해서 사람들에게 유익한 창의적인 인재라는 말입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이 세 부류가 우리 인간 군상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사람들 중에는 개미 같은, 거미 같은, 그리고 꿀벌 같은 사람이 존재합니다. 개미 같은 사람은 부지런하긴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익만 추구합니다.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거미 같은 사람은 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에 뭔가가 걸리기만을 기다리는 게으른 사람이고 창의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꿀벌 같은 사람은 성실하기도 하고 창의적인 존재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에는 롯이 나오는데, 롯은 개미 같은 존재입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기는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익만 따라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을 떠나서 소돔 땅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소돔 땅에서 농사짓고 목축하기가 훨씬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롯을 비난하지만 우리 속에도 롯과 같은 기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 안에 있는 롯과 같은 기질을 발견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찾고 깨닫고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회개와 감사의 예배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창 13:1-2)

아브람과 사래와 롯은 애굽에서 큰 위기를 겪습니다. 아내를 빼앗길 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전격적으로 개입하셔서 아내를 되찾고 많은 소유를 가지고 올라옵니다. 이 모든 소유를 성경은 더 구체적으로 가축과 은과 금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외형적으로 보면 아브람이 크게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애굽으로 내려갈 때는 빈털터리였습니다. 기근 때문에 내려갔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난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크게 성공했습니다. 아내도 되찾고 가축과 은과 금을 가득 싣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올라옵니다.

아브람은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아브람은 이것이 못내 불편했습니다. 바로에게 책망받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사람인데 하나님의 울타리를 떠나서 거짓말하고 불신자 바로에게 강하게 책망받았습니다. 이것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바로가 주는 선물을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한순간 탐심 때문에 은과 금과 가축을 다 끌고 올라옵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오자마자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만약에 아브람이 '내가 수지 맞았구나, 아내도 되찾고 은과 금과 가축도 다 얻었구나, 기쁘구나' 이렇게 생각했더라면 그는 예배 드리러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그렇게 생각했더라면 가나안에 올라와서 가장 먼저 가축이 풀을 뜯어 먹을 수 있는 목초지를 구하러 달려갔을 것입니다. 은과 금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돈으로 넓은 목초지 평원을 차지하러 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뭔가 모르게 불편하고 찝찝하고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마음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갑니다.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13:3-4)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브람이 여기서 드린 예배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회개요, 둘째는 감사입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간 것을 회개합니다. 사랑하는 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거짓말한 죄를 회개합니다. 하나님, 이 물질을 내가 받지 않았어야 되는데 한순간 탐심 때문에 이 물질을 가지고 온 것 회개합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또한 예배를 통해서 아브람은 하나님께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전격적으로 개입하셔서 나를 위기 가운데서 건지시고 사랑하는 아내를 다시 되찾게 하시고 우리를 안전하게 이곳으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회개와 감사가 넘치는 충만한 기쁨의 예배였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담 이후로 인간은 누구나 원죄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납니다. 원죄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죄 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투쟁하고 죄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한순간 잘못 판단하면 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가 더 중요합니다. 죄짓고 난 이후에 우리는 하나님께 깨달았다면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하지 않는 인생은 가능성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다섯 가지 제사 중에 속죄제가 있습니다. 속죄제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희들이 회개하기만 하면 다 받아주겠다는 뜻입니다. 죄 지을 가능성을 하나님도 인정하시고 인간의 약함과 연약함을 굽어 살펴보신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만일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이 죄에 빠지게 하였으면 그는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여호와께 드릴지니" (레 4:2-3)

'누구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다 죄 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세운 제사장조차도 누구든지 다 죄 지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가하고 겸손해야 됩니다. 내가 죄 지을 가능성이 있구나, 내가 이렇게 연약한 존재구나. 누구도 교만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 문제만큼은 자신 있다고, 나는 이성 문제만큼은, 나는 물질 문제만큼은 자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누구나 다 죄 지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투쟁했으나, 한순간 잘못해서 죄를 지었다면 그다음 후속 조치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유다 백성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사 1:18)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하셨습니다. 너의 죄를 나의 제단 앞에 가지고 나와서 다 말해라. 그러면 양털같이 다 희게 해주겠다. 용서해 주겠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죄 문제를 가지고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까?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문제를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신앙양심에 우리 마음에 거리낌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다 토설하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긍휼과 사랑의 은총을 덧입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질이 끼어든 관계의 비극

그런데 반면, 롯은 어땠을까요? 롯은 돌이키지 않습니다. 롯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물질에 더 사로잡혀 살고 있습니다.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창 1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