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4장 13절에서 15절까지 말씀입니다. "만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 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멘.
오늘은 레위기 네 번째 시간으로 속죄제를 공부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번제, 소제, 화목제를 공부했는데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하고 나서 기억나는 것이 사실 크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용이 꽤 많기 때문입니다. 어렵지는 않은데 내용이 많고 또 살펴볼 것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뭐 기억나지 않는 것이야 나이 들어서 그런 것이고, 다시 살펴보고 또 듣고 또 읽어보면 충분히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까 그때그때 주시는 은혜를 붙잡고 듣고 의미를 잘 새기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속죄제에 대해서 함께 나눌 텐데 속죄제의 의미부터 한번 보겠습니다. 속죄제는 히브리어로 '하타트(חַטָּאת)'라고 하는데, 하타트는 사실 우리말로 옮기면 '속죄제'라는 의미보다 '정결제'라는 의미가 훨씬 더 큽니다. 누구를 정결하게 하고 무엇을 정결하게 하는가 하는 것은 오늘 본문을 계속 살펴보면서 뒤로 가면서 볼 것인데, 어쨌든 '속죄'라는 의미는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대속의 의미가 강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 오늘 이 네 번째 예배인 속죄제에서 이 의미는 그런 의미보다는 무엇인가를 정결하게 한다는 의미가 훨씬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영어에서는 'Sin Offering'이라고 해서 '죄 예물'이라는 의미로 쓰였는데 사실 영어 번역보다는 우리 번역이 훨씬 좋습니다. 어쨌든 '정결제'라고 의미를 기억하는 것이 훨씬 더 잘 다가올 것입니다.
먼저 속죄제 일반 규정에 대해서 한번 보겠습니다. 속죄제는 앞선 번제, 소제, 화목제와 어떤 점이 다릅니까? 번제, 소제, 화목제는 모든 사람이 다 자발적으로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1장 2절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레위기 1장 2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너희 중에 누구든지'라 그랬습니다. 예물을 드리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번제를 드릴 때는 '아담(אָדָם)', 그리고 소제를 드릴 때는 '네페쉬(נֶפֶשׁ)'. 기억이 나실는지 모르겠는데, 호흡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예배를 자발적으로 드릴 수 있고, 흙으로 빚어진 사람은, 먼지로 된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의 공통점입니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누구든지 차별 없이 나와서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속죄제는 좀 성격이 다릅니다. 언제 속죄제를 드립니까? 읽어보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죄 지었을 때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속죄제를 반드시 드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4장 2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우리는 여기서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라도.' '하나라도'란 말이 우리에게 목에 가시처럼 딱 걸립니다.
그런데 여기 '그릇 범하였다'는 말을 좀 이따가 또 볼 텐데, 히브리어 '하타(חָטָא)'라는 말입니다. 하타는 '의도하지 않게 범죄하다'라는 뜻입니다. 자기는 의도성이 없었습니다.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누가 나에게 알려줘서 "아, 이게 잘못된 것이로구나.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로구나."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 그때 속죄제를 하나님께 의무적으로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것이 속죄제의 본뜻입니다.
그래서 속죄제는 일단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이, 의도하지 않은 것, 나도 모르게 죄를 지었는데 그때는 모르고 넘어갔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알았습니다. 한 달 뒤, 1년 뒤, 혹은 10년 뒤에 알았습니다. 그러면 그때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한 가지라도 생각나면 드리는 것입니다. 10가지를 모아다가 예배 드리는 것이 아니고, 속죄 제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고, 한 가지가 생각나면 드리는 것입니다.
옛날에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동네 이웃집 가게에서 뭔가를 사탕 하나 가져와서 먹는 것을 놀이로 생각했는데, 예수 믿고 나니까 "아, 이게 범죄더라." 마음에 자꾸 걸립니다. 한 30년 지난 것이 말입니다. 그러면 그때 속죄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때는 내가 예수 안 믿고 그냥 아이들 놀이처럼 그렇게 해서 잘 몰랐는데, 이제 시간이 한참 지나서 복음을 듣고 말씀이 나에게 들어와서 성숙하고 성장하고 나니 "아, 그건 범죄였구나.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었구나." 그런 것입니다. 속죄제는 일단 그것을 염두에 두고 넘어갑니다.
다음 질문을 보시면, 속죄제를 드리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 자체가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쓰고 조금 문제가 있는 것을 이제 봤는데, 속죄제를 받는 분은 하나님이시죠. "속죄제는 누가 드리니까?" 이렇게 되어야 됩니다. 질문이 "그 속죄제는 누가 하나님께 드리는가?" 여기 보면 네 부류를 적어 놓았습니다.
볼까요? 레위기 4장 3절에 보면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누가 범죄합니까? 제사장이 범죄합니다. 두 번째는 13절을 보니까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이스라엘 온 회중이'라 그랬습니다. '온 회중이'라는 것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입니다. 공동체 전체가 죄를 지을 때가 있습니까? 있지요. 어떨 때입니까?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해야 되는데 그 결정이 하나님 뜻에 반하는 결정을 했을 때, 그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공동체의 이름으로 지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자, 첫 번째는 제사장이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속죄제를 드리는 대상은 말입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 온 회중이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세 번째, 22절에 보니까 "만일 족장이" 그랬습니다. 여기서 '족장'이라는 것은 두 가지 개념이 있습니다. 첫째 족장은 행정 단위의 족장입니다. 천부장 들어보셨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정 단위 중에, 군대나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민수기에 가면 군대가 되는데, 제일 큰 단위가 천부장, 그다음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그 단위의 어른을 '족장'이라고 합니다. 또는 여기서 족장은 집안의 어른을 '족장'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레위 지파의 어른, 요셉 지파의 어른, 유다 지파의 어른, 어쨌든 백성의 리더가 되는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가 무엇입니까? 4장 27절, "만일 평민의 한 사람이." 우리 얘기입니다. 평민입니다. 우리 한 사람. 즉 네 가지 계층을 얘기했습니다. 제사장, 온 회중, 족장, 평민. 그러면 이 네 계층을 나란히 모아 놓고 생각하니까 속죄제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이게 어떤 의미입니까? 누구나 다 죄를 짓는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다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로운 영혼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사장이라고 죄 짓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제사장도 죄 짓습니다. 그리고 온 회중, 백성들이 많이 모이면, 간혹 이제 뉴스에서 그런 얘기하지요, 시사 프로그램에서 "집단지성의 논리를 믿습니다" 이런 얘기하지요. 그것이 무슨 말이냐면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낫고, 두 사람보다 열 사람, 열 사람보다 백 사람이 함께 모여서 토론하고 결정하면 이 결정이 한 사람의 결정보다는 훨씬 더 안전하다는, 뭐 이런 것이 집단지성입니다. 그런데 그 집단지성은 죄를 안 짓습니까? 짓지요.
일제를 보십시오. 히틀러를 보십시오. 독일을 보십시오. 2차 세계대전 일으킬 때 독일 국민들이 히틀러에 열광했고 일본이 일본 천황에 열광했잖아요. 죄 짓습니다. 집단지성도 이 사람들이 군중심리에 휩쓸리기 시작하면 그것보다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그것보다 과거에 동구권이 공산화될 때 그때 보십시오. 중국이 공산화로 넘어가고 러시아가, 소련이 자유화로 넘어갈 때 그들은 다 공산주의의 망령이 온 세계를 다 휩쓸어갔습니다. 그런 것은 집단지성을 믿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