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3장 1-2절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오늘은 야고보서 공부 네 번째 시간으로, 야고보서 3장 말씀을 가지고 함께 나누겠습니다. 오늘 제목이 '믿음과 혀 그리고 지혜'입니다. 언뜻 보면 믿음과 혀가 무슨 상관이 있고, 지혜는 또 왜 거기에 들어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혀와 믿음은 상당한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이 앞서고 행동이 따라가지 않는 사람은 지난 시간에 공부한 것처럼 믿음과 행함이 일체가 되지 않는 사람, 곧 죽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혀를 앞세우면서 행함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허무한 존재인지, 행함이란 곧 혀의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혀로 뱉은 말은 반드시 행함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지혜에 대해서도 땅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사람을 살리는 것에 대해 함께 나누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입니다. 선생이 되지 말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방금 읽은 말씀이죠. 1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아주 명확합니다. 선생이 되지 말라고 말하는 이유는 심판받을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선생이 어떤 자들인가, 이 선생의 범위를 먼저 한정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생을 '디다스칼로이'(διδάσκαλοι)라고 했는데, 이는 랍비와 같이 공적인 가르침을 하는 자들, 설교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세상 지식이나 학문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설교자를 한정해서 하는 말입니다.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 이루고 가르치는 설교자들, 랍비와 같이 공적인 가르침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이런 선생이 되고자 하는 야고보 같은 사람이죠.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야고보, 그래서 야고보가 '우리'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우리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일러주고 가르치고 풀어주는 사람이 되려고 그렇게 많이 노력하지 말라. 왜냐하면 선생이 되면 심판의 첫 번째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목회자가 되려고 그렇게 애를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되려고 너희들 많은 수가 그렇게 노력하지 말라, 심판받는 것이 우리 눈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2절에 보면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실수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실수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뒤에 나오는 말이 있죠. "만일 말의 실수가 없는 사람이면"이라고 했는데, 실수를 헬라어로 '프타이오'(πταίω)라고 썼습니다. 실족하다, 넘어지다라는 말인데 이 실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하는 실수, 보통 설교자가 말할 때 설교자의 언어와 설교자의 삶의 실수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치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지시하고 있는데 반대쪽으로 가르치는 것, 말씀을 자기가 오해해서 자기 말로 가르치는 사람은 심판받겠죠.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이쪽을 지향하고 있는데 말씀에 자기 생각을 담아서, 자기 의도를 담아서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람들, 하나님은 그런 설교자를 심판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굉장한 설교자의 유혹입니다. 설교자가 강단에 서면 평소에 본인이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나님 말씀으로 둔갑시켜서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 설교자에게 여기에 절제가 필요하고, 여기에 자기 부인이 필요하고, 여기에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평소에 내가 하고 싶은 말, 마음에 담아둔 말, 그리고 저기 저 성도가 앉아 있으면 저분한테 하고 싶은 말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와서 마치 하나님의 말씀처럼 거기에다 뒤집어씌워 가지고 말을 막 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비단 설교자만이 저지르는 잘못이 아니고 부모들도 자녀에게 그런 잘못을 저지릅니다. 언제 그런가 하면, 가정 예배를 드리다 보면 자녀들이 앉아 있는데 그냥 하나님 말씀만 가지고 서로 나누어야 되는데, 평소에 이 아이에게 기분 나쁘고 불쾌하고 하고 싶은 말이 이만큼 올라오고 있었는데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와서 마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하나님 말씀인 것처럼 뒤집어씌워서 얘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굉장히 아이들에게 불쾌감을 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고 놀랍게 역사하기 때문에 말씀은 그 자체를 읽어주고 전하기만 해도 그 아이 마음속에 들어가면 개인적으로 적용하고 변화시키는 능력이 생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굳이 부모가 자녀의 행동까지를 다 일일이 교정해 주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나타나야 되는데, 부모가 적용까지 그냥 A부터 Z까지 다 해주어 버리기 때문에 아이들은 가정예배 드리자고 그러면 일단은 불쾌한 것입니다. 피하고 싶은 것이죠.
목회자가 말씀을 무기로 마이크를 잡았다는 이유로 강단에 서서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그냥 다 쏟아낸다면 그것은 심판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하나님이 하시고 싶은 말 사이를 철저하게 구별하지 못할 것이면 그 자리에 서지 말라는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