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후서 특강 4 - 고난 그리고 사랑, 그리스도인 (벧전 4장)

본문: 베드로전서 4장 7-8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오늘은 베드로전서 공부 네 번째 시간입니다. 베드로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들, 한마디로 말하면 디아스포라 성도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를 받는 사람들의 삶의 자리가 만만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고난받고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경제적으로 조금 힘들거나 몸이 조금 힘든 그런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예수 믿는 것이 발각되면 당장 목을 내어놓아야 하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의 고난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고난 가운데 사는 성도들, 그들에게 베드로가 편지를 썼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내용을 보면, 고난 가운데에서도 가정은 계속 돌아가니까 그런 고난 가운데 가정에서 아내들은 어떻게 해야 하며, 남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성도들은 교회 공동체에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며, 또 성도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무엇인지를 다루었습니다. 그 핵심이 바로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 몇 가지 말씀을 나누었고,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의 가장 대표적인 분, 완벽하게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으신 분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예수님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서신을 읽을 때는 앞의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맥락과 흐름 가운데에서 오늘 1절이 시작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1.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으라

1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그냥 읽으면 "아, 그렇지. 예수님이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지. 창에 찔리고 못 박히고 십자가 지고 돌아가셨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베드로전서의 맥락 가운데 읽으면, 예수님이 받으신 육체의 고난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바로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면 "예수님도 선을 행함으로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여기 "같은 마음"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정신의 깊은 곳까지, 즉 예수님과 동일한 생각, 동일한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너희도 예수님이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으신 것처럼, 너희도 똑같이 예수님과 같이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옳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1-1. 갑옷이 되는 이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의문이 하나 듭니다. "갑옷을 삼으라"고 했습니다. 갑옷의 용도가 무엇입니까? 갑옷은 방어하는 것입니다. 창이나 칼이나 화살로부터 심장도 방어하고 내 몸을 방어하는 것이 갑옷입니다. 그런데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어떻게 갑옷이 됩니까? 갑옷은 나를 보호하는 것인데,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은 내가 두드려 맞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고난받고 두드려 맞는데, 이것이 어떻게 나를 지키는 갑옷이 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 봐야 합니다.

곧 답이 나옵니다.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에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왜 갑옷이 되느냐 하면,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면 죄를 짓지 않는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너무 신기하지 않으십니까?

기독교 신앙은 굉장히 능동적인 것입니다. 수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 짓지 말아야지, 죄 짓지 말아야지" 하면서 죄 안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도 안 만나면 됩니다. 하루 종일 아무 데도 안 가고 누구도 안 만나고 자기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있으면 됩니다. 그런데 그런다고 죄 안 짓습니까? 생각이 죄를 짓습니다. 생각으로 죄 짓고, 마음속에서 죄가 자꾸 꿈틀꿈틀 올라옵니다. 숨 쉬는 것이 다 죄입니다. 그래서 시편의 기자도 그랬고, 욥도 그랬고, 수많은 서신서의 기자들이 그랬습니다. 모태로부터 죄 가운데 우리가 출생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말은 나의 존재 자체가 죄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동적으로 "죄 안 지어야지, 죄 짓지 말아야지" 하며 방어적으로 살다 보면, 그런다고 죄를 안 짓겠습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아도 죄 짓고, 혼자 고립되어서 저 남극 북극에 갖다 놓아도 하루에도 수백 번 죄를 짓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죄를 안 짓습니까? 적극적으로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아야 죄를 그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진리입니다. 열심히 살아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라, 그러면 죄를 피하게 된다. 결국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이 된다고요? 나를 방어하고 나를 지키는 갑옷이 됩니다. 이것은 역설인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진리입니다.

1-2. 열심히 살 때가 행복하다

여러분, 신앙생활 쭉 해 오셨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그런데 언제가 가장 행복하셨습니까?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제가 심방을 다녀보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뭣도 모르고 그냥 열심히 일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하십니다. 새벽에 새벽기도하고, 피곤한 줄 모르고 일터 가서 열심히 일하고, 시간 나면 전도하고, 교회 와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봉사하고, 닥치는 대로 일하고 섬기고 봉사하고, 저녁에 녹초가 되어서 집에 들어가던 때. 열심히 일할 때, 교회에서 무엇을 한다 그러면 최선을 다해서 교회 일에 전심전력하고, 세상일도 열심히 하고, 사탄이 틈 탈 틈을 주지 않을 때, 그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 좀 쉬어야 되겠다. 이제 좀 피곤하구나, 좀 쉬어야 되겠다" 하는 순간, 그때부터 죄가 내 마음속에 들어오고 시험이 들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못 일어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기력증에 빠집니다. 지금 베드로가 "이것이 갑옷이 된다"고 한 말씀이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갑옷입니다.

그래서 앞 장에서 베드로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3절을 보시면,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열심으로 선을 행하는데 사탄 마귀가 너희를 해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열심으로 너희가 주의 일을 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하나님 일 열심히 하고, 선을 행하고 있는데, 악한 사탄 마귀가 들러붙을 틈이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뒤로 물러서는 신앙이 아닙니다. 전진하고 또 전진하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주를 섬기고, 나에게 건강이 주어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한 최선을 다해서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뒤로 빠지고 안 하려고 하는 순간 갑옷이 사라집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은 나를 지키는 갑옷입니다. 축구에서 그러지 않습니까? "최선의 수비는 최선의 공격이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다"라고 합니다. 열심히 공격하셔야 됩니다. 선을 행하고 적극적으로 주의 일에 힘쓰고. 그 이야기를 베드로가 예수님 이야기를 들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크로노스와 카이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