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옥중서신 에베소서 네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에베소서는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4장이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입니다. 에베소서는 교회에 대한 말씀이기에 오늘은 '교회와 성도들'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교회에 대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으냐 하면, 교회에는 두 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을 하시니 아실 텐데, 교회가 참 힘들 때가 언제입니까? 교회가 너무너무 힘들 때, 교회를 사랑하는데 교회 오는 것이 힘들고 괴로울 때, 그것은 바로 교회가 분열될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교회의 일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일치를 해야 하는지, 또한 교회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표에다 숫자를 써놓고 '몇 명 돌파 대작전'을 펼치며, 한 사람이 몇 명을 데려오면 전체가 몇 명이 된다고 계산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과연 그것이 진정한 성장일까요?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성장은 과연 그런 것일까요? 오늘은 많은 사람이 고민하는 이 두 가지, 즉 일치와 성장에 대한 성경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는 모름지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성도가 나아갈 바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4장이 중요합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을 부탁합니까? 바울이 부탁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가 쉽지 않습니다. 만만하게 봤다가는 상당히 어려운 책입니다.
1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합니다. 지금 바울은 구류 상태에 있으니까 '갇힌 나'라고 표현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합니다. 이 문맥을 보면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니, 바울이 부른 것입니까? 아닙니다. 누군가 다른 분이 에베소 성도들을 부른 것입니다. 그 누구는 누굽니까? 하나님이시지요.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개척자일 뿐, 그들을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청지기 의식입니다. 개척 목사가 "내가 너희를 불러서 내가 너희를 키웠으니 너희는 내 종이야"라고 하는 순간, 그것은 사이비 집단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아닙니다. 바울은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합당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헬라어로 보면 악시오스(ἀξίως)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어울리게'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런 느낌으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어울리게 행하라. 어울리게 행하라."
똑같은 단어를 바울이 변주하여 사용합니다. 골로새서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0절과 데살로니가전서 2장 12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같은 단어가 나옵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라고 했고, 데살로니가전서 2장 12절에는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는 '주께 합당하게', 데살로니가전서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게 하려', 그리고 여기서는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라고 합니다.
말을 바꾸어 보겠습니다. 골로새서 말씀은 "주께 어울리게 행하여", 데살로니가전서 말씀은 "하나님께 어울리게 행하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예수님께 어울리고 하나님께 어울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어울리는 것입니까? 예수님께 어울리고 하나님께 어울린다는 것이 무슨 개념입니까? 내가 예수님 곁에 있을 때, 내가 하나님 곁에 있어서 부자연스러우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내가 하나님 곁에 섰을 때 내가 어울리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자신 있으십니까? 하나님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악시오스(ἀξίως), 어울리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어울리는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까? 죄는 거기에 어울립니까? 내가 죄투성이요, 매일 죄를 짓는다면, 그 사람은 주께 어울리고 하나님께 어울립니까?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 순결한 신부의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어울리다', '합당하다'는 말은 내가 그 곁에 섰을 때 과연 자격이 있느냐, 어울리느냐를 묻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자격 없는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것이 감사하고 은혜입니다. 그 감사와 은혜를 진정 감사되게 하려면 그때부터는 정신 차리고 바로 살아야 합니다. 어울리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고 애써야 합니다. 그것이 성화이고,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죄 가운데 부르셨으니까 대충 살아도 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하며 살면 그것은 구제불능입니다. 성령을 소멸하게 하고, 다시 죄 가운데 빠져드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주께 어울리고 하나님께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존재가 되려고 계속 애쓰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1절로 돌아오면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했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각자를 부르셨습니다. 일단은 성도 되게 하셨고, 성도 되게 하신 후에 사명을 주시고 직분을 주셨습니다. 저에게는 목사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목사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저는 목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목사로 부르심을 받은 일에 어울리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어울리는 것입니까? 목사로 부름을 받았으면 목양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심방하고 성도들을 돌보는 것이 어울리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목사로 부름을 받았는데 술자리에 너무 잘 어울리고, 주식 투자에 너무 잘 어울리며, 세상 경제 돌아가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스포츠카 뽑아서 레이싱을 즐기고, 운동광이 되어 옷 핏이 딱딱 맞으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목사는 목사다워야 하고, 예수에게 어울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로 부르시고 각자 직분을 맡겨주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거기에 어울려야 합니다. 나는 부름받은 일에 어울리는 존재인가? 나의 언행과 능력과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사람들이 볼 때 "너는 교회 그만큼 다녀도 우리하고 여기서 술 한잔 하는 게 어울려"라고 하면 신앙생활 잘못한 것입니다. 진짜 잘못한 것입니다. "여기는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아"라는 말을 들어야 잘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이제 일반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2절에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라고 합니다. 이것이 부르심을 받은 성도로서 일반적으로 이렇게 행해야 합당하다는 것이고, 이것이 어울린다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남을 높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식이고 성경에 나오는 진정한 겸손입니다. 남을 높이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은 겸손, 곧 남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온유입니다. 온유가 무엇입니까? 온유는 들떠 있지 않은 사람, 용맹이 없는 사람, 자기 가치관이 없는 사람, 생각이 별로 없는 사람, 무기력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온유는 힘이 넘치고 에너지가 넘치는데 그리스도에게만 길들여진 야생마 같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에만 길들여진 사람입니다. 오래 참음, 곧 인내도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 어울리는 덕목입니다. 그다음 서로 용납하라고 했습니다. 용납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도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너도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