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7)
오늘은 고린도후서 공부 네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세 번째 시간에 살펴본 바에 의하면,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가리켜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불렀습니다. 고린도교회를 어지럽히는 거짓 교사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종이 한 장씩 들고 와서 그들이 가지고 온 추천서로 바울을 힘들게 하고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그런 종이가 백 장이 있어도, 사람이 쓴 천 장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우리가 복음으로 길러낸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사도들의 편지요, 곧 하나님께 보여줄 수 있는 추천서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일꾼'이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옛 언약은 곧 율법인데, 율법은 폐기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율법을 지키려고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발버둥 쳐도 결국은 그 안에서는 무력감만 느낍니다. 나의 연약함과 나는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자로구나, 내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면 그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게 됩니다. 결국 율법의 저주에 의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가 구원받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에게 주시는 선물이 성령이니, 새 언약의 일꾼 된 자들은 성령으로 일하는 자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난 3장에서 공부한 바입니다. 그리고 수건을 걷어내야 된다는 말씀까지 했습니다.
오늘은 이 언약의 일꾼 됨으로부터 새로운 말씀이 이어집니다.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 된 직분을 받아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1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직분'이란 어떤 직분입니까? 새 언약의 일꾼 된 직분입니다. 옛 언약의 일꾼이 아니고, 율법의 일꾼으로 사는 자는 어떻게 사는 것일까요? "너 왜 이 율법 안 지켜? 너 왜 이 법 안 지켜?" 계속 정죄하고 계속 율법을 지키라고 강요하고 사람 쫓아다니면서 괴롭히는 사람들, 그 율법의 일꾼이 아니라 나는 새 언약의 일꾼으로, 즉 성령으로 일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라고 했습니다. 일꾼들은 다 긍휼을 입은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으로 안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손들고 포기했으니까, 십자가 아래에 우리의 정과 욕심을 못 박았으니까 우리의 약함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 긍휼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즉 바울과 그와 함께한 동역자들은 모두가 다 새 언약의 일꾼인데, 긍휼을 입은 자로서 성령으로 일하는 자입니다.
이제 이어서 새 언약의 일꾼으로 성령으로 일하는 자들의 특징이 나옵니다. 첫 번째, 낙심하지 아니합니다. 낙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우리 속에 가득하게 임해서 일하는 자들은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기 '낙심하다'는 말이 나오죠. 헬라어로 엥카케오(ἐγκακέω)입니다. 두려움에 굴복하다, 용기를 잃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굴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살리시는 영이지 않습니까? 성령은 진리의 영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임해서 일하면 어떤 상황이나 어떤 환경에서도 낙심하거나 주저앉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변 사람들을 보면 항상 입에 원망과 불평, 혹은 안 된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이거 집어치워야 된다"고 합니다. 성령으로 일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일하는 사람은 낙심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긍휼하게 하시고 우리를 살리신 영이기 때문에, 죽은 자도 살리신 하나님께서 못 하실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영으로 일하는 사람은 항상 긍정적이고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특징이 이어집니다.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일하는 사람, 새 언약의 일꾼 된 사람은 숨은 부끄러운 일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즉 남들 모르게 뭔가를 숨겨두고 "이건 저 사람은 알면 안 돼" 하며 비밀을 만들어두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즉 이 말은 바울이 새 언약 일꾼 된 자로 사역했기 때문에 고린도교회 성도들 모두에게 숨은 부끄러운 일을 만들어둔 적이 없다, 나는 너희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행한 적이 없다, 숨긴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이 일은 이 사람에게 숨겨야 되고 저 일은 저 사람이 알면 안 되고, 이렇게 살다 보면 얼마나 복잡합니까? 나중에는 이게 꼬여 가지고 저 사람한테 이 사람 얘기를 하고 이 사람한테 저 사람 얘기를 해서는 안 될 얘기가 막 이쪽 저쪽에서 터지고 합니다. 그런데 거짓말도 똑똑해야 잘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명철하고 똑똑하지 못해서 거짓말을 잘 못합니다. 숨기기를 잘 못합니다. 특히 성령은 밝히시는 영이잖아요. 진리의 영입니다. 진리는 사람을 속이지 않습니다. 주의 일을 하는데 속이면 됩니까? 하나님 예배하는데 감추면 됩니까? 교회가 이중장부 쓰면 됩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성도들에게 보여주지 못할 일이 있으면 되겠습니까? 깨끗하게 다 보여줄 수 있고 누구나 와서 보십시오, 누구나 와서 다 열람하십시오라고 얘기할 만큼 숨은 부끄러운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일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통해서 가정을 세우시고 그 가정의 원리를 창세기에서 설명하십니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이것은 성적 결합만을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투명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투명해야 합니다. 모든 인간관계나 금전 관계나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고 모든 게 다 깨끗하고 투명해야 합니다. 숨은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아야 그 공동체가 성령께서 기뻐하시고 일하시는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데 숨은 부끄러운 일이 또다시 그 속에서 또 다른 집을 지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또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숨은 부끄러운 일을 자꾸 하다 보면, 숨기다 보면 그 숨김이 나중에 남을 속이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냥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 이게 별로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해서 말하지 않았을 뿐인데, 나중에는 그게 조금 더 진도 나가면 속이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일하는 새 언약의 일꾼은 남을 속이지 않습니다.
그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혼잡하게 하다'는 헬라어로 돌로오(δολόω)입니다. 불순물을 섞다, 덫에 걸리게 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덫에 걸리게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자유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케 풀어주는 말씀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덫에 걸리게 하고 걸려 넘어지게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왜 시험에 드느냐? 그 말씀에 불순물이 섞여 있어서 그렇습니다. 가르치는 사람, 전하는 사람들이 그걸 가지고 자기 욕심으로 불순물을 뒤섞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나에게 부딪혀 올 때 우리가 거기서 불순물을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데, 인간 목회자가, 사람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거기에 불순물이 섞여 있으면 그걸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버리면 이것이 시험이 되는 거죠. 거기서 걸려 넘어집니다. 덫에 걸립니다. 그래서 우리의 실력과 수준이 전하는 말씀이라고 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 그 불순물을 분리하고 걷어낼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덫에 걸리지 않고 넘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성령이 우리를 조명해서 그 말씀을 누구에게 가르치고 전하고 성경 공부를 하는데, 거기에 자기 인간적인 생각을 불순물로 만들어서 가르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 바울이 자기 사역을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너희들이 하나님의 편지다, 그리스도의 편지다, 너희들이 나의 추천서라고 하면서 지금 이 말씀을 하는데, 너희는 새 언약의 일꾼인 우리로 인하여 배운 자들 아니냐,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물을 섞어서 넣어서 가르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성령으로 사역했고 때문에 감춘 적도 없고 속인 적도 없다고 자기 변호를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그다음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라고 했습니다. 그렇죠. 성령은 진리의 영이니 성령으로 사역하고 성령으로 가르치면 거기에는 진리만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1절과 2절 말씀은 새 언약의 일꾼 된 자가 어떻게 사역하는지, 어떻게 일을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적용시켜 볼 수 있겠죠. '아, 내가 과연 새 언약의 일꾼으로 일하고 있는가? 낙심하지 않고, 그다음 뭡니까?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이지 않고, 불순물을 뒤섞지 않고, 진리를 나타내고.' 그러면 우리는 새 언약의 일꾼으로 일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아직까지 성령으로 사역하는 게 아닙니다. 이것에 비추어서 나를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바울은 또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이 직분은 다 이런 맥락입니다. 새 언약의 일꾼 된 직분입니다. 우리는 직분이라 하면 내 수준에서 생각하니까 뭐 목사, 장로, 권사 등등 교회의 직책, 직분을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고, 바울은 훨씬 더 포괄적인 훨씬 더 근본적인 직분을 말했습니다. 즉 새 언약의 일꾼인 직분으로, 성령으로 일하는 직분을 말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