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후서 특강 4 - 하나님을 기쁘시게 (살전 4장)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서신서 말씀은 그냥 이렇게 읽고 흘려버리면 잘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흘러가 버리는 것 같아서 한 번씩 끄집어내서 작정하고 정리를 좀 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지난 학기에 공부했던 룻기와 에스더처럼 이야기가 있는 부분, 스토리가 있는 내용들은 지나가면 머릿속에 각인되고 남는 것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서신서들은 그 속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마치 열매 같으면 껍질이 좀 더 딱딱한 열매와 같습니다. 그래서 껍질을 깨기가 좀 힘든 열매입니다. 그런데 껍질이 딱딱한 열매일수록 그 열매 속은 달고 맛있고, 또 알맹이가 알찹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좀 더 열심히,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살펴볼 의미가 있는 책들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이야기를 공부할 때마다 한 번씩 앞의 이야기들을 되새겨 봐야 하는데, 이 데살로니가전후서 본문 이야기는 '교회란 무엇인가'를 큰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했고,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에 의하면 교회는 성장을 멈추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 하나하나가 다 교회인데, 내가 이제 이만하면 됐다 하고 여기 머물러 버리면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고 거기서부터 죄가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자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말하기를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고 했습니다. 즉 너희와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교회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인데, 성도가 교회이니까 성도와 성도는 같은 교회로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로 연합되고 결합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나 아닌 당신이 주 안에 굳게 서 있는 것이 내가 곧 기쁘고 살게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갑니다. 이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무엇인가,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를 말합니다. 만약에 이 본문과 상관없이 누군가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뭡니까?"라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우리는 이 성경 구절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 자체가 사실은 좀 구체적이지는 않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 믿음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거기에서는 성경적인 대답이 필요합니다. 내가 얘기하는 믿음 말고, 내가 생각하는 것 말고 말입니다.

오늘 이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장과 4장이 아주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거기서 지난주에 얘기한 것에 의하면, 서 있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너희에게 아직까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부족한 것을 채워야 된다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전진하라, 머물러 있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전진하고 나아가라 했는데, 그 나아가야 될 지점을 오늘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나아가야 될 지점 말입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읽은 1절을 한번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하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행하며'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이 중요한 말들입니다. 이 말은 이제 우리의 성장의 목표와 방향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된다는 뜻입니다. 주 안에 굳게 서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직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걸 채우기 위해서 조금 더 노력하고 나가야 합니다. 어느 방향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향으로입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본능적으로 행함에 대해서 약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행함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행함으로 구원받는 건 아니다, 도덕으로 구원받는 건 아니고 나의 업적으로 구원받는 것 아니다, 그런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 나오는 말씀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이 말이 좀 거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이렇게 이해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물론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그런데 조금 더 나아가서,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게 무엇인가, 구원받은 자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살아가야 될 것 아닙니까? 나는 구원받았는데 하나님을 실망시키면서 살아서 되겠습니까?

1-1. 기쁘시게 함의 의미

여기 보십시오. '기쁘시게 하다'라는 말을 헬라어로 '아레스코(ἀρέσκω)'라고 합니다. 아레스코가 '일치되게 하다', '즐겁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건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행위가 일치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저 아무개가 이렇게 좀 살아줬으면 좋겠는데"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를 향하신, 우리 모두를 향하신 그 하나님의 마음에 나를 일치시키며 살면 그게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건 우리의 행함으로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 굳게 선 사람은 계속해서 성장해 가야 되는데, 그 성장의 목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뜻의 궁극적인 의미는 하나님과 내가 일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내 행위가 일치되는 것, "아, 쟤는 어쩜 저렇게 말 안 해도 내 마음에 쏙 들게 하나" 이렇게 하나님이 생각하실 정도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까지 말하고 만약 바울이 끝냈다면 이건 바울이 아닙니다. 바울은 굉장히 정교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의 행위는 무엇이어야 되는가?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행위가 일치되는 그 지점이 무엇이어야 되는가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3절부터 6절까지 나옵니다. 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다'라는 말이 여기 처음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4절에서도 먼저 한번 나왔습니다.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관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무엇입니까? 교회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존재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해가 되시죠? 그러면 하나님이 보실 때 교회된 내가 과연 기쁜 존재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골칫덩이냐, 하나님의 염려거리냐? 우리는 나 하나로서도 교회지만, 너와 나가 공동체로 연합되고 결합되어서도 교회입니다. 그럼 우리 교회 성도들의 공동체가 하나님 보실 때 기쁨이 되느냐, 아니면 염려거리가 되느냐? 숫자가 많다고 하나님의 기쁨이 될까요? 사람들이 볼 때, 사람들의 눈에 화려하고 좋은 일을 한다고 하나님의 기쁨이 될까요? 이제 이 두 가지를 보시면 분별이 되실 겁니다.

2. 첫째, 거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