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특강 4 -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 4장)

본문: 갈라디아서 4:19-20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오늘은 갈라디아서 네 번째 시간으로, 4장을 중심으로 함께 공부하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제대로 살펴봐야 그 깊은 의미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쉽지 않은 책이라는 말입니다.

갈라디아에는 하나의 교회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갈라디아 지역의 여러 교회가 있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이 지역을 연결하는 곳을 갈라디아 지역, 갈라디아 벨트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진리에서 떠나 다른 복음을 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플러스 알파의 다른 복음, 곧 그 교회에 흘러들어온 거짓 교사들의 말에 넘어가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인정하되 할례도 받아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바울이 황급하게, 아주 긴급하게 편지를 썼습니다.

지난 3장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우리를 괴롭게 하는 종교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열심을 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할례도 받고, 구제도 하고, 기도도 많이 하는 것 모두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나의 열심이 그 열심을 내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차별하는 수단이 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람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종교성이 구원을 가져다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이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맺었습니다.

이제 오늘은 해산하는 수고를 이야기합니다. 바울은 결혼도 해본 적이 없고, 더구나 남자 아닙니까? 그런데 바울이 해산하는 수고를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율배반인가 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깊은 뜻을 오늘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것은 과정을 함께 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과만 받아먹겠다는 말이 아니고, 처음부터 과정까지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뜻입니다.

1. 율법 아래의 훈련

1-1. 후견인과 청지기

4장 1절에서 3절까지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큰 부잣집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큰 부잣집에 주인 어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지금은 그 주인 어른이 모든 재산의 소유와 처분을 다 행사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언젠가는 이 주인은 늙고 병들어 죽을 것이고, 낳은 아들이 성장해서 주인이 될 것입니다. 그런 개념을 가지고 보시면 됩니다.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습니다. 아는 것이 없으니까요.

2절 말씀입니다.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후견인은 에피트로포스(ἐπίτροπος)이고, 청지기는 오이코노모스(οἰκονόμος)로서 집안 대소사를 관장하는 직무입니다. 후견인과 청지기를 통해서 이 집의 도련님이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주인으로서 모든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잘 배워야 합니다. 이런 것을 배우지 않고 자기 멋대로 떠돌아다니다가 나이가 스물이 넘으면 되겠습니까? 이 집안의 복잡한 일들을, 집안의 모든 채무 관계와 채권 관계를 해결하고 해소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인사 관리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후견인과 청지기에게 잘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후견인과 청지기가 이 도련님보다 지위가 높거나 더 나아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이 도련님이 주인이 될 것 아닙니까? 옛날에 세자 교육하는 것 다 보셨잖아요. 그것 때문에 가르치고 또 익히게 하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율법이 이와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전에, 성령으로 내가 은혜받아서 나 스스로 믿음 생활을 홀로 서서 하나님 말씀을 분별하고 이 악한 세상을 승리하고 이겨내기 전까지는, 우리도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후견인과 청지기 같은 율법 말씀에 의해서 지배를 받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나중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순서가 바뀌더라도 그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이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율법 무용론자들입니다. 이것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1-2. 다윗의 훈련

다윗의 일대기를 한번 보겠습니다. 다윗이 어려서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으면 그 순간 무엇이 됩니까? 선지자가 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름병을 가지고 와서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세웠습니다. 안수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 순간 왕 아닙니까? 왕이잖아요. 그런데 왕인데 왜 왕이 못 됩니까? 왕인데 그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왕이었는데 그때부터 하나님은 그를 누구 밑에 두셨습니까? 사울 밑에 두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제정신이 박힌 왕이 아니잖아요. 종노릇을 하는데, 그 밑에서 종노릇하고 그 밑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는데, 제정신이 박힌 왕이 아닌 사울에게서 훈련 받도록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가 사울이라는 잘못된 환경 가운데서도 타산지석할 수 있게끔, 배우게끔, 거기서 훈련 받게끔 하나님이 그를 그쪽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진짜 다윗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다윗이 훌륭한 인격의 다윗이 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