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특강 4 - 보아스의 타작마당 (룻기 3장)

룻기 3장 7-9절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 가서 곡식 단 더미 끝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밤중에 그가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워 있는지라.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오늘은 룻기 공부 네 번째 시간입니다. '보아스의 타작마당'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봅니다. 룻기를 보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룻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깨뜨려야 합니다. 사실 룻 하면 이름부터 조금 약해 보입니다. 연약해 보이고 수동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룻은 그런 여인이 아닙니다. 그녀는 굉장히 강인하고 저돌적이며, 자기 할 말 다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그 은혜를 자기 것으로 취하려 했던 여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룻기를 보면서 간절한 소원이 있으면 진심으로 구하고 최선을 다해 나의 할 일을 해야겠다는 결단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늘에서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신앙생활은 이제 정리해야 하겠습니다.

1. 연결 고리의 역할

룻기를 보면 그 중간에서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먼저 나오미입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내 딸아, 내 며느리야, 여기 있으라. 떠나가라 하지 않겠다." 그렇게 붙잡아 주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나오미가 없었다면 룻은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무슨 수로 살았겠습니까?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세상을 떠났는데, 나오미에게 룻이 인생을 연결해 주는 연결 고리 같은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룻에게는 누가 살아갈 만한 연결 고리 역할을 해 주었을까요? 물론 보아스가 있지만, 보이지 않는 베들레헴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본 것처럼 룻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습니다. 곡식 베는 사람들 사이를 따라다니면서 이삭을 줍게 해 달라고, 베는 자 사이에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원래는 타작이 끝나고 나서 거기서 주워 가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그냥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환이 허락해 준 것입니다. 성경에 그분의 이름은 나오지 않으나, 그 사람들이 룻을 살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룻기를 보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나는 연결 고리와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연약한 자, 어려운 자, 마음이 상한 자, 인생을 놓아버리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연결 고리가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오히려 칼이 되어서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서 그 사람들 사이의 연결을 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내가 무심코 한 행동 하나가 그로 하여금 삶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 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룻기는 그런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또 한 가지 공동체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베들레헴 공동체가 참 좋은 교회입니다. 이런 좋은 교회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당시 룻이 살고 있었던 시대는 왕이 없어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룻은 정말 좋은 교회, 좋은 공동체를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요즘 세상에 참된 교회가 어디 있느냐, 요즘 세상에 다 거기서 거기지" 하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절망과 좌절과 패배감을 바꾸어 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내가 좋은 교인이 되면, 내가 베들레헴 교회의 한 사환 같은 사람이 되면, 내가 룻 같은 사람, 보아스 같은 사람이 되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우리 교회가 이 썩어빠진 세상에서 베들레헴 교회 같은 좋은 공동체가 되지 않겠습니까? 룻기가 우리에게 그런 희망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2. 나오미의 승부수

2-1. 은혜를 경험한 나오미

이제 오늘은 보아스의 타작마당입니다. 타작마당이 가지고 있는 상징이 상당히 특별합니다. 거기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보아스의 타작마당에서 밀을 타작하는 날, 나오미가 룻에게 어떤 말을 합니까?

지난 시간에 우리가 고엘(גֹּאֵל)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았습니다. 가알(גָּאַל)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영어로 하면 'relative', 친척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인데 고엘, 구속자, 건져 주는 사람입니다. 이제 나오미가 하나님의 은혜를 본 것입니다. 3장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지금까지 2장까지 주도권은 누가 가지고 있었습니까? 룻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룻이 "어머니,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내가 가고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됩니다" 하고 아주 주도적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가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제가 가서 곡식 주워 오겠습니다" 했습니다.

그런데 3장이 딱 시작되면서 그 주도권을 누가 가지게 됩니까? 나오미가 가집니다. 지금까지 나오미는 사실 베들레헴에 돌아오고 난 후부터 그냥 꽂아 놓은 화초처럼 별 의지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자기 과거와 후회에 사로잡혀서 말입니다. 그런데 보니까 며느리가 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아스라는 사람을 우연히, 마침 만나게 하시고 거기서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고, "여기서 뭔가 일이 일어나는구나" 하고 은혜를 한번 경험하고 나니까 나오미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한 말을 한번 보십시오. 1절 다시 보니까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합니다. 안식, 복되게 하겠다. 선물을 주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 며느리에게 안식할 곳과 복되게 하는 것, 이것이 결국 나중에 다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룻은 이 선물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 말씀에 의하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보장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 이것 먼저 주십시오. 하나님,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이것도 주시고, 하나님 이것 다 주시면 제가 그다음 뭔가 하겠습니다." 그런데 룻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기 민족, 고향, 모압 땅을 떠납니다. 우선 보장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그가 보장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냥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됩니다" 하고 신앙 고백부터 한 것입니다. 그리고 떠나니까 안식할 것도 주시고 그를 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