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 4:16)
이번 학기 우리가 룻기를 공부했고, 지금은 에스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룻기를 읽을 때 제가 말씀드린 것은, 이 이야기가 남편 잘 만나서 팔자 고친 여자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룻기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더 깊이 있고, 훨씬 더 처절하며,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배웠습니다. 실제로 룻기를 공부하니까 그런 부분이 순간순간마다 우리에게 드러났습니다.
에스더 이야기도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에스더 이야기도 오늘 우리가 읽어본 말씀처럼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며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고, 실제로 그 가녀린 한 여인이 제국에 맞서서 믿음으로 싸우고 믿음으로 살아내는 이야기입니다. 에스더 이야기는 거듭 말씀드리지만 끝까지 읽어봐도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의 섭리가 그 속에서 아주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전체적으로, 또 통전적으로 보아 모든 것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고 이해하셔야 합니다.
에스더 이야기를 보면 여러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성경에서 스토리가 있는 본문을 보면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여러분은 그 인물들을 어떻게 읽으십니까? 나와 아무 상관없이 그냥 객관화해서 읽으시면 곤란합니다. 아하수에로 왕 같은 인물을 보면 이분은 굉장히 자기중심적입니다. 우선 자기중심적이고, 제 멋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전쟁도 자기 멋대로 일으키고, 국가 예산도 마음대로 쓰고, 왕후 폐위하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굉장히 자기중심적입니다. 동시에 이분은 게으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것에는 아주 열심인데, 하기 싫은 일은 아예 안 하는 사람입니다. 또 판단력이 부재한 사람입니다. 전쟁에서 지고 왔는데, 그러면 그다음 해야 할 일이 뻔한데도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리분별이 없는 판단력 부재의 인물입니다. 그런 인물이 나라를 맡고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을 보면 사실 아하수에로는 인간 이하의 빵점짜리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비난만 하고 비판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이 사람 속에 있는 내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얼마나 게으른 인간인지, 나 하고 싶은 일에는 열심을 내는데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볼 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얼마나 큰 게으름인지 이것도 한번 헤아려 봐야 합니다.
그리고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 선과 악의 분별, 선한 것 중에 가장 선한 것을 분별해 내는 능력, 그리고 어떤 일이 있을 때 그다음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별, 이 분별이 과연 나에게도 정상적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를 통해서도 나를 보고, 에스더를 통해서도 나를 보고, 하만이라는 인간을 통해서도 나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제대로 보면 그 속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비추어서 회개하게 되겠지요. 잘하는 것이 있으면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오늘 이야기는 유대인들이 거의 죽음에 가까운 위기를 겪게 되는데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 하는 실마리가 잡히는 본문입니다.
하만이 등장하고 나서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절합니다. 마치 신전에 가서 절하는 것처럼 다 절하는데, 하만에게 모르드개는 하급 관료임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무릎 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의리이고 신앙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안 하는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전해줬고, 결국 모르드개뿐만 아니라 유대인들 전체가 다 진멸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만은 은 일만 달란트를 왕의 금고에 넣어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페르시아 제국 일 년 예산의 삼분의 이 정도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만큼 규모가 될까요? 올해 우리나라 예산이 얼마 정도 되는지 아십니까? 우리나라 지출 예산이 656조 6천억 원입니다. 생각보다 굉장히 많지요. 그런데 그중에 삼분의 이 정도 하면 400조를 훌쩍 뛰어넘습니다. 입에서 400조라는 말을 올릴 일이 없으니까 말도 제대로 안 나옵니다. 그런데 페르시아 제국이라고 하면 127도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만이 도대체 무엇을 해서 그 정도의 돈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사실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단들은 돈이 많습니다. 이단들은 돈이 엄청 많고, 정상적인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가난합니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땀 흘리고 수고하고 애쓰고 나의 노동의 결과로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먹고사는 사람들은 항상 고만고만합니다. 그런데 이 하만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만큼의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을까요? 한번 상상해 보시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그 정도 돈을 모을 수가 없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 전체를 진멸하고 그 재산을 다 가져오려고 합니다. 은 일만 달란트를 집어넣고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뽑아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부 다 비정상적인 것 아닙니까? 사람을 죽이고 살육하고, 이렇게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물질을 모으는 사람들이 하만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 속에는 능력이 없어서 못하지 욕망은 있습니다. 그런 욕망은 우리 속에도 하만 같은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자세히 끄집어내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를 비추어 보자는 말입니다. 이제 그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하만의 음모로 유대인들의 살육이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한 모르드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1절을 보십시오.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이 모든 일이 무엇입니까? 하만이 유대인들 살육을 결정했다는 것, 왕이 인장 반지를 그냥 줘버렸다는 것, 그 인장 반지에 도장이 찍혀서 왕의 조서가 반포되고 전국 127도에 다 뿌려지고 방이 붙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유대인들은 11개월 남은 시한부입니다.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며" 여러분, 이것이 무엇 하는 장면 같습니까? 옷 찢고, 재 뒤집어쓰고, 굵은 베옷 입고, 대성통곡하는 것 말입니다. 무엇을 할 때 이렇게 합니까? 회개할 때입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왜 회개를 하는 것입니까? 왜 회개합니까? 모르드개가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왜 회개하는 것입니까?
이 경건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을 우리가 좀 알고 계셔야 합니다. 경건한 유대인들, 즉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오신 분들의 삶의 방식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기를 먼저 돌아봤습니다. 어떤 상황이 딱 발생하면 우선 자기를 돌아보는데, 자기를 돌아보는 방식 중에 하나님 앞에 신앙적 행위로 반드시 한 것이 회개였습니다.
시편 59편 3절 말씀을 보시면 다윗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들이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들이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잘못으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나의 죄로 말미암음도 아니로소이다" 이 시편은 사울 왕이 다윗을 잡으려고 사울의 군대를 다윗의 집에 보낸 후에 겨우 탈출하고 나서 지은 시입니다. 어떻게 탈출했습니까? 사울의 딸 미갈이 이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가 다윗을 창문으로 달아내려서 도주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기가 시간을 벌어 줍니다.
그때 다윗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나에게 닥쳤는데 혹시 내 죄는 없었는가? 내가 이런 일을 초래할 만한 내 잘못은 없었는가? 자기를 우선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윗의 훌륭한 점입니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니까 결론이 나오지요. 나는 잘못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내 죄로 말미암음도 아닙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르드개도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까 이것은 그냥 일이 아닙니다. 사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무릎 꿇지 않을 때 그가 결단한 것 한 가지는 있습니다. 나는 순교를 각오하겠다, 나는 죽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에스더에게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자기 하나 죽고 끝내면 되는 일이니까, 신앙의 절개를 지키다가 죽으면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민족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내 문제는 없었는가, 자기를 돌아보는 것이 회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