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려 박사는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분입니다. 그분은 1911년 평안도 용천에서 출생하셨고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셨습니다. 그리고 일본 유학을 가서 나고야 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일본에 남아서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대형 병원에 취업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행보는 달랐습니다. 평양으로 귀국합니다. 로제타 셔우드 홀이 세운 기홀병원에서 가난한 자들을 보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환자들을 돌보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는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되는데 둘째 아들 하나만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옵니다. 이제 삼팔선이 가로막히고 휴전선이 생기고 나서 더 이상 돌아갈 수가 없게 되어 부산에 정착하게 됩니다. 1951년 부산의 어느 한 교회의 창고를 빌려서 무료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판자 하나 깔아두고 그 위에서 환자를 돌보고 수술을 했지만 수많은 환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환자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자 유엔군의 도움을 받아서 큰 천막 세 개를 빌렸습니다. 큰 천막 세 개를 빌려서 하나는 진료실, 하나는 수술실, 하나는 입원실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의 이름을 복음병원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병원이 지금의 고신대 복음병원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그분은 환자들이 돈이 없어서 진료 못 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열심히 정성껏 진료해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사회가 발전하면서 더 이상 무료 진료를 할 수 없게 되자 1968년에 청십자 의료보험 조합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이 마음껏 진료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것입니다.
그분을 나타내는 수많은 일화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농부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농번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퇴원을 해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데 퇴원할 길이 없습니다. 돈이 없어서입니다. 그래서 장기려 박사에게 부탁을 합니다. "박사님, 제가 어떻게 하면 퇴원할 수 있을까요? 저는 퇴원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습니다. 만약 여기서 병원을 나가지 못하면 올해 농사는 망치고 맙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때 박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환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밤중에 병원 뒷문을 열어둘 테니 그냥 가시면 됩니다." 그분은 굉장히 낭만적인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을 정성껏 간호하고 돈이 없는 분들을 마음 다해 진료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그분에게 차비까지 주어서 돌아가게 하셨다는 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평생 동안 변변한 집 한 칸 없었습니다. 병원 옥상에다가 자그마한 거처를 마련하고 거기를 사택으로 삼고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1995년 12월 어느 추운 겨울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분은 평생 동안 가난한 자들과 함께 있었지만 그분이 남긴 훌륭한 섬김의 자리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 가슴속을 적시는 아름다운 분으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하게 되었는가 돌아보면 그분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던 분입니다. 항상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것이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그 사랑 전하고 나누는 것이 무엇 그리 대단한가"였습니다. 그분은 부산 산정현교회 장로님이셨습니다. 부산 산정현교회는 평양 산정현교회의 후신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의 일사각오 정신과 이승훈 장로님, 조만식 장로님의 나라 사랑 정신이 살아 있는 교회를 섬겼던 훌륭한 장로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평생 동안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대로 전하는 일에, 배운 대로 행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던 분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장기려 박사님을 비롯해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 섬김의 본을 보여 주셨던 예수님, 섬김의 원형을 발견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섬김의 원형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섬기셨는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예수님 닮아서 세상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섬김의 자리에 서 있기를 원합니다.
우선 예수님의 섬김은 갈릴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30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오랫동안 사셨습니다. 원래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은 유대 땅 베들레헴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님께서 호적하러 베들레헴에 가셨다가 그만 그곳에서 아이를 출산합니다. 그곳에서 태어나셨지만 성장하기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셨습니다. 30년 동안 그곳에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 3년 중에 대부분도 갈릴리에서 보내셨습니다.
갈릴리는 호수를 중심으로 둘러싼 마을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호수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어부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호수를 기준으로 유대인들의 공동체와 이방인들의 공동체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그냥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셨던 그곳은 가난한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병자들도 많았습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해서 치료 시기를 놓친 병자들, 각색 병자들, 나병환자들, 중풍병자들, 수많은 병자들이 있었는데 주님은 그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곳에는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귀신 들린 자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귀신 들림을 다 만져 주시고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갈릴리와 대척점에 서 있는 한 도시가 있는데 유대 땅 예루살렘입니다. 그곳은 돈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정치 권력, 종교 권력, 일 년에 세 번씩 순례자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왜 그곳에 계시지 않고 갈릴리에서 사셨을까요? 예수님이 갈릴리에 사셨던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가진 자, 많이 있는 자들은 예수님이 필요치 않습니다. 돈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이고 권력이 그들의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못 가진 자,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30년 이상을 사실 때는 그들은 이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십자가 지시고 돌아가신 뒤에 부활하시고 나서는 하나님께서 그 복된 생명자를 이 땅에 보내 주셨구나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임마누엘의 약속이 우리에게 이렇게 임재하셨구나 그걸 깨닫고 그들은 그때부터 감격과 은혜 가운데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 섬김의 시작은 거창한 사역이 아니라 그저 그곳에서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삶으로써 섬김의 사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잘 사는 것이 이래서 중요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잘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 교회들은 선교사님을 많은 나라에 파송합니다. 선교사로서 해야 될 가장 첫 번째 일은 잘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것이 가장 우선되는 것이지 사역은 그다음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회들은 여러 선교사들에게 사역을 요구합니다. 교회에서 선교비를 이만큼 보내니 많은 사역을 만들어 내라, 사역 보고를 하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 사역보다 더 앞선 것은 삶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훌륭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 선교사들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삶을 통해 보여주어야 마음이 열리고 그다음에 복음 전파가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럼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우리의 일터와 가정과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 섬김의 첫째입니다. 거창한 일을 하지 않아도 내가 예수 믿는 자로서 제대로 살기만 해도 이것이 섬기는 일임을 분명히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우리 예수님의 섬김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31절을 보십시오.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 일은 주님 한 분 밖에 하실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죄가 없는 분이기 때문에 죄 없는 예수님의 피가 흘러야 죄 지은 우리 모든 사람들의 죄가 구속받고 사망에서 나음을 입을 수 있습니다. 죄 없는 분이 돌아가셔야 우리가 더 이상 죄와 죽음의 고통에서 신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