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에서 (막 9:14-29)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왕은 누구일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는 기원전 356년에 태어나 기원전 323년까지 33년의 짧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토는 당대 어느 누구보다 훨씬 넓었고, 그는 그 광대한 땅을 지배했던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마게도냐의 필립보스 왕이었는데, 아버지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아들이 열세 살 되었을 때 당대 최고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에게 영웅들의 서사시인 일리아드를 읽어 주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일리아드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읽고 또 읽으며 탐독했고, 훗날 전쟁 때에도 항상 일리아드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잠자리에 들 때도 머리맡에 두고 읽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더에게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정치학이었습니다. 그가 정치학을 가르칠 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한 가지 예를 들었는데, 그것은 바로 피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피리가 있는데 가장 좋은 피리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 사람들은 공평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실력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 피리를 가질 자격이 있다. 그것이 바로 정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말이 알렉산더의 가슴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평생 그는 이 말을 지침으로 삼고 자신의 철학으로 삼아 살았습니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했습니다. 이 세상 영토를 가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가 누구인가? 가장 위대하고 뛰어나고 지성이 있고 용맹스러운 자가 누구인가? 내가 뛰어나기 때문에 나는 이 넓은 땅을 소유할 자격이 있다.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를 복속시키는 이소스 전투에서 당시 대제국이었던 페르시아를 격파했습니다. 그리고 인도까지 나아갔습니다. 돌아와서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다가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제는 그가 죽은 후였습니다. 그의 사후에 평소 그의 지론대로 '강한 자가 권력을 가진다'는 원칙이 적용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과 장군들이 다툼을 일으켰습니다. 오랫동안 싸웠습니다. 이합집산을 거듭했습니다. 그러다가 셀레우코스 왕국과 프톨레마이오스 왕국과 마게도냐 왕국으로 그의 거대한 제국이 삼분되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위대한 영웅이 죽은 후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나라도 그렇고 기업도, 가정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는 위대한 영웅이고 위대한 거인이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 이후에 일어나는 수많은 어려운 일들이 우리 인간 군상의 모습들입니다.

오늘 읽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잠시 산 위에 올라가셨는데 산 아래는 난리가 났습니다. 이것이 오늘 예수님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오늘 이 땅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산 아래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길인지 함께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헤르몬 산 꼭대기로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변형되신 예수님께서 함께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천국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모습에 깊이 빠져들어 갑니다. 산을 내려가기 싫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겠습니다.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십자가 지기 싫어하는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 산을 내려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없이 행동으로 산을 내려가십니다. 제자들을 앞장 세우시고 우리는 십자가 지러 내려가야 한다고 하시며 산을 내려오셨습니다.

1. 말씀의 권위 상실

문제는 산 아래 세상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꼭대기에 가 계셨을 때 산 아래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을까요? 14절 말씀입니다. "저희가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산 아래에는 다툼과 변론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변론하다"라는 말은 적대감을 가지고 토론하다는 뜻입니다.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산 아래에 계셨을 때도 예수님과 제자들의 꼬투리를 잡기 위해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떡하니 버티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기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선생님은 왜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한마디로 그들의 도발을 정리하셨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 보면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장로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왜 유대인의 전통, 장로들의 전통을 어기느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를 더럽게 할 수 없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한마디가 그들의 도발을 단번에 잠재우셨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을 때였습니다. 서기관들이 와서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 말로 윽박질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들의 말을 당해내는 재간이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당시 제자들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 가장 권위 있는 능력의 말씀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도발에 한마디로 대응하지 못하고 소모적인 논쟁만 빙빙 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는 소모적인 논쟁이 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산 위에 올라가시고 난 이후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종교 권력자들입니다. 나이도 있습니다.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연소하고 나이도 어리고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작부터 치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명예나 물질이 권위를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권위를 가지고, 그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제자들은 권위가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었고 그 당시로서는 배우지 못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계셨고, 이 말씀이 예수님의 중심을 잡고 있으니, 말씀을 선포하실 때마다 어떤 사람의 도발에도 예수님은 기죽지 않으시고 말씀대로 살아가고 말씀대로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도 수많은 사람들의 도전과 수많은 소모적인 논쟁이 교회 안팎을 휩싸고 있는데, 말씀이 없으면 이리저리 끌려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큰소리를 내면 우리는 이 말이 옳은가 보다 하고 그쪽으로 생각합니다. 물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주장을 하면 말씀이 없으면 그 사람 말에 끌려가게 됩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주장하면 말씀이 없으면 그 경험을 따라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연약한 산 아래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3절과 24절 말씀입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바울은 디모데에게 무식하고 어리석은 변론을 버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주의 종은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는 자입니다. 무엇을 가르쳐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차근차근 가르쳐야 합니다.

그 당시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를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원래가 소심하고 마음이 약하고 나이도 어렸습니다.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때문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끌려 다녔습니다. 오죽했으면 디모데가 위장병이 났겠습니까? 그때 바울이 전합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더디더라도 차근차근 가르쳐라. 말씀이 교회의 중심이 되고 뼈대를 이루게 되면 교회는 소모적인 논쟁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 이 시대 교회가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넘쳐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입니까? 그것은 말씀이 뼈대를 이루고 중심을 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산 아래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권력과 사람들의 경험과 세속적 욕망에 휩싸여 흘러가는데, 그런데 거기서 우리의 중심축을 잡아주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산 아래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붙잡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2. 기도의 부재

산 아래에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 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18절 말씀입니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나이다.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산 아래 세상, 귀신이 사람을 제어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한 아버지가 나왔습니다. 그 아버지가 데리고 온 아들은 귀신 들린 아들이었습니다.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고, 넘어지면서 거품을 물고 오랫동안 병들어 힘들어하던 아들이었습니다. 이 아들을 데리고 나왔는데 제자들이 고치지를 못했습니다. 산 아래 세상, 귀신의 능력이 사람을 제압하고 제어하고 있는 세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