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본문: 창세기 12:11-16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안전에 대한 욕구를 지니고 있으며, 안전하게 살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국가 제도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저마다 성곽을 만들고 울타리를 치고 무기를 제작하여 자신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가족의 안전을 도모했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고 국가 제도가 고도화되면서 국가는 법과 제도, 질서, 그리고 여러 가지 공동체 사회의 유대를 통해 개인의 안전과 생명, 재산을 보호해 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완전하거나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힘이 강할 때도 있으나 힘이 약할 때도 있고, 힘이 약해지면 외부의 침략을 받기도 합니다. 심지어 국가가 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국민들은 피폐해지고 삶이 힘들어집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 36년의 세월은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일제 강점 기간 동안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 중에는 유명한 정치인도 있었고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사람도 있었지만, 일반 국민들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한 사람이 김약연이라는 분입니다. 이분은 일제 강점기 시절 자신의 재산을 모두 팔고 북간도로 이주했습니다. 그곳에서 땅 5만여 평을 매입하고 그곳에 한인들의 정착촌을 만들었으니 이름하여 '명동촌'이라고 했습니다. 동쪽을 밝히는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이분이 생각하기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 까닭은 조상 대대로 민족 교육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을 제대로 교육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사재를 들여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 학교 이름이 서전서숙입니다. 그 학교에서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 영화이자 민족 영화인 「아리랑」을 제작한 나운규 감독이 이 학교 출신이고, 동시에 저항 시인 윤동주 역시 명동촌의 서전서숙 출신입니다.

또한 서울 남산골에 이회영이라는 분도 계셨습니다. 이분은 일제 강점기가 되자 자기 집안이 소유하고 있었던 현재의 서울 명동 땅의 넓은 부지를 처분했습니다. 오늘날 시세로 환산해 보면 약 2조 원 가량이 됩니다. 그 엄청난 돈을 들고 서간도로 이주했습니다. 그곳에서 무관학교를 세웠습니다. 독립군을 양성하기 위한 학교를 세우고 그 학교는 훗날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이 됩니다. 만주에서 독립군들을 길러 일제에 무장 항쟁하도록 그는 그들을 뒤에서 지원했습니다. 무기를 사서 공급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이렇듯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일어난 까닭은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국가가 국가의 기능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능한 임금과 부패한 관리들이 한 통속이 되어 나라를 외세에 팔아먹은 결과가 바로 이런 피눈물 나는 몸부림이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가족의 안전을 지켜야 하며 국권을 되찾으려고 하는 많은 국민들의 몸부림이 독립 투쟁, 무장투쟁, 항일 운동으로 발현된 것입니다. 인간이 세운 나라는 이렇듯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나라도 망할 수 있고 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울타리를 떠난 자의 불안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강하신 하나님, 이 세상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통치하시는 한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쇠약해지거나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울타리 안에만 있으면 안전합니다. 그런데 가끔 어리석은 사람들 중에 자기 발로 하나님의 보호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떠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탕자가 그러했고, 오늘 본문의 아브람 역시 그러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울타리를 떠난 이후에 겪는 어려운 일들입니다. 세상은 어떤 곳인지, 세상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사고하는지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잘 알려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나는 정말 하나님의 보호 울타리 아래 거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울타리를 떠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분명히 깨닫고, 우리도 하나님 안에 거할 길을 다시 한번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브람과 사래와 롯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에 들어온 아브람의 가족은 큰 기대를 가졌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하나님을 따라왔으니 하나님이 보상해 주시지 않겠는가, 적어도 먹고 살 곳과 정착할 땅은 주시겠지 하는 기대였습니다. 그런데 살만한 땅에는 이미 가나안 원주민이 다 살고 있었습니다. 정착할 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황했고 낙심했고 실망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간절히 기도해 보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근이 몰려왔습니다. 아브람과 사래와 롯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애굽으로 내려가 버립니다.

그런데 그들이 애굽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쯤 뒷덜미가 서늘해집니다. 마음속에 불안과 염려,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 때문에 아브람과 사래는 거짓말을 공모합니다.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창 12:11-13)

두 사람이 우리는 부부라고 하지 말고 남매라고 하자고 거짓으로 공모했습니다. 사실 따지고 들어가면 이 두 사람은 원래 이복 남매였습니다. 아버지는 데라로 한 아버지였지만 배가 다른 이복 남매 출신입니다. 하지만 그건 과거의 일이고 현재는 엄연한 부부입니다. 동시에 이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약속의 동반자요 약속의 계승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서로 남매라고 하고 부부인 것을 숨기겠다고 거짓말을 하기로 공모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두려움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말하기를 당신은 미모가 출중한 여인이니 애굽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을 빼앗아 가고 나를 죽일 것 같으니 우리 서로 남매라고 합시다 하고 공모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들이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 땅에 올 때도 미지의 땅이었습니다. 그 땅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남매라고 소개하자고 공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갈 때는 이 땅도 역시 미지의 땅인데 여기서는 두려움을 더 심하게 느낍니다. 거짓말을 해야 될 만큼 두려웠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사실 가나안 땅에 올 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신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니까 일부러 속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무엇이 겁나고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경우가 다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떠나서 애굽으로 도망가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과 사래도 애굽 행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됩니다. 신앙 양심에 찔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의 울타리를 우리가 떠났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우리 스스로 우리의 안전을 지켜야 된다고 그들 스스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보호 울타리를 떠나는 사람들의 심중과 불안함이 얼마나 큰지, 강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 울타리를 떠나면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가인이 그렇지 않았습니까?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벌을 주셨는데 유리 방황하는 벌이었습니다. 그 벌을 받고 가인이 몹시 불안해합니다.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창 4:13-14)

하나님의 형벌을 받고 유리 방황하는 자가 된 가인은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나를 죽일 것 같다며 불안하다고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이 불안 때문에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 에덴 동쪽 놋 땅에 성읍을 쌓았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 한 것입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라멕 같은 사람은 자신의 상함 때문에 사람을 죽였습니다. 살인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의 연약한 모습이 불안과 공포, 두려움으로 표현됩니다.

사람이 불안하며 두려우면 행동양식에 몇 가지가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위선입니다. 선하지 않은데, 착하지 않은데 선한 척, 착한 척합니다. 그리하여 친구들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서 그 사람들을 통해 나의 안전을 도모하려고 합니다. 얼굴에 가면을 씁니다. 또 어떤 사람은 위악(僞惡)을 행합니다. 사실은 그렇게 악하지 않은데 내가 약하게 보이면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할까봐,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얼굴에 가면을 쓰고 강한 척, 악한 척합니다. 위선과 위악은 반대 개념 같으나 사실은 뿌리가 똑같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오늘 본문의 아브람과 사래처럼 거짓말을 합니다. 조금밖에 없는데 많이 가지고 있다고 허풍합니다. 그래야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무시당하지 않으니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