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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강좌 후기]

: 우리의 소원을 리메이크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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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준

:: 민들레교회, 달팽이학교 / 더불어숲플러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간신히 졸업했다. 장신대 신대원에서 성서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수업을 조금씩 들었다. 안산이주민센터에서 노동 상담과 국가별 공동체 지원을 했다. 김포중앙교회에서 교구와 청년부를 맡았다. 2011년 민들레교회를 시작했고, 2021년 달팽이학교를 조직했다. 김포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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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7월 25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만나는 분단 이후 최초 남북·북남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회담 17일 전, 7월 8일 김일성이 죽었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7월에 나는 대학교 1학년 신입생이었다. 1994년 7월은 6·25전쟁 전범 김일성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머리 박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김일성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얼마나 멋졌을까 하는 허망한 가정이, 내 머릿속에서 끈적하게 엉키던 여름이었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3단계 통일론과 햇볕 정책을 들으며 마음이 시원했다. 그때만 해도 통일이라는 단어를 말하거나 들으면 뱃속 깊은 곳에서 뭉근하게 온기가 올라왔다.

2000년 6월, 마침내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하던 사흘 동안 도서관에 비치된 거의 모든 일간지를 읽고 또 읽었고, 가판대에서 샀던 한겨레신문을 꽤 오래 간직해두기도 했다. 국제법을 가르쳤던 이장희 교수에게 ‘남북기본합의서’의 법적 성격을 배우고, 재독 학자 송두율이 쓴 『통일의 논리를 찾아서』를 읽고 후배들에게 설명해 주었다. 북조선에 심각한 재해가 덮쳐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던 고난의 행군기엔 외대기독인연합회 대표로서 북한 돕기 모금 운동을 주도했다. 학교 구내식당에 북한 상황을 소개하는 영상을 점심시간 내내 상영하면서, 매표소 앞과 식당 테이블마다 식사 중인 학생들에게 강청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약 1,200만원을 모아 학원복음회협의회를 통해 대한적십자에 전달했다. 졸업 후, 북한학 대학원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신학과 북한학 사이에 고민하다가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으며, 지금은 김포에서 모이는 민들레교회의 목사다.

그러나 이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 있었던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무효로 한 이명박 대통령과 개성공단을 폐쇄한 박근혜 대통령을 저주했다. 트럼프가 베트남에서 김정은을 모욕하며 우호적 상황을 뒤집은 이후부터, 통일에 관해 말하거나 들어도 감흥이 없었다. 멀리서 내가 사는 한반도를 관찰하며 냉소해 왔다.

민들레교회 목사로서, ‘장애인 자조 모임’을 기반으로 공부하는 협동조합 달팽이학교 조합원으로서,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왔다. 나는 냉소적이지만, 여전히 평화를 말하며 기대하며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밟아가는 활동가들을 존경하고 흠모한다. 경색된 한반도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트럼프의 예측 불가한 행보에 오히려 기대를 걸며, 평화를 포기하지 않는 활동가들의 열정에 떠밀려 김포에서도 평화 강좌를 열기로 했다. 하기는 하겠지만, 이런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민들레와달팽이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강좌 포스터

민들레와달팽이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강좌 포스터

주가가 오른다. 코스피 지수 7천이 넘었다. 나야, 뭐, 경제에 무능한 까닭에 코스피도 무언지 잘 몰라 코스피 지수 7천이 얼마만큼인지 가늠 안 되지만, 투자할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들은 한껏 상기돼있고, 약간의 잔고로 주식을 살 수 있는 서민들도 노후를 기대한다. ‘초과 세수 배당’이라는 정책 제안이 있을 만큼 정부 살림살이도 괜찮다. 그럭저럭 좋은 시절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른바 민주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열렸던 남북 정상회담 소문이 들리지 않지만, 분쟁 소식도 없다. 휴전선도, 북방한계선도 조용하다. 접경 지역 주민들을 괴롭히던 대남 비방 소음 방송도 그쳤고, 휴전선 이쪽저쪽을 적잖이 날아다니던 드론 관련 뉴스도 끊겼다. 미국과 이스라엘 때문에 시끄럽지만, 적어도 한반도 내에서 평화를 말하기엔 평화가 정착되어 버린 양 너무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