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지역에서 사회연대경제 강의를 하며 “성공사례 말고 대표적인 실패사례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특정한 실패사례를 꼽기보다는, 중도 포기나 갈등으로 이어지는 실패의 요인으로서 공공이든 민간이든 사회연대경제를 대하는 태도에서 무엇보다 ”조급증을 경계해야 한다”고 답했다. 사회연대경제는 단기간에 성과를 증명하는 사업이 아니라, 관계와 신뢰, 협력의 기반을 축적하며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가는 긴 호흡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쌔(根深之木 風亦不杌)” 조선 초 용비어천가의 이 구절은 지금도 유효하다. 뿌리가 깊어야 바람을 견디고, 줄기가 단단해야 열매를 맺는다. 그 순서는 바뀌지 않는다.

한동안 정책적 축소와 단절이라는 시간을 견뎌낸 한국 사회연대경제는 다시 새로운 흐름 앞에 서 있다. 사회연대경제가 국정과제로 채택되고, 지역 기반 경제와 시민사회 거버넌스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며, 관련 예산과 정책이 복원·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지금, 이런 때일수록 더욱 조급증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찌우고 있는 것은 뿌리인가, 아니면 바람에 쉽게 부서질 가지인가. 우리가 딛고 선 곳은 화분인가, 숲인가.

한국 사회연대경제가 살찌우는 것은? 딛고 선 곳은? (제작:GPT)

한국 사회연대경제가 살찌우는 것은? 딛고 선 곳은? (제작:GPT)

1. 뿌리 — 존재 이유를 끝까지 붙들고 있는가?

나무의 생사는 뿌리에 달려 있다. 사회연대경제에서 뿌리는 미션, 곧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왜 협동하고 연대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이유와 방향이다. 미션, 존재 이유, 가치, 지역과의 관계는 외부에서 대신 만들어줄 수 없으며, 조직 내부에서 형성되고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장의 조직들은 불안정한 재정 구조 속에서 생존을 위해 단기 공모사업에 의존하고, 단기 성과를 요구하는 지원 체계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그 결과 공모사업 중심의 재원 배분은 조직을 외부 평가 기준에 종속시키고 운영 방식의 유사화를 초래하는 **강압적 동형화(coercive isomorphism)**를 강화하며, 조직이 본래의 사회적 목적과 지역 기반의 실천으로부터 이탈하는 **미션 드리프트(mission drift)**를 유발할 수 있다. 결국 미션을 지키기 위해 재원을 확보해야 하는 역설 속에서, 조직의 에너지는 사람과 현장보다 보고서와 실적 관리로 이동하고, 가장 깊은 곳에서 조직을 지탱해야 할 미션의 뿌리는 서서히 약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다시 묻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조직을 시작했는가. 누구의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하려 했는가. 우리가 마주한 문제는 무엇이었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왜 하필 협동과 연대의 방식을 선택했는가. 당장의 사업이 끝난 뒤에도 남아야 할 것은 예산 집행의 흔적이 아니라, 관계와 신뢰, 그리고 공동의 방향이어야 하지 않은가. 결국 뿌리를 묻는 질문은, 사회연대경제가 여전히 자기 존재의 이유를 내부에서 길어 올리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이다.

2. 줄기 — 기대지 않고 설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있는가?

뿌리에서 끌어올린 힘으로 나무를 지탱하는 것이 줄기라면, 사회연대경제에서 줄기는 조직의 역량이다. 이는 문제를 발견하고, 사람과 자원을 연결하며, 시장을 만들고, 신뢰를 축적하는 수행능력을 뜻한다. 뿌리가 당사자 조직의 미션과 정체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줄기는 개별 조직 내부의 힘만으로는 충분히 축적되기 어렵고, 생태계 차원의 학습과 협력, 네트워크 거버넌스를 통해 함께 길러져야 하는 영역이다. 이런 점에서 중간지원조직은 개별 조직의 역량을 연결·매개·확장하는 **중개자(intermediary)**이자 **오케스트레이터(orchestrator)**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지원 구조는 장기적 역량 축적보다 단기적 가시성과 성과 산출을 우선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평가체계는 사업 수행 건수, 프로그램 운영 횟수, 참여자 수, 예산 집행의 정확성과 같은 행정적 지표에 집중되기 쉽고, 의회 보고와 감사, 예산 심의의 압박 속에서 장기적 변화보다 당장 설명 가능한 결과가 우선된다. 그 결과 조직이 실제로 무엇을 학습했는지, 어떤 관계를 축적했는지, 지역 내 협력 구조를 얼마나 심화시켰는지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James G. March가 지적했듯, 조직은 단기 성과 압박이 강할수록 탐색보다 활용에 치우치며, 새 가능성을 실험하기보다 이미 평가받기 쉬운 활동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연대경제도 마찬가지로, 지역 내 협력 관계, 시민 참여 문화, 조직 간 신뢰, 공동체 기반 문제 해결 역량처럼 시간이 필요한 성과를 축적해야 하지만, 현재 제도는 이를 기다려주기보다 가시적 실적과 외형적 안정성을 요구한다. 그 결과 조직은 스스로의 내적 역량을 키우기보다 외부 지지대에 기대어 잠시 곧게 서 있는 모습에 머물기 쉽다. 지지대에 오래 기대어 선 나무는 스스로 버티는 힘을 키우기 어렵듯, 사회연대경제 역시 외형적 성과만으로는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3. 열매 — 삶의 변화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가?

나무가 존재하는 이유는 결국 열매다. 사회연대경제의 열매 역시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삶이 실제로 나아지는 데 있다. 특히 시민과 지역주민이 “이러한 조직들이 있어서 우리 사회가 살만해졌다, 내 삶이 조금 덜 불안해졌다”라고 체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회연대경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게 된다.

유럽에서는 사회연대경제를 사회 전체의 웰빙을 떠받치는 중요한 열매 맺는 영역으로 인식하는 흐름이 강하다. 2025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조사에 따르면, 유럽 시민의 75%는 사회적경제가 사회 전체의 웰빙에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많은 시민들은 기업이 단순한 이윤을 넘어 사회·환경적 가치와 민주적 거버넌스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답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참여 경험이다. 유럽 시민의 절반 이상이 최근 5년 내 사회적경제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사회적경제가 일부 활동가들의 영역을 넘어 시민들의 일상 속에서 실제 열매를 체감하는 경험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반면 한국 사회연대경제는 아직 시민의 일상적 경험 속에서 충분히 가시적인 사회적 성과를 축적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히 조직 규모나 수의 한계에 기인한다기보다, 인식의 전환, 문화적 변화, 삶의 방식의 재구성처럼 장기적이고 관계적인 성과가 기존의 성과주의적 평가 틀에서 충분히 포착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사회연대경제는 시민 체감이라는 차원에서 그 사회적 유효성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한 채, 공모사업과 프로젝트 수행의 반복 구조에 머무를 위험에 직면해 있다.

조급증을 내려놓고, ‘백년 숲’을 상상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