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경험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협동조합에 관한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왜 이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야 하는지 몰랐다. 암종과 기수에 따른 치료를 받고 치료가 끝나면 일상으로 복귀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암 경험자들을 직접 만나서 왜 협동조합을 설립, 참여하고자 했는지를 듣고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암 경험자들이 운영하는 협동조합의 필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최근 필자는 학술지 《보건사회연구》(2026년 1호)에 「암 경험자의 협동조합 설립 과정: S사회적협동조합 사례」를 게재했다. 암 경험자 12명을 직접 만나 심층 인터뷰한 질적 연구로, 왜 그들이 협동조합이라는 낯선 형태의 조직을 스스로 만들거나 찾아들었는지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담아냈다.

연구에 참여한 암 경험자들이 공통으로 털어놓은 어려움은 크게 세 가지였다. 건강 정보의 혼란 및 관리 방법, 경제적 압박, 그리고 고립감이다. 먼저 정보의 문제다. 표준 치료를 마친 후 재발과 전이를 막기 위해 어떻게 먹고 운동해야 하는지 의사는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 환자들은 온라인 카페와 블로그, 유튜브를 헤매며 정보를 모은다. 하지만 쏟아지는 정보들은 서로 엇갈리고 충돌한다. 한 연구 참여자는 이것을 "끊임없이 목숨을 건 선택"이라고 표현했다. 치료 과정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실천할지의 판단이, 오롯이 개인에게 떠넘겨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암 치료 과정에서 건강보험공단의 지원이 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 많은데, 한 면접자는 “제가 면역 항암 주사 한 번 맞을 때 520만 원씩 들어갔어요. 보험이 안 돼요. 실비는 되는데 실비가 면책기간일 때는 제가 내야 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요양병원 입원비는 월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에 달한다. 대부분의 환자는 실손의료보험에 기댄다. 그런데 이 보험에는 '면책기간'이 있다. 일정 기간 동안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시간의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많은 암 경험자들이 요양병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집으로 돌아가지만, 집에서는 몸 관리가 쉽지 않다. 한 참여자는 면책기간 동안 요양할 곳을 찾아 양평, 속리산, 여수, 가평을 떠돌았다고 했다. "면책기간 끝나고 새로 시작할 때 (요양병원으로) 내려왔어요." 치료의 주기가 환자의 회복 상태가 아니라 보험 지급 방식에 따라 결정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세 번째는 고립의 문제다. 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다. 사회적 낙인이 두렵고,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가족에게도 터놓지 못한 걱정들이 쌓인다. 반면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달라진다. 암 치료 경험도 나누고, 서로 공감한다. 연구에 참여한 이들은 그 안에서 ‘우울감을 해소’한다고 했다.
연구가 주목한 'S사회적협동조합'은 2024년 12월, 9명의 암 경험자와 그 가족들이 뜻을 모아 설립했다. 현재 조합원은 80여 명. 이 협동조합은 친환경 식품 생협의 지원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생협에서 설립한 괴산J파크에는 숙박시설, 식당, 운동시설을 갖추고 있고, 그 안에 암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설립된 요양병원도 있다.
조합원이 되는 경로는 두 갈래다. 오랫동안 생협 조합원으로 활동하다 암 진단을 받고 이 협동조합으로 옮겨온 경우, 그리고 요양병원에 입원했다가 협동조합에 대해 알고 가입한 경우다. 이 두 흐름은 협동조합이라는 모델이 기존 사회적경제 네트워크와 의료 경험이 만나는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참여자들이 협동조합에 기대하는 것은 구체적이다.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는 면책기간 동안 요양병원보다 저렴하게 머물 수 있는 생활 공간, 식이·운동을 함께 실천할 수 있는 공동체, 그리고 나중에는 출자금을 모아 직접 힐링 리조트를 짓는 것. 면접 참여자 중 한명은 "1인당 출자금 500만 원, 1,000명이면 50억이 모인다"고 말했다.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을 함께 나눠 가능하게 만드는, 협동조합의 본래 원리가 이 맥락에서 살아 움직인다.
“좋은 일이라도 자금이 없으면 못 하잖아요. 이 자금을 한 사람이 내기는 위험 부담이 많은데 여러 사람이 나눠 안으면 망하더라도 그렇게 부담이 없잖아요. 저는 그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협동조합이 좋은 일도 하고도 싶은데 자금이 없고 자금이 있다 하더라도 위험 부담이 많으니까 망설여지는데 너도 나도 다 하니까 만약에 그게 안 됐다 하더라도 크게 타격이 없잖아요.” (김선화·김아영, 2026: 684)
이 협동조합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치료를 받는 수동적 위치의 ‘환자’들이 자신의 치료 경험을 기반으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여기 협동조합에서는 '환우 힐러' 제도로 언급하는데, 암을 겪고 잘 관리하고 있는 환자가 요양병원에 남아, 새로 입원한 환자의 식이·운동·일상을 돕는 역할을 맡는다. 의료진이 아닌 동료 경험자로서다. 한 연구 참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보험이 떨어지면 퇴원했다가 또 오시거나 이런 경우가 많은데, 저도 보험을 다 쓰고 나니까 있기가 곤란했었는데, 마침 여기서 일을 할 수가 있게 됐어요." 힐러로 일하는 것은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자신의 암 경험을 타인을 돕는 데 쓸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만족도가 높다.
이 과정은 수동적인 환자에서 능동적인 운영자·서비스 제공자로의 변화. 질병 경험이 고통의 서사로서만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순환하는 사회적 자본이 되는 순간이다. 협동조합이라는 구조 안에서 암 경험자는 이사회 임원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서비스와 정책을 제안하는 의사결정자가 되기도 한다.
이 협동조합에서 발견한 또 다른 의미는, 협동조합을 통해 우리나라 보건의료 패러다임의 혁신 가능성을 본다는 점이다. 현재의 의료 시스템은 수술, 항암, 방사선과 같은 질병이 발생한 이후의 치료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암 경험자들이 실제로 오랜 시간 싸우는 것은 재발과 전이에 대한 두려움이고, 이를 막기 위한 식이·운동·스트레스 관리는 의료 시스템 밖의 일로 취급된다.
S사협의 조합원들은 이것을 사회운동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면접 참여자들은 이것을 "치료 중심으로 가 있던 것을 예방 중심으로 바꿔가고 싶은 큰 물줄기를 트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친환경 먹거리, 규칙적인 운동, 심리적 지지망을 형성하면서 협동조합의 공동구매 및 공동실천 구조와 만나면 저비용 고효율의 예방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본 연구의 정책적 함의를 두 가지로 정리한다. 하나는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경제 조직을 암 경험자 통합돌봄 체계의 공식 서비스 전달 주체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현재 이들 조직은 공적 지원 체계 밖에 있다. 하지만 이미 생활 실천에 기반한 돌봄을 시작하고 있다. 이를 제도 안으로 가져오는 것은 국가 의료비를 줄이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