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아 우르, 하란, 가나안

본문: 창세기 11:10-12:3


'부르주아'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성 안과 성 밖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경제력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세금을 내는 사람은 성 안에 살며 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받습니다. 그러나 세금을 낼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성 안에 살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성 밖에 살아야 하고, 적이라도 쳐들어오면 그 위험에 고스란히 내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중세가 지나고 근대가 오면서 상공업이 발전하고, 상업을 통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부르주아가 됩니다. 이들은 산업혁명 시대의 공장을 소유했고, 역사를 통해서 보면 부르주아가 혁명과 혁신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과정을 살펴보면, 하나님 나라의 형성은 성 안 사람들보다 오히려 성 밖 사람들을 통해서 더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당시 성 안에는 누가 살고 있었습니까? 빌라도와 헤롯, 그리고 권력에 기생하며 살던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권력에 취해 있었고,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성 밖 사람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갈릴리 어부들,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복음 사역에 헌신했던 분들도 대부분 성 밖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에 등장하는 아브라함도 역시 성 밖 사람입니다. 성 밖 사람의 특징은 불안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이 그들 앞에 가로놓여 있습니다.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 밖 사람인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따라 오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안개처럼 자욱한 새해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심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성 밖 사람들입니다.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능력의 말씀이 안개 같은 이 세상을 헤쳐 나가며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더하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1. 상처를 통한 부르심

아브라함의 조상을 올라가 보면 노아를 만납니다. 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 세 아들을 두었습니다. 그중에 셈의 계보를 따라 내려가 보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 그리고 데라의 아버지 나홀을 만납니다.

"나홀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를 낳은 후에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데라는 칠십 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창 11:24-26)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 정보를 줍니다. 데라의 아버지 나홀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데라는 칠십 세가 될 때까지 자녀가 없었습니다. 칠십 세가 되어서야 아들을 낳았는데, 그 큰아들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시간이 한참 지난 후 큰 풍파가 찾아옵니다.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고향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죽었더라" (창 11:27-28)

데라의 가정에 칠십 세 후에 세 아들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큰아들이 아브라함, 둘째가 나홀, 막내가 하란입니다. 그런데 막내아들 하란이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이때가 어린 시절이 아니고 장성한 후였으며, 하란에게는 자녀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먼저 떠난 뒤, 자녀를 가슴에 묻는 부모의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정도로 굉장히 고통스럽습니다. 데라는 막내아들 하란을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잃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살았던 삶의 터전은 갈대아인의 우르입니다. 이곳은 유프라테스 남쪽에 수메르인이 세운 도시입니다. 이곳은 문명이 굉장히 발달한 곳이었고 우상숭배가 성행했습니다.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점토판이 다량 발굴되었습니다. 점토판이 발굴되었다는 것은 그곳에 학교가 있었고 교육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곳 연안에는 페르시아 만이 있습니다. 페르시아 만을 통해서 우상 제작에 필요한 각종 재료들이 수입되었습니다. 금과 은과 각종 여러 가지 제작 도구들이 수입됩니다. 이곳은 굉장히 우상숭배가 성행했던 우상숭배의 본거지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고별 설교에서 데라의 우상숭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수 24:2)

여호수아의 고별 설교에 데라의 우상숭배가 등장할 정도로 데라는 굉장한 우상숭배자였습니다. 그런데 평생을 우상을 섬겨 왔는데, 평생 동안 우상숭배자로 살았는데, 그 결론이 사랑하는 막내아들이 세상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얼마나 허탈하겠습니까? 얼마나 낙심이 되겠습니까? 평생 동안 우상을 섬겨 왔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 뿌리를 찾아 올라가고 또 찾아 올라가면 데라의 조상은 노아입니다. 노아의 조상은 셋과 에녹입니다. 예배 공동체 아닙니까? 가인의 후손이 아닙니다. 예배 공동체의 후손들이 어떻게 해서 갈대아인의 우르까지 떠내려 갔고, 그곳에서 우상숭배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열심히 우상을 섬긴 그 결과가 가정의 비극이었고, 아들의 죽음이라는 파국을 맞이합니다.

여기서 데라는 각성하게 됩니다. "내가 평생 동안 우상을 섬겨 왔는데 결과가 이것이라니! 하나님을 떠나서, 내 조상들의 하나님을 떠나서 내가 이곳까지 와서 열심히 우상을 제작하고 우상을 섬기고 충성을 다했는데, 결과가 아들의 죽음이란 말인가? 나는 왜 여기서 이 짓을 하고 있을까?" 각성한 이후에 그는 길을 떠납니다. 함께 떠나는 사람들을 성경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창 11:30-31)

함께 떠난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십시오. 데라의 아들은 셋입니다. 큰아들이 아브람, 둘째가 나홀, 막내가 하란입니다. 하란은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데라가 떠났고 아브라함과 사래가 떠나고 롯이 떠났습니다. 둘째 아들 나홀은 함께 떠나는 대열에 동참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상처받은 사람, 결여된 사람, 고통이 있는 사람이 길을 떠났다는 사실입니다. 데라는 아들을 잃었고, 롯은 아버지를 잃었고, 아브라함과 사래는 자녀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홀은 부족한 것이 없지 않습니까? 아픔도 없고 부족한 것도 없습니다. 열심히 우상을 섬겨 왔는데 자신의 인생에는 상처도 없고 결여된 것도 없고 문제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데라와 아브라함과 사래, 롯은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고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고, 이런 사람들이 함께 길을 떠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 번째 교훈은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과 상처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떠난 당시의 이들은 굉장히 쓰라린 가슴을 안고 길을 떠납니다. 아들이 죽지 않았습니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들은 다 있는 자녀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열심히 우상을 섬겨 왔는데 우상 섬긴 결과가 이것이라면 우리는 더 이상 여기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떠났습니다. 그들이 결단하고 그들이 결심하고 떠났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그 상처를 통해서 그 자리를 떠나게 하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그들은 쓰라린 고통과 상처와 교류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고통을 통해서 그들을 우상숭배 자리에서 건져 내셨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건 하나님의 은총이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