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므롯

본문: 창세기 10:1-12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약 400년간은 유럽과 북아메리카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중세의 막이 내리고 근대가 시작되었으며, 산업혁명을 위한 산업화의 기틀이 다져졌습니다. 북아메리카 대륙 또한 근대 국가의 면모를 갖추며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이 이처럼 발전하게 된 계기는 400년 동안 대서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삼각무역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지도를 펼쳐 보면 중간에 대서양이 있고, 그 주변으로 유럽 대륙, 아프리카 대륙, 북아메리카 대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아프리카로 상품을 공급했는데, 그 상품에는 설탕과 담배가 주종을 이루었고 동시에 총기류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노예를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공급했습니다.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팔려간 노예들은 사탕수수 밭과 담배 농장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그 넓은 땅에서 몸으로 봉사했습니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사탕수수를 통해 설탕의 원료를 채취하고 담배의 원료를 채취해서 유럽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총기를 보낸 이유입니다. 유럽 사람들은 아프리카 대륙의 부족들 간에 분쟁이 잦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총기를 공급하면 총기를 가진 부족은 그렇지 않은 부족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제압된 흑인들을 북아메리카 대륙에 팔아 치웠습니다. 이른바 노예 사냥꾼들입니다. 그래서 이 삼각무역의 핵심은 아프리카에서 북아메리카로 넘어가는 노예들이었고, 이렇게 400년 동안 팔려 나간 노예들이 약 1,200만 명에 달합니다. 그 가운데 약 150만 명은 대서양을 건너다가 배 안에서 사망했습니다. 1050만 명의 노예들이 북아메리카의 크고 넓은 대륙에서 사탕수수 밭과 담배 농장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들의 피 위에, 노예들의 희생 위에 유럽인들은 산업화를 이루었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유럽 사람들이 전 세계를 선도하는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은 노예무역이라는 부끄러운 과거에 빚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 하나 그 과거에 대해서 사과하거나 금전적인 보상을 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 2007년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매우 슬프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라고 한마디 한 것 이외에는 그들은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그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정복하고 지배했습니다.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는 사실 사고팔리는 사람들에게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 당신의 형상을 새기고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이 새겨진 사람을 자신의 소유물로 삼고 노예로 삼고 함부로 대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악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이런 사람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나는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 존중의 삶을 살고 있는지, 나눔과 배려로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함께 살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 악의 계보가 이어지다

사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좋은 역사나 나쁜 역사나 반복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 이후의 인류 역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집니다. 아담의 아들 셋의 후손 에노스를 통해서 예배 공동체의 역사가 있고, 가인의 후손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 에덴 동편 놋 땅에 가서 성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의 왕국을 건설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힘이 그들 삶의 유일한 목적이고 중심이 됩니다. 그들은 용사가 되기를 원했고, 고대의 명성 있는 자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홍수 심판으로 그들이 다 쓸려 내려갔습니다. 이제 세상에서 그런 자들이 자취를 감췄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이 역사는 반복되어서 함의 자손 중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다시 일어납니다.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창 10:6)

노아가 세 아들을 낳았습니다.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는데, 그중에 함이 또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함의 아들 중에 큰아들의 이름이 구스입니다. 구스가 또 자손들을 낳습니다. 그 자손 중에 한 특별한 사람이 태어납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창 10:8)

구스가 여러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에 한 아들의 이름을 니므롯이라고 지었습니다. 니므롯이라는 이름의 뜻이 중요합니다. 니므롯이라는 이름은 '반역하다', '배반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함의 아들인 구스가 자기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을 니므롯, 즉 '반역하다', '배반하다'라는 이름으로 지었습니다. 누구를 반역하고 누구를 배반한다는 뜻일까요?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짓는다는 것은 내가 이 아이를 이렇게 기르겠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누구를 반역하고 누구를 대항하는 아들로 기르려고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지었을까요?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창 10:9)

여기서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앞에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리프네'(לִפְנֵי)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이 단어는 합성어입니다. '레'(לְ)라는 전치사와 '파네'(פָּנֶה)라는 명사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파네'는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라는 뜻입니다. "앞에서"라는 의미의 '레'라는 전치사는 영어로 'against'라는 의미를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하여', '거슬러'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자가 바로 니므롯이라는 뜻입니다.

함의 아들 구스는 아들을 낳고 나서부터 아들의 이름을 니므롯, '반역하다'라는 이름으로 지었고, 그리고 그렇게 길러냈습니다. 하나님을 반대하는 인물로, 하나님의 대척점에 서는 인물로 길러냈습니다. 그가 그렇게 길러지고 그렇게 자라서 그는 하나님 얼굴 면전에서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자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니므롯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물이 아닙니다. 함에게서부터 시작해서 구스로, 구스에게서 니므롯으로 이렇게 만들어진 인물입니다.

함이 어떤 사람입니까? 함은 노아를 반대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인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말씀을 육체적으로만 이해하지 말고 영적으로 이해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아들 함은 아버지의 말이 무척 귀찮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잘못을 빌미 삼아 아버지 반대편에 섰습니다. 아들보다 손자가 더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함을 향해서 아버지는 강력한 경고의 말씀을 던집니다. 만약 그렇게 살면 너희가 네 형제들의 종이 될 것이다, 앞으로 그 종의 종들이 될 것이다, 부디 그 자리에서 떠나라고 경고하고 가르칩니다. 거기서 떠나야 했습니다. 함은 그 경고의 말씀을 듣고 지금이라도 돌이키면 회복하게 하실 것이라는 이 말씀을 듣고 돌이켜 떠나야 했습니다. 하지만 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함에게서 구스로, 구스에게서 니므롯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그들의 행위가 더 악해져 갔습니다. 함은 아버지 반대편에 섰지만, 손자 니므롯은 정면으로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정의 영향력이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무섭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