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고수현 설정 에 적은대로, 고수현은 경성에서의 마지막 해에는 기기 고치는 노동자 겸 경향문학가로 살다가 1936년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망명했음. 인터넷은 커녕 TV나 전화도 미비하던 당시 특성상 정보 지연은 몇 년이 기본이었고, 고수현 역시 레닌 때에는 고려인에게 우호적이었다니까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라고 희망회로를 돌렸으나.
- 역 가판대에서 맨 처음 뽑은 신문의 기사는 음악사에 길이 남을 프라우다의 ‘그 기사’였음.
- 이렇게 고수현 인생의 제 2막이 오른 것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 망명과 결혼
- 고수현은 연해주의 병원에서 기기 관련 허드렛일을 하면서 고려인 환자가 오면 통역하는 역할을 했음. 근데 그러다보니 한 간호사와 자주 마주쳤음. 간호사 이름은 다리야. 혹은 다샤.
- 다샤는 고아라서 친정 배경이 없었고, 흔히 생각하는 ‘슬라브 미소녀 스테레오타입’도 아니었음. 오히려 독일계 미국인을 연상시키는 선 굵고 강건한 타입. 현대라면 인기있을 상이지만 당시 여성관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보니…
- 그래서 다샤도 연애에 별 신경 안 쓰고 간호사의 실력으로 승부하면서 살았는데, 자꾸 마주치는 저 어버버한 외국인이 너무 신경쓰였음. 외국인이 눈새짓 좀 해도 봐주는 세상이 아니었으니까.
- 다샤는 너무 답답해서 맨날 고수현 붙들고 교육을 했는데 (물론 말 안 통하는 녀석이면 괜히 얽혔다 자기도 위험해지니까 바로 손절할 생각이었음), 신기한게 고수현이 납득하면 또 바로 학습은 하는거라...
- 사실 고수현도 이 시점에서는 일본 헌병에게 쫓기다 망명한 처지였고, 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고려인 커뮤니티에서 내일 보자던 사람들이 하룻밤새 ‘이사’를 가서 증발하는 현상을 몇 번 본 후였으니까 자기 생각만을 고집할 순 없었음.
- 그리고 사실 고수현은 프혁덕이라 공포정치와 테르미도르까지 꿰고 있었음(…)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이상주의자적인 면모는 있는데, 안 되는 상황에서 정신승리하다 죽을 정도로 간접경험치까지 낮진 않았다는 의미.
- 한편 고수현은 미남미녀가 기본인 연예계에서 살다 보니 역으로 사람 판단하는데 외모를 거의 안 보다시피했고 다샤도 그것을 느낌.
- 다샤는 어느 가을날 ‘겨울옷은 있느냐’라고 통역 끝나고 가려던 고수현에게 물었음.
- 고수현: 조선에서 가져온 옷이 좀 있습니다.
- 다샤: 그걸로는 감당 안 됨. 연해주가 부동항이라지만 바닷바람 무시 못한다. 그리고 여기랑 한국이랑 드레스 코드도 솔직히 좀 달라.
- 그렇게 둘은 주말에 같이 옷을 사러 갔고 고수현이 밥을 샀음.
- 고수현은 깨달았음. 이건 썸이구나(…) 근데 연애 경험이 좀 있었던 고수현과 달리 다샤는 모쏠이었고 자기가 한게 썸인지 뭔지 몰랐음. 고수현은 문화적 차이도 있으니까 무조건 그린라이트라고 일방적으로 판단하기는 곤란해서 기다렸고…
- 다샤랑 고수현은 각자 모쏠과 이방인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었으므로, 이게 진짜 호감인지 외로워서 아무나 찾는 건지 탐색하는 기간이 필요했음. 고민하던 다샤는 다른 사람 옷도 오지랖넓게 골라줄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은 다음 NO가 뜨자 고수현에게 사귀자고 했음.
- 그리고 고수현이 엄청 버벅대면서 블라디보스톡 바닷가에서 프로포즈함. 요점만 말하자면 [괜찮다면 앞으로 계속해서 서로의 발전과 생활을 돕는 관계가 되고 싶습니다]
- 둘은 혼인신고만 하고 식은 안 올렸음. 둘 다 가족도 없고… 나중에 다샤 친구들 불러서 스몰웨딩이나 할 생각이었는데… 스탈린이 문제였음. 네 다음 대숙청/강제이주.
1937년 고려인 강제 이주
- 고수현이 무난하게 적응했어도 37년 고려인 대추방은 못 피했음. 이건 일괄조치였으니까.
- 다샤는 짐을 싸서 플랫폼으로 따라왔고 고수현은 당연히 뜯어말림.
- 고수현은 당신은 여기 기반 있는 러시아인인데 왜 위험한 데를 따라오려 하냐고 말렸고, 다샤는 그런 리스크 안 계산하고 결혼하는 바보가 이 나라 어디 있냐고 쏘아붙이고 같이 추방열차를 탐.
- 한 5일정도는 앞날이 막막하고 환경이 열악해도 서로 의지하면서 갔음... 근데 1주일이 안 돼서 다리야가 격리당함.
- 왜냐하면 대규모 밀집수송되는 환경 특성상 거의 필연적으로 전염병이 돌았고… 다리야는 간호사니까.
- 멘붕하는 고수현에게 다리야는 내 직업이 그건디 어쩌긋어. 그래도 내가 너보다 살아남을 확률 높아. 하고 격리칸으로 뚜벅뚜벅 들어감...
- 주: 실제 역사에서는 격리공간이 없었을 확률이 훨씬 높음. 애초에 화물차 수송이었고 사망자의 매장을 가족이 담당했다는 기사가 있기 때문에…
- 근데 사실 주변에선 가족-것도 어린이나 노약자 위주로-이 문자 그대로 퍽퍽 죽어나가는 판인데, 의료요원 차출된 걸로는 힘든 티도 못 낼 일이었음. 고수현은 열차가 대륙을 횡단하는 동안 신경질적으로 코트만 움켜잡고 있었음.
- 고수현은 주변 눈치 봐가면서, 살아나온 사람들에게 다가가 ‘혹 붉은머리 간호사를 보았소?’ 라고 물어봤음.
- 몇몇이 봤다고 했음. 물론 정말로 본 건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렇게 답해준 건지, 심지어 기차에 붉은머리 간호사가 다샤 하나인지조차 불확실했지만 고수현은 그걸로 다샤는 살아 있다고 희망회로 태우면서 살음.
- 그리고 몇 주, 거의 달포가 지나서 기차는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에 플랫폼만 있는 역에 도착함. 기차는 지붕이라도 있었지 이제부터는…
- 격리가 끝나는 기간 동안 고수현은 또 허허벌판에서 잘 구덩이 만드느라 삽푸면서 기다려야 했고,
- 격리 종료일에 맨 마지막으로 나온 다샤랑 재회함.
- 다샤 왈 빨간머리 간호사 있냐고 자꾸 물어본 놈 너냐고 ㅋㅋㅋㅋ
- 후반부에 감염된 사람이, 다샤에게 ‘앞칸에 자꾸 빨간머리 양인 간호사 안부 물어보는 놈 있던데 혹시 그 간호사가 당신이냐’고 소식 들고 온 거.
- 재회한 둘이 삽을 푸던 중 (고수현은 보로딘의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를 떠올리며 ‘아 씨발 로딘아 너도 여기서 좀 살아봐라…’하고 중얼거리다 다샤에게 츳코미 먹었음), 같이 도착한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졌고, 현지 재료로 지을 수 있는 주택 템플릿도 생김.
- 그래도 벽 있고 페치카 달린 집이 생김. 물론 첫 겨울에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후긴 했지만...
- 비슷한 시기에 콜호즈 규격이 생겼는데 이 마을은 농업인은 많지만 기술자가 부족했음. 고수현은 ‘조선과 블라디에서 기계 관련 잡역 노동자였다’를 근거로 기술자로 차출됐고 교육을 받은 후 농기계 정비공이 됨.
제 2차 세계대전 - 나탈랴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