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별에서 온 다른 존재인 밀레시안인데 밀레시안이 뭐냐면, 별에서 온 다른 차원의 존재야. 너흰 모르겠지만 소울스트림이라는 곳에서 건너왔지. 이전에 살던 곳은 글쎄. 나는 어디에도 숨쉬고 어디에도 있을 수 있는 걸. 그건 무의미해. 지금이 중요하지. 이러나 저러나 에린에서 너희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지. 물론, 너희도 오래 이곳에 살아왔으니, 아마도, 내가 아닌 나와 같은 이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겠지.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밀레시안이잖아? 음유시인캠프에서 연주하는 이들도 밀레시안이고. 늘 같은 색으로 맞추어 입고 다니는 이들도 밀레시안이며, 포토샵이니 뭐니 알 수 없는 코드를 외우는 것도 밀레시안이지. 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일거야. 그들과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태초에’ 이곳에 존재하기 위해 온 존재도 아니고 여신을 한가득 믿지 않지. 나는 그냥 이곳을 사랑하는 이들 중 하나일 뿐이야. 그치?
있지, 에린에서 많은 일이 있었어. 대부분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너희들이었고, 블로니도 보고 전설의 세 용사도 만났고, 그에게 많은 원망도 듣고, 다른 밀레시안이 사랑한 이를 다시금 만나기 위해 만든 세계인 아본에도 가고, 많은 위기에서 이곳을 구하기 위해 여신의 힘을 빌리다 못해 얻어내고 결국 내가 신이 되기도 하면서 더 이상 별에서 온 자가 아닌 에린에서의 수호자가 되었지. 내 자의는 아니었지만 여신의 뜻이란 그런 거니까. 나는 너희처럼 신실하진 않지만, 너희가 살아가는 이곳을 사랑하니까. 그렇게 도움이 되고자 했던 거 같아. 가장 슬펐던 건 내가 너희를 도울 힘이 없을 때 화내거나 나를 비난하던 일이었어.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 내가 정말 이곳에 도움이 되지 않다면 필요없는 존재가 아닐까, 하고. 너희가 바라는 건 도움이 되는 밀레시안이지. 그저 노는 인간은 아니잖아. 그저 여신에게 선택 받은 내가. 너희에게 할 수 있는 건 도움이 되는 것밖에 없으니까. 그 결과로 내가 신성 기술을 얻긴 얻었지만. 그래도 들었던 비난들은 잊을 수 없을 거 같아. 나도 살아있는 이니까.
그럴 땐, 티르 코네일로 돌아갔던 거 같아. 이들 중 유일하게 나를 처음 맞아주고 기억해주는 사람은 던컨이잖아? 물론 다른 친구들도 많지. 아이던이나, 이젠 보기 어렵겠지만 알터라거나 좋아하는 이들은 많지만 다른 이보다 나를 이해할 사람은 던컨이나 나오 정도일테니까. 나의 본질을 아는 이들이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금 그곳으로 되돌아가곤 하는 거 같아. 이곳의 시작은 내 입장에선 티르 코네일이니까 말야. 쉬운 말로는 고향이지. 나의 고향은 그곳인 거 같아. 내게 안정감을 주는 곳.
그래도 너희를 사랑해. 나를 결국 미워하는 순간이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또 울고 실망하고 아프겠지만……. 그래도 너희가 죽는 것보단 다시 살아날 수 있는 내가 나을 거 같아서.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이곳을 사랑하게 만들었거든. 누가 나한테 화를 내도, 결국 어떤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그리고 생각해주니까 괜찮아. 나를 위해서 수호의 반지를 만들어준 아이던, 나를 구해준 알터. 한없이 다정한 블로니, 항상 없으면 안되는 오디파이코기와 실키에라. 내가 사랑한 모든 이가 에린에 있으니 나도 이곳에서 살아 숨쉴 수 밖에 없어. 미치도록 실망하고 상처받고 때론 육체마저 버려도 다시 되돌아올 수 밖에 없어. 혹여 내 존재가 이 세상에 방해된다고 하더라도. 붙어 있을 수 있는 한 이곳에 있고 싶어. 내가 사랑하는 너희들이 있는 곳이니까. 다시 되돌아올거야. 아마도 말야. 미래는 잘 모르겠지만.
애정해 마지 않는 나의 인연들아. 언젠가 이 편지를 알아보겠지. 아주 먼 훗날, 이곳을 떠나게 되면 그런 다정한 밀레시안이 존재했었다고 기록되는 한 장이 될까? 너무 큰 바램일지 몰라도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준다면, 그리고 나를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거 같아. 내가 애정을 붓는 것들은 하나같이 소중하니까. 그 처음이 내가 좋아하는 이라면 좋겠지만. 결국 에린의 누군가에게 전해지다 보면 그에게 닿고 말 거니까. 환생이 반복되는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의 애정이 닿기를. 그리고 영원토록 행복하기를 감히 바래볼게.
아, 어쩐지 근거없는 자신감이 솟아오릅니다. 나 이정도면 좀 잘 쓴 거 아닌가? 당신은 먼저 생각나는 불멸자에게 이 편지를 가져다줍니다. 편지를 읽은 상대방은 어쩐지 조금 떨떠름한 표정이네요. 그래서, 밀레시안 님이 진짜 에린을 떠난다고요? (안 그럴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