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언약 (창9:8-17)

그리스 신화를 보면 여러 신이 등장합니다. 그리스 신화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삶의 양식을 반영하는데, 거기에 나오는 신들의 모습은 우리가 기대하는 신의 모습과는 사뭇 다릅니다. 신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야비하며 교활합니다. 인간의 삶을 파괴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음란하기까지 합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신이 제우스인데, 제우스의 아내는 헤라입니다. 헤라는 질투의 화신이라 불리는데, 그 이유가 바로 제우스의 바람기 때문입니다. 제우스는 틈만 나면 애정 행각을 벌였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이 알크메네라는 여인과의 일입니다. 그 여인은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습니다. 남편이 먼 나라로 떠났을 때 제우스가 알크메네를 유혹했고, 둘 사이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헤라클레스입니다.

헤라클레스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헤라 때문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헤라가 질투에 눈이 멀어 헤라클레스를 끝까지 따라다니며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우스는 모른 척하며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의 사고관을 잘 보여주는 그리스 신화에는 이런 신들의 악행이 더할 나위 없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과연 인간의 삶에 개입하고 인간을 괴롭히며,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인간의 가정을 파괴하는 존재를 우리가 신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그 신의 노여움을 피하기 위해, 신을 달래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서양 사람들만의 세계관이 아닙니다. 동양, 특히 우리나라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민담과 설화를 보면 열악한 신들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받는 이야기를 자주 발견합니다. 구렁이를 섬기는 마을도 있습니다. 구렁이가 노하면 마을에 재해를 내리고 농사를 망치게 합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매년 처녀를 바쳐야 했습니다. 바닷가에 가면 용왕님을 노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용왕에게 항상 제사를 드립니다. 만선의 꿈을 안고 출항한 배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늘 바다의 신을 달래는 의식을 치릅니다. 이것이 오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악신과 잡신의 완악한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떠하십니까? 세상의 악신과 잡신을 하나님과 비교하는 것조차 불경스럽지만, 하나님은 한마디로 말하면 손해 보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위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내어 주시기까지 하셨으며,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힘입어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무지개 언약을 통해 인간과 약속하시고 언약을 세우십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손해 보는 언약입니다. 철저하게 인간이 유리하도록 만들어진 언약입니다. 이 약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을 향한 특별한 구원 계획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오늘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켜주고 계시는지, 하나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깨닫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의 손해 보시는 언약

먼저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하나님께서 노아와 노아의 가족, 앞으로 태어날 노아의 모든 후손과 언약을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상호적입니다.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갑과 을이 언약을 세우면 갑과 을 모두가 언약에 종속됩니다. 언약은 구속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굳이 인간과 언약을 세워야만 했을까요?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을 세우실 이유가 조금도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갑의 관계에 계시고 인간은 을의 관계에 있습니다. 갑과 을이 명확히 나뉘어져 있는데 하나님이 왜 굳이 언약을 세워서 스스로 언약이라는 한계 안에 갇히셔야 한단 말입니까? 그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과 언약을 세우시고 스스로 한계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가족, 후손들과 맺으신 언약의 내용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다시는 이 땅에 홍수를 내리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홍수 심판이라는 카드를 포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카드는 하나님 입장에서는 대단히 아깝고 유용한 카드입니다.

1-1. 홍수 심판 포기의 의미

생각해 보십시오.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은 홍수 심판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방주 안에 1년 10일 동안 있었습니다. 그들은 홍수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몸소 체험했습니다. 비록 쓸려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40일 밤낮으로 비가 내려서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다 쓸어버리는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 카드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이 훨씬 더 두려웠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홍수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너희가 똑똑히 봤지? 만약 앞으로 너희가 제대로 믿음 생활하지 않고, 제대로 말씀 보지 않고, 내 말을 어기거나 함부로 행동하며 살아가면 너희가 경험한 홍수를 너희 가정과 삶의 현장에 있는 즉시 다시 쏟아붓겠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이것은 인간을 통제하는 데 굉장히 유용한 도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스스로 그런 홍수 심판이라는 아주 유용한 수단을 폐기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가지고만 계셔도 인간을 통제하는 데,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될 만한 홍수 심판을 포기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 가지 이유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믿어주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인류가 실패하고 두 번째 인류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 그의 후손들을 한 번 더 믿어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도 알고 계십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잘못되면 얼마나 악한 인간이 되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 번 더 믿어주고 신뢰하기로 결단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신뢰할 테니 너희는 두 번 다시 악한 인생의 길을 걷지 마라. 그래서 내가 스스로 홍수 심판을 폐기하겠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입장에서 보면 절대적으로 유리한 언약입니다. 하나님이 손해 보시는 약속입니다.

1-2. 성경 전체에 흐르는 은혜의 언약

그런데 이런 약속은 여기 노아와 그의 자손들과 맺은 약속뿐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이 인간과 맺으신 모든 언약이 하나님이 손해 보시는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언약을 맺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데려다가 하늘의 뭇별을 보여주십니다. "네 자손이 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해주겠다." 아브라함이 잘 믿지 못하자 하나님이 짐승을 잡아오라고 하십니다. 짐승을 반으로 쪼개라 하십니다. 쪼갠 짐승을 길가에 벌여 놓으라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사이를 지나가십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내가 만약 너와 맺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이 짐승들처럼 쪼개어지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언약으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까지 하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왜 아브라함과 약속을 하시면서 "내가 이 약속 지키지 않으면 짐승처럼 쪼개어지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언약을, 하나님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언약을 하나님은 아브라함 한 인간을 위해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과도 이런 식의 언약을 맺습니다. 사무엘하 7장 9절과 16절을 보십시오.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다윗의 이름을 하나님이 영원토록 위대하게 만들어주고, 다윗의 왕위가 영원토록 견고하게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