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2장 14절 말씀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오늘은 야고보서 성경공부 세 번째 시간입니다. 1장을 2주에 걸쳐 공부했고, 오늘은 2장을 나눌 차례인데 제목이 '믿음과 행함'입니다. 믿음과 행함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쟁도 있었고 또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오늘 2장 말씀을 통해서 믿음과 행함의 변증법적인 관계, 그 관계에서 우리는 어떤 자리에 서야 하는지를 함께 배우는 시간입니다.
사실 이 야고보서를 보면 뭔가 거대한 말씀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거듭난 자의 특징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는데, 거듭난 자가 뭔가 위대한 능력을 행하고 바다를 가르고 물 위를 걸어가고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거듭난 사람은 듣는 것은 속히 하고 말하는 건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면 별것 아닌 것입니다. 잘 들어주고 말하는 걸 좀 참아주고 그리고 화내는 걸 좀 참아주는 것, 그게 거듭난 사람의 표시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이 작은 것을 거듭난 사람의 표시라고 말하고, 오늘도 그 믿음이 있는 사람에 대한 아주 소소하고 작은 걸 얘기하는데, 왜 이 작은 걸 얘기하느냐 하면, 사실 믿음은 그 기초가 아주 보잘것없고 작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게 무너지면 그 위에 집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기초가 무너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첫 시작이 중요하고, 우리 신앙생활도 뭔가 좀 큰 일을 하려고 사람들이 처음부터 생각을 하는데, 큰일을 하려면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가는 것입니다. 마음을 먹어야 되고 결심해야 되고 시작해야 되고, 그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어도 조금씩 쉬었다 갈지라도 방향을 정했으면 계속해서 나아가야 되고, 그걸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함이라고 하는 게 뭔가 위대하고 거창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이런 게 아니라 아주 일상적이고, 어떻게 보면 별 볼 일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별 볼 일 없는 게 해보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루 세끼 소식하고 하루에 충분한 운동을 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거, 다 알지만 그렇게 됩니까? 잘 안 됩니다. 저녁에 폭식하고 야식 먹고 늘어지게 자고, 잘 안 됩니다. 그런 것조차 잘 안 되는데, 믿음을 위해서 정말 믿음과 행함에 대해서 아주 소소하고 작은 걸 지켜 나가는 게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큰 믿음을 가진 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제 오늘 '믿음과 행함'을 한번 보겠습니다. 교재 14쪽을 보시면 '차별하지 말라'라는 주제가 나옵니다. 믿음을 가진 자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1절을 보시면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여기까지만 보고 뒤를 가려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뒤를 내가 그냥 임의로 채운다고 생각해보면, 믿음을 가졌으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게 뭘까요?
우리는 좀 큰 걸 생각할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을 가졌으니 뭔가 큰일을 해라. 순교해라. 믿음을 가졌으니 하나님 앞에 너의 목숨을 내놓아라. 믿음을 가졌으니 전 재산을 바쳐라." 이런 걸 막 요구할 것 같습니다. 특히 지금 이 시대가 초대교회이니까, 아직까지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 그런 시대이니까, 예수 믿는 게 발각되면 목숨을 걸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고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그다음 보십시오.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이런 말씀이 '믿음을 가졌으니' 이 뒤에 나오리라고는 별로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그냥 성경을 별 생각 없이 읽으니까 그런 것이지, '너희가 믿음을 가졌는데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사람을 차별하는 자는 믿음을 가진 자가 아닌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요즘 차별금지법이 야단인데, 그걸 법으로 정할 이유가 없고, 이미 우리 성경에는 차별하지 말라는 말씀을 이미 2000년 전부터 사도들이 이렇게 기록해 두신 것입니다.
여기 '차별하다'라는 말을 헬라어 원어에서 보면 '프로소폴렘프시아(προσωποληψία)'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의미가 뭐냐면 '누군가의 얼굴을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누군가의 얼굴을 들어 올린다. 이걸 차별이라고 했습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우리가 모여 있는 자리에 아주 멋진 옷을 입은 사람, 귀부인이 우리 앞에 이렇게 지나갑니다. 그러면 우리 얼굴이 이렇게 고개가 들려지고 그 사람이 따라가는 동선을 따라 계속 눈이 따라가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여기에 아주 유명한 정치인이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왔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얼굴이 들려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그분이 따라가는 동선을 따라가고, 또 굉장한 재벌이 여기에 왔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따라 우리 눈이 계속 움직일 것입니다. '저 사람이 왜 왔을까? 여기 온 이유가 뭘까?' 그걸 차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면 다른 말로 하면,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사람, 옷을 남루하게 입고 좀 못나 보이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우리가 얼굴을 들어 올릴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냥 왔는가 보다, 가는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 사람이 100명이 왔다 지나가도 내 눈을 들 일이 별로 없고 얼굴을 들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외모를 보고 우리의 얼굴이 들려 올라가고 그리고 우리 눈이 계속 따라간다면 이걸 차별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굉장히 포괄적입니다.
그다음 잠언에서도 이렇게 얘기하는데요. 24장을 보시면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낯을 보다'는 '외모를 보다'라는 뜻입니다. 재판할 때 그 사람의 외모를 보는 건 옳지 못합니다. 또 28장 잠언 28장에 보면 "사람의 낯을 보아주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1장 17절을 보면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외모라는 걸 우리가 한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진짜 외모입니다. 아주 잘생긴 사람, 아주 예쁜 사람, 그냥 말 그대로 외모를 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외모가 재력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돈이 굉장히 많은 사람, 그것도 외모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모가 권력도 그 안에 포함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외모라고 하는 건 진짜 외모, 우리가 말하는 외모, 그다음 재물, 권력, 이 세 가지를 다 외모라는 말로 통칭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 외모에 우리 고개가 들려지고 눈이 계속 따라가고 그런 사람을 더 존경하고 더 좋아하고 더 다르게 대하는 걸까요? 왜 그런 걸까요? 다시 우리가 1절 말씀으로 올라가 보면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믿음을 가졌다는 말은 누구를 신뢰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을 신뢰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외모가 굉장히 아름답고 굉장히 멋진 사람이 왔습니다. 그 사람을 내가 막 바라보고 눈이 따라갑니다. 그러면 그 순간 마음속에 어떤 마음이 듭니까? 저 사람하고 나하고 어떤 모종의 은밀한 관계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입니다. 물질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 우리 눈앞에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내 마음속에는 저 사람과 어떻게 하면 관계를 맺어서 저 사람의 물질로 내가 조금이라도 이득을 볼까 하는 그런 기대감입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이 우리 공동체에 왔다 갔다 하면 내가 저 사람의 권력으로 어떤 이득을 볼까 하는 그런 기대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