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신 (3) 그리스도의 비밀 (엡 3장)

에베소서 말씀은 교회를 위한 말씀입니다. 옥중서신을 시작할 때 네 권의 서신에 대해 그 특징을 간단하게 설명드렸는데, 에베소서는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냥 읽으면 이 말이 저 말 같고, 저 말이 이 말 같아서 똑같은 이야기가 이렇게 저렇게 계속 바뀌고 반복되는 것처럼 보여 그 의미를 찾아내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전한 복음이나 바울이 정교하게 사용하고 있는 표현들을 상세하게 살펴보고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살펴보는 이 시간이 우리에게는 참으로 귀한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지금 에베소서는 절정을 향해 계속 달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에베소서에서는 4장이 절정입니다. 4장이 가장 핵심이고, 4장에서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이 다 나옵니다. 오늘은 그 절정으로 올라가기 전에 바울이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해서, 자기가 맡은 사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을 살펴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내용은 우리가 바울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2000년이나 바울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울은 상당히 열정에 심취해서 이 서신을 기록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습니다. 같은 마음이 되어야 이것을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하고 이해가 되는데, 근본적인 마음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간극을 좀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내가 바울이 좀 되어야 합니다. 바울처럼 1세기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간절함이 있어야 하고, 핍박받는 그리스도인의 자리로 좀 들어가 봐야 합니다. 지금 내가 로마에서 구류된 상태에, 가택 연금된 상태에서 편지를 에베소 교회에 쓰고 있다고 상상하면서 읽으면 훨씬 더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1. 갇힌 자의 자유

1-1. 바울의 상황

바울은 지금 어떤 상황이며,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일을 주셨습니까? 바울은 지금 갇힌 상태에 있는데,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1절에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갇힌 자 된 바울이라고 말하는데, 바울이 지금 자유를 잃어버린 상황에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다르게 생각해 보면, 굳이 바울이 아니더라도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를 포함한 우리 모든 사람들,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갇혀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자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도대체 저 목사가 무슨 말을 하느냐, 나는 자유인인데, 자유 대한민국에서 지금 살고 있는데 무슨 말이냐" 이럴 수 있는데, 곰곰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돈 쫓아 사는 사람들, 자유롭습니까?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살고 있습니다. 물질 쫓아서 사는 사람들은 그 돈이 원수라고 하잖아요. 그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사람을 해코지하기도 하고, 형제간에 가족간에 서로 등 돌리고 원수 되기도 합니다. 돈에 갇힌 자 된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권력이 뭐라고, 그 권력을 잡으려고 권력이 자기 인생의 완전한 족쇄가 되어서 권력에 갇힌 자 된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 따라다니느라 인간관계에 갇힌 자 된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자유가 없는 사람들, 그냥 멀쩡하게 사지 육신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것 같은데, 이모저모로 여기저기에 매여 있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우리는 이 진리의 복음을 믿고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믿는 사람인데, 명색이 교회를 수십 년 다녔고 세례도 받았고 직분도 받은 사람인데, 여전히 거기에서 매여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울을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갇혀 있으니까 자유가 없고 구류된 상태에 있고, 나중에 바울이 디모데후서를 쓸 때 보면 그때는 진짜 순교하기 직전인데, 완전한 지하 감옥에 갇혀서 햇빛도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거기에 갇혀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우리더러 말할 것입니다. "진짜 불쌍한 건 너희들이 불쌍하다. 물질에 갇혀 있고, 인간관계에 갇혀 있고, 여러 가지 세속 권력에 갇혀 있는 너희가 불쌍하지, 나는 하나도 불쌍하지 않다. 내 몸은 여기에 갇혀 있으나 내 영은 자유롭고, 사람들이 내 몸은 여기에 억류해서 붙들어 놓을 수 있으나 내 영혼은 정말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다."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까?

진짜 누가 갇혀 있는지를, 어디에 갇혀 있는지를 명확하게 한번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바울이 불쌍하네, 감옥에 있으면서 이런 편지를 쓰네"가 아니라, 진짜 나는 자유로운가, 정말 나는 갇혀 있는 게 아니고 자유한가, 이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1-2. 은혜의 경륜

바울이 계속 이야기합니다. 무엇 때문에 갇혔습니까?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혔다"고 했습니다. 이방인을 위하여 갇혔다는 말은 이방 선교를 하다가 여기에 지금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2절에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경륜이라는 말을 썼는데요, 경륜을 헬라어로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라고 합니다. 이것은 직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경륜을 따라"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오이코노미아는 직무, 책임, 사명 같은 뜻입니다. 그러면 달리 읽어보면 "하나님의 그 은혜의 직무를 너희가 들었다", 곧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명이라는 뜻입니다. 이방인을 위하여 섬겨라, 이방인을 위하여 섬기다가 감옥에 들어가서 갇혀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직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직무를 어떻게 표현했습니까? 은혜의 경륜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직무를 은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나는 은혜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언제 우리는 은혜 받았다고 말합니까? 돈벼락 맞으면 은혜 중에 은혜입니까? 아닙니다. 돈벼락이 은혜 중에 은혜 같지는 않지 않습니까?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고 다들 살지만, 그런 은혜는 우리에게 잘 오질 않습니다. 은혜 중에 은혜는 구원받은 은혜 아닙니까? 그런데 바울은 그 이후에 은혜를 은혜의 직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갚을 수 없는 은혜, 감사하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중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사명을 은혜라고 생각하고 고백하는 분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십자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많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것, 그런데 이것이 참 힘든 일이거든요. 사명을 감당하는 것, 나에게 주신 사명, 권사의 장로의 목사의 성도의 나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은혜라고 표현하는 것은, 진짜 이것이 은혜라고 고백되지 않는 순간 하기 힘든 일입니다. 귀찮고 힘들고, 남들은 다 안 하는데 나 혼자 하는 것 같고, 쟤는 왜 안 하고 저렇게 잘 사는데 나는 왜 자꾸 나만 핍니까, 목사님 눈에 띄는 사람만 자꾸 시킵니까, 뭐 이렇게 자꾸 이야기하고 그것을 은혜라고 고백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을 은혜의 직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것을 내가 은혜로 받는 순간, 하나님은 그것이 진짜 은혜 되게 하시거든요. 그것이 진짜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바울이 그 뒤에 말하는 그리스도의 비밀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2. 비밀을 깨닫는 방법

하나님이 바울에게 알게 하신 비밀이 무엇입니까? 비밀이 무엇입니까? 너하고 나만 아는 것이 비밀입니다. 그런데 둘만 아는 비밀이라고 하는데, 그 비밀이 지켜집니까? "야, 너만 알고 있어" 그랬는데, 그 순간 다 압니다. 나는 나만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온 동네방네 사람들이 다 아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순간 이미 옆집에도 알고 뒷집에도 알고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비밀은 그런 유의 비밀이 아닙니다.

2-1. 계시로 주어짐

3절을 보십시오.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비밀, 하나님과 바울이 아는 비밀은 첫 번째, 계시로 주어집니다. 계시가 어떤 식으로 주어집니까? 계시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계시입니다. 내가 발견하는 것이 계시가 아니고, 하나님이 그냥 막 주시는 것이 계시입니다. 우리가 신학적으로 말하면 일반 계시가 있고 특별계시가 있는데, 성경에서 구약을 통해서나 혹은 신약을 통해서 볼 때 하나님이 계시를 어떤 식으로 주시던가요? 꿈을 통해서 주시기도 하고, 환상을 통해 주시기도 하고, 선지자의 말을 통해서 주시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계시를 던져 주시잖아요. 그런데 그 계시가 객관적으로 검증이 되어야 합니다.

2-2. 말씀으로 확인함

객관적으로 계시가 검증될 때 어떤 경로를 통해서 검증될까요? 내가 꿈을 꿨어요, 혹은 내가 말씀을 받았어요, 환상을 봤어요. 그런데 내가 계시를 받았어요,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비밀을 알려 주셨구나" 하고 성급하게 나가면 안 됩니다. 계시를 검증하는 방식을 이야기하는데, 4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읽으면 무엇입니까? 계시를 검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이것이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환상 보는 것 좋아하고, 꿈꾸는 것 좋아하고, 예언 받는 것 좋아하고, 등등의 초자연적인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확증해 주고 검증해 주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통해서 검증되지 않으면, 사탄도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하거든요. 이것이 분별이 안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아는 계시는,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다양한 방식의 계시는 말씀을 통해서 검증받아야 합니다. 바울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3. 성령으로 확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