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특강 3 - 그리스도의 편지 (고후 3장)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고린도후서 3장 3절입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고후 3:3)

오늘은 고린도후서 세 번째 말씀으로 3장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말씀인 고린도후서 2장에서 바울은 거짓 교사들과 거짓 선지자들에게 끊임없이 공격받았습니다. 그들이 공격한 이유는 애초에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두 번이나 방문하려 했으나 그 계획을 긴급하게 수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상황이라는 것은 하루에도 여러 번 바뀌는 것인데, 그 상황을 본질과 혼동하고 착각한 사람들이 벌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질적 사역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를 지실 때 오직 "예"라고만 하신 것처럼, 자신도 본질 사역에는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따른다고 했습니다. 본질 사역을 붙들고 사는 자에게 주시는 가장 위대한 은혜가 바로 성령을 보증으로 주시는 것이라 했습니다. 마치 장사하는 사람들이 보증금을 받는 것처럼, 성령이 우리에게 보증이 되면 끝까지 지속적으로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거짓 선지자들과 함께 교회를 뒤흔들었던 사람들을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징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징계는 징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용서를 전제로 하는 징계입니다. 징계를 받고 그것을 수용하면 공동체가 그 사람을 용서합니다. 용서한 후에는 성령으로 그를 위로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위로한다는 말은 말씀을 계속해서 먹이고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친다는 뜻이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괴로웠을 때 드로아에서 복음의 문이 열렸으나 복음을 전할 수 없을 만큼 괴로웠습니다. 그는 어떻게 견디고 이겨냈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의 위대한 개선 행진을 기대하며 미리 감사했습니다. 로마의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도 그렇게 탁월하고 특별한 개선 행진을 열어주는데, 그때 꽃가루가 날리는 향기, 사람들이 가면서 풍기는 아름다운 향기, 그것보다 비교할 수 없는 천상의 향기가 우리에게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이 땅의 어려운 일들을 잘 이겨내겠다고 결단했습니다. 이것이 고린도후서 2장의 이야기입니다.

1. 그리스도의 편지

오늘 3장 이야기는 '그리스도의 편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편지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 내용이 1절부터 나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을 문제 삼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답을 제시합니까?

1절을 보면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라고 합니다. 자천이 무엇입니까? 스스로 자기를 추천하는 것입니다. 자천은 민망한 일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당신은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라고 추천해 주어야 하는데, 내가 나를 자천하는 것은 경우에 어긋나기도 하고 민망한 일입니다.

1-1. 종이 추천서의 한계

그런데 이 이야기를 왜 합니까?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붙이거나"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누굽니까? 바울이 고린도전서와 후서에서 계속 언급하는 어떤 사람들은 거짓 교사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늘 했던 일이 있습니다. 바울의 사도권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원래 사도라 함은 그리스도께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실 때부터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님과 함께 행했던 자들이라 하는데, 어떻게 바울이 사도냐, 예수님과 함께 얼굴 본 적이 있느냐, 면식이 있느냐, 바울은 정식 신학교를 나왔느냐 하는 등의 여러 가지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그런 사람들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붙이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의 사도권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추천서를 들고 온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면식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기 교회를 개척한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이 자기들이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어떤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지를 입증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어떤 사람들이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어디선가 추천서를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디에서 왔을까요? 그 추천서의 출처가 어디겠습니까? 뻔합니다. 그 당시 초대 교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교회가 어디입니까?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가장 권위 있는 모교회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세 분 있습니다. 누굽니까? 베드로, 야고보, 요한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아니더라도 예루살렘 교회에 탁월한 지도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추천서를 들고 와서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에게 인정받은 사람입니다, 보십시오 여기 직인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이러이러한 학벌을 가지고 있고 이런 정도의 권위를 가지고 있고 이런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내 말을 들어주십시오"라고 들이민 것입니다.

그런데 추천서라고 하는 것이 참 이중적이지 않습니까? 진짜 사람을 추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손잡고 데리고 가서 앉혀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얼굴과 얼굴을 보고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라고 진심으로 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종이에 그냥 몇 줄 써서 도장 찍고 직인 찍어 보내는 것은 형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이런 추천서를 받아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하겠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도대체 누가 이런 추천서를 썼느냐고. 뻔합니다. "이것 좀 써주십시오, 제가 여기서 훈련받았습니다, 저는 이 교회 성도입니다"라고 하면 사도들이 안 써주고 배기겠습니까? 저에게도 일 년에 수십 통씩 추천서를 써달라고 합니다. 굳이 이 사람이 우리 교회에서 아주 친하지 않아도 이러이러한 훈련을 받았다는 것은 써줍니다.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들고 와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1-2. 살아 있는 추천서

그러니까 바울에게 이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그럼 나도 한번 나를 추천해 볼까?" 바울이 지금 이런 상황이라면 자기가 추천서를 어디서 받아오겠습니까?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웠습니다. 가말리엘 선생님이 살아 계시다면 가서 선생님 추천서를 받아오면 됩니다. 본인과 동문수학했던 사람들의 추천서를 받아와도 됩니다. 그러면 유대교 율법에 정통한 추천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예루살렘 교회 베드로에게 가서 받아와도 됩니다. 그런데 그런 짓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고요? 2절을 보시면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고 했습니다. 이 편지라는 말은 추천서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곧 우리를 추천하는 추천서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누가 추천서를 어떤 식으로 써서 교회를 어지럽힐지 몰라도, 그러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나를 입증하는 추천서다, 너희가 나를 입증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이 대단한 반전이고 놀라운 고백입니다.

그다음에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썼다"고 했습니다. 너희의 삶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삶이 내 마음에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의 삶을 보면 내가 교육을 잘한 것을 사람들이 다 알 수 있다. 너희들이 교회를 섬기는 모습을 보고, 이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보면, 내가 굳이 다른 사람들의 추천서를 가지고 와서 내가 나임을 입증할 필요가 없다. 너희들의 삶이 나의 사도 됨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