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고린도전서 특강 세 번째 시간입니다. '고난에 대처하기'라는 제목으로 고린도전서 4장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고린도전서는 굉장히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공중에 붕 뜬 사변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어떻게 믿음으로 해결하고 풀어갈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고린도교회는 문제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요즘 교회도 문제가 많지만, 사실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보면 요즘 교회는 애교에 가까울 정도로 고린도교회가 아주 심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같으면, 우리 성질 같으면 그냥 쓸어버리고 싶은데,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그 교회를 계속해서 세우시고 말씀하시고 이끌어 가십니다. 책망도 하시고, 때로는 잘하는 것은 잘하는 대로 인정도 하십니다. 이는 교회 공동체뿐만 아니라 우리 개인에게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사실 남은 잘 모르지만 내가 나를 잘 알지 않습니까?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결코 나를 포기한 적이 없고, 계속해서 세워 가시고 북돋아 가시고 용서하고 기다려 주십니다.
오늘 4장 말씀은 사역자들과 교회에 대한 관계, 그리고 사역자들이 받는 고난에 대한 이유를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지난 시간에 사도들이 시종이라고 했습니다.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 섬기는 자, 시종입니다. 같은 맥락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이렇게 나뉘어서 싸우니까 사역자들은 그냥 종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4장은 좀 더 구체적으로 누구의 종이냐를 설명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여기서 '사람'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입니다. 너희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마땅히 우리를, 우리는 누구입니까? 사역자들, 바울과 아볼로와 디모데 등의 사역자들을,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휘페레테스(ὑπηρέτης), 종입니다. 지난 시간에 디아코노스를 시종이라고 말한 것처럼, 휘페레테스도 종인데 시종보다 조금 더 하등한, 조금 더 열등한, 조금 더 열심히 일하는 종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일꾼 즉 종이라고 했는데 누구의 종입니까? 사람의 종입니까? 그리스도의 종이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그런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했습니다. 사역자들, 바울과 아볼로 같은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인데 어떤 일을 하는 종들입니까? 하나님께서 임무를 주셨을 것 아닙니까? 어떤 일을 하는 종들입니까?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무엇일까요?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비밀입니까?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그 사역자들에게만 알려준 비밀입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자들이 이단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나한테만 말씀하셨다. 나에게만 와서 들어야 된다. 하나님은 특별한 계시를 나에게만 주셨다." 이단이죠. 거기서 조금 더 나가면 "이 세상의 종말,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를 하나님이 나에게만 알려 주셨다" 하면서 계속 성도들을 세뇌시키고 교육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게 이단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다 알려진 비밀, 알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비밀입니다. 그 비밀은 십자가입니다. 성경,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안 읽어 본 사람, 읽더라도 그 말씀을 가지고 살아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비밀입니다. 왜요? 들춰보지도 않았는데 그 진실을 알 턱이 있습니까? 들춰보고 성경을 읽었다 하더라도 말씀대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그 말씀의 능력과 말씀의 놀라운 역사를 알 수 있습니까? 알 턱이 없습니다. 그래서 비밀인 것입니다.
정말 신기하지요. 성경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집에 가보십시오. 여기저기 던져져 있는 성경책을 다 꺼내 보십시오. 성경책은 버리기가 마음에 좀 꺼려져서 버릴 수는 없고, 지금까지 수십 년 신앙생활하면서 모아놓은 성경책이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많이 읽었고, 공부도 많이 했고, 설교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니까 나에게는 비밀인 것입니다. 말씀은 살아내고 부딪쳐보고 말씀대로 한번 투쟁해 본 사람에게는 비밀이 아닙니다.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능력이 그런 것입니다. 너무너무 신비롭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잘못 가르치는 이단들이 "거봐, 하나님의 말씀은 비밀이라 그랬지. 그 말씀을 맡은 사람이 나 같은 사역자들이야. 너희들 일반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로 알려질 수 없다. 나한테 와서만 배워야 된다." 그게 이단입니다. 큰일납니다. 그렇게 따라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읽고 따라가는 자에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그런데 먼저 깨달은 자들이 있습니다. 바울처럼 먼저 말씀을 읽고 먼저 말씀대로 살아보고 말씀에 헌신된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위탁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나오죠, '맡은 자' 오이코노모스(οἰκονόμος), 관리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관리하고 맡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는 그냥 꽁꽁 싸매어두고 자기만 알고 자기만 읽고 자기만 경험하고 "이렇게 경험하니 좋네, 내가 은혜받고 구원받았네" 하며 가두어놓고 있으면 됩니까? 안 되지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해야 합니다. 가르치고 전하고 권면하고 살아보라고 얘기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목회자도 있고, 부모님도 있고, 부역장도 되고, 성경을 가르치는 성경 교사들도 되고, 다 그런 사람들인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입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와 아볼로는 하나님의 비밀을 먼저 경험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가르치고 먹이고 돌보는 맡은 자, 오이코노모스다, 관리인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죠.
그다음, 그런 사도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2절,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무엇을 맡은 자들입니까?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입니다. 그 비밀, 말씀을 맡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충성입니다. 피스토스(πιστός), 신실함, 진실함이란 뜻이죠. 누구에게 신실하고 누구에게 진실해야 됩니까? 하나님에게,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말씀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에게 진실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