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특강 3 - 율법에서 믿음으로 (갈 3장)

본문: 갈라디아서 3장 11절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오늘은 갈라디아서 공부 세 번째 시간으로, 3장을 본문으로 삼아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갈라디아 교회는 하나의 교회 이름이 아니라 지역 이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갈라디아라는 한 지역 벨트를 갈라디아 교회들, 갈라디아 지역이라고 하는데, 네 군데 교회를 꼽을 수 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이렇게 네 군데 교회를 우리는 갈라디아 교회들로 떠올리면 됩니다.

바울의 첫사랑이었고, 바울이 1차 선교여행 때 그 지역 교회들을 개척했습니다. 처음이니까 열정이 있고, 더 뜨거운 마음이 있고, 잘됐으면 좋겠다 하는 간절한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2차 선교여행, 3차 선교여행에서 항상 갈라디아 지역 교회 벨트를 다니면서 그곳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바울이 정말 열정적으로 해산하는 고통을 가지고 복음을 전했는데, 그만 거짓 교사들, 유대인 거짓 교사들에게 속아 넘어갑니다.

다른 복음이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데, 원래 구원이라고 하는 것 우리가 잘 아시다시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것 아닙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데, 거기에다가 슬쩍 물타기를 합니다. "물론 믿음도 중요하나, 그러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고로 할례를 받아야 된다." 그래서 같은 값이면 믿음도 있고 할례도 받으면 좋지 않겠는가 하니, 사람들이 할례를 저마다 앞다투어 받기 시작합니다. 할례 그 자체는 가치 중립적인 겁니다.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되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겁니다. 그런데 이게 구원과 연결되는 순간 바울은 사나워집니다. 절대로 할례받으면 안 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헬라인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않습니까? 그리고 절대로 할례받지 못하게 합니다.

2장에서 살펴본 바는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였던 베드로가 안디옥에 올라왔다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하던 중에 예루살렘에서 올라온 유대인들을 두려워해서 도망가 버린 사건이 나오지 않습니까? 바울은 이 교회 공동체의 분열을 염려합니다. 기껏 하나 되게 했더니, 기껏 복음 안에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차별 없이 했더니,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이 올라와서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어지럽혔습니다. 이걸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책망합니다. 2장까지의 내용입니다.

이 갈라디아서는 쉬운 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3장은 바울이 이제 조금 더 신학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갈라디아서는 작은 로마서라 할 만큼 교리적인 내용으로 풍부한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다 보면 길을 잃습니다. 그래서 오늘 로마서 이야기를 축약해서 하고 있고, 또 아브라함 이야기도 군데군데 많이 나옵니다. 이 순서를 따라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바울의 책망

1-1.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

바울은 1장에서 다른 복음은 없다는 걸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2장에서는 베드로 책망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제 3장에서는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직접 책망합니다. 그 책망의 이유가 1절에 나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이 복음으로, 믿음으로 구원받는 사실에 더해서 할례를 받았지 않습니까? 그 소식을 고린도에서 듣고 견디다 못해 화가 나서 편지를 쓴 것입니다. 어리석다고 말했습니다.

왜 어리석으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왜 못 박히셨습니까? 우리가 무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걸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됩니다. 내 행위로는 구원에 이를 만한 육체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난주에 말씀드렸다시피 믿음이라고 하는 건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잘난 줄 알면 행위를 합니다. 이걸 통해서 구원받으려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행위를 합니다. 그런데 정말 믿음이라는 것은 내 행위로는 도저히 내가 구원이라는 것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내 무능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내 무능을 인정한 그것을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우리의 무능을 인정하는 자들을 위한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이유가 없죠. 우리가 우리의 무능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기가 행위를 통해서 구원받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 바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걸 보고도 너희가 너희 행위를 주장하느냐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1-2. 성령은 어떻게 받았는가

2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고 말씀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성령 공동체 아닙니까? 그런데 질문하는 겁니다. 너희가 성령받은 것이 어떤 행위의 결과로 성령이 주어진 것이냐, 아니면 그냥 선물로 받은 것이냐고 말입니다.

사도행전 1장 13절과 14절을 보면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했습니다. 언제 사건이냐 하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난 이후 바로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들을 지금까지 인도하고 이끌어 주던 선생님이, 그것도 부활하신 분이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구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이제 남은 자들, 뭘 해야 됩니까? 얼마나 상실감이 크겠습니까? 남은 자들은 무능합니다. 힘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들입니다. 얼마나 무능합니까? 이 무능한 자들이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모여서 한 것, 딱 한 가지 그게 무엇입니까?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한 것은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언제까지 이어집니까? 사도행전 2장을 보시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모여서 또 뭘 했을까요? 놀았을까요? 기도했죠. 기도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재하는 사건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면 이 과정에서 어떤 행위가 있습니까? 그들의 무능을 인정하고 기도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들이 할례받은 것이 있습니까? 혹은 그들이 거기에 선을 행하고 선한 일을 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돈을 내서 구제하고 한 행위가 있습니까? 그런 것 없지 않습니까? 그냥 기도했을 뿐인데, 기도는 무능한 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힘없는 자들이 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자들이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이 기도인데, 그 자리에서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라는 선물은 내가 노력해서 행위로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4절에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8장을 보면 사마리아 성에 복음을 전하는 사건이 나오죠. 빌립 집사님이 그 성에 복음을 전하니 그 성이 다 복음으로 큰 기쁨이 가득 찼습니다. 그 성 사람들이 다 놀라운 은혜를 입었고, 예루살렘에서 온 베드로와 요한이 거기에 성령 세례를 주는 장면들을 보고, 그 성에 있었던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돈을 드릴 테니 나에게 성령을 줄 수 있는 권한을 주십시오." 그러니까 베드로가 뭐라고 말합니까?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성령의 능력과 은사가 아닙니다. 즉 행위로 내가 뭔가를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성령의 은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일을 해서 그 대가로 주어진, 서로 주고받은 결과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1-3. 처음과 끝을 한결같이

그래서 바울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3절 다시 갈라디아서 3장 3절로 보시면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했습니다. 육체가 무엇입니까? 행위라는 뜻입니다. 값없는 성령으로 시작했는데 너의 행위로 일을 마치겠다고, 율법으로 끝내겠다는 뜻입니다. 시작은 잘했습니다. 위로부터 주시는 성령의 은혜로 시작을 잘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거기서 시작을 아주 잘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와서 행위로 뭔가를 끝내버리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