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특강 3 - 룻과 보아스 (룻 2:5-23)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 2:12)

지난 시간에 우리가 룻기 두 번째 공부를 했습니다. 룻기 말씀은 한 이름 모를 모압 여인 이야기인데,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이 여인이 어마어마하구나, 이 여인이 보통이 아니구나, 엄청나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본 것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우연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과연 우리 인생에 우연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하기 위해서 이삭을 주우러 갔는데, 그곳이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이었고,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왔습니다. 이것을 과연 우리가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을 보면 우연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었다는 것이 입증되는 사례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고백해야 그게 믿음이 되는 것이고, 우리 속에 있는 우연을 하나님의 섭리로 바꾸고 발견할 수 있어야 그것을 우리가 믿음이라고, 신앙의 성장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보아스와 룻의 만남

오늘 이야기는 보아스와 룻이 처음 만나는 장면입니다. 보아스와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좀 설레지 않습니까? 기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보는 사람이 두근거립니다. 우리는 결말을 다 아는데도 굉장히 설렙니다.

1-1. 특별한 첫인상

5절을 보시면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여러분 성경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셔야 됩니다. 보아스가 엄청난 부자이지 않습니까? 넓은 밭을 다 가지고 있고 엄청난 부자인데, 그곳에 일하는 사람이 한둘이었을까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일하는데, 그런데 왜 유독 룻 이야기만 묻겠습니까? 룻이 특별하고 탁월한 미인이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왜 이 여인에 대해서만 질문을 할까?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이런 질문표를 가지고 그다음을 봐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그 뒤에 답이 나옵니다. 6절에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 아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라고 사환이 말했습니다. 이 여인에 관한 이야기지요. 그런데 '모압'이라는 말이 자기도 모르게 사환의 입에서 두 번이나 반복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 마음속에는 이 룻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입니까? '이방 여인이다, 이방 여인이다' 이렇게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여인입니다" 이렇게 딱 규정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1-2. 룻의 저돌적 행동

자 그런데 이제 그다음이 재미있습니다. 7절을 보시면 "그의 말이"라 했는데, 누구의 말입니까? 룻이 이 사환에게 와서 부탁을 한 것입니다.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했습니다. 자, 우리가 이제 이것을 좀 이해하려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추수하고 밀 수확하는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자세히 보시면 베는 자가 따로 있고 묶는 자가 따로 있습니다. 느낌이 딱 오시죠. 베는 자는 주로 누굴까요? 남자들입니다. 저는 농사 안 지어봐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남자들이 베는 자들입니다. 앞에 가면서 남자들이 보리와 밀을 쭉 베고 지나가면, 그다음에 소녀들이 뒤따라가면서 그 단을 묶습니다. 옮기기 좋은 크기로 한 단 한 단 단을 묶습니다. 그러면 이 곡식은 베는 자가 따로 있고 묶는 자가 따로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지금 룻은 베는 자로 와 있습니까? 묶는 자로 여기에 와 있습니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이삭 줍는 자로 와 있습니다. 다 다릅니다. 베는 자도 아니고 묶는 자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삭은 언제 줍습니까? 벨 때입니까? 벨 때 주워 가면 됩니까? 안 됩니다. 쫓겨나지요. 자, 그리고 묶고 있는데 이삭을, 묶고 있는데 이삭을 주워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두들겨 맞겠지요, 이제 혼나겠지요. 자, 그렇다면 베고 묶고 단을 이렇게 쌓아 놓을 것 아닙니까? 그것을 나중에 타작 마당에서 털려고 나르면 그러면 이삭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이삭이 떨어지고, 저 귀퉁이에 지난주에 공부한 것처럼 아직까지 베지 않고 남겨 놓은 귀퉁이, 거기에 이제 이삭 줍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룻이 대담하게도 이런 부탁을 한 것입니다. 보십시오. 한번 더 "나로 베는 자를 따라" 즉 앞에 남자들을 따라서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이게 말이 됩니까? 남자들이 베고 있는데 뒤에 따라가면서 여자들이 단을 묶는데, 그 단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해 달라?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이 사환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신 나간 여자가 여기 와 가지고, 혼을 내 가지고 쫓아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보세요. 그다음에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다"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아스 눈에 보니까, 베는 자 있고 묶는 자 있는데 한 여인이 그 사이에서 부지런히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하면서 자루 하나 들고 그 사이에서 떨어진 이삭을 막 주워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눈에 띌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이 소녀가 누구냐?" 처음부터 무슨 짜고 치는 것처럼 그게 아니라 이 여인이 좀 독특하고 특별한 행동을 하니까 그게 눈에 띈 것입니다.

2. 베들레헴 공동체의 품성

2-1. 은혜가 먼저인 교회

자, 그렇다면 이 공동체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베들레헴 공동체, 지난 시간에도 공부했지요. 베들레헴 공동체가 어떤 곳입니까? 굉장히 품이 넓은 공동체입니다. 이것을 이해해 주는 것입니다. 수용해 주는 것입니다. "하라고, 그렇게 해보라고." 왜 그렇게 허락해 줬을까요? 다 아니까, 형편을 알고 처지를 알고, 이제 모압 지방에서 와서 뭣도 모른다는 것도 알고, 또 절박한 것을 아니까, 이 여인의 사정을 아니까요. 시어머니 봉양해야 되고 가진 것도 아무것도 없고 집에 남자들 다 죽고, 되레 이삭 줍는 사람들하고 같은 선상에서 같이 줄 서 가지고 하면 그것 하루 벌어서 하루 먹을 양식 나오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베들레헴 공동체가 이것을 허락한 것입니다.

우리 지난 시간에 공부했을 때 베들레헴 공동체는 교회 공동체 같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교회 오면 가장 먼저 뭘 배웁니까? 교회 오면 우리 초신자들이 교회 오면 뭘 배울 것 같습니까? 해서는 안 되는 것부터 배웁니다. "이것 교회 가면 그런 것 하면 안 돼." 그리고 또 해야 되는 것도 배웁니다. 해야 되는 것, 해서는 안 되는 것. 해야 되는 것 중에 제1번이 뭘까요? 헌금하라고 가르칩니다. 헌금, 일단은 빳빳한 새돈 준비해 가지고 봉투에 담아 가지고 바구니가 돌면 부끄럽지 않게 그냥 지나치면 안 되니까 거기에 넣든지 아니면 들어올 때 헌금함에 넣든지, 그리고 나야 어깨 펴고 밥 먹을 수 있다. 뭐 이제 이런 것을 배웁니다. 해야 되는 것. 그리고 해서는 안 되는 것도 배웁니다.

그런데 은혜는 언제 배웁니까? 하나님은 언제 만나고, 은혜는 언제 배우고, 예수님은 언제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은 언제 느끼고? 해서는 안 되는 것부터 배우고 해야 되는 것부터 배우면 그게 학교지 교회입니까? 학교입니다. 학교 가면은 선생님에게는 이렇게 하고 친구하고는 이렇게 하고. 그런데 교회는 학교가 아니고 사회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교회 가서 신앙 공동체에 갔는데 은혜는 하나도 못 배우고 말씀은 하나도 못 듣고, "아 오늘 내가 혹시 실수한 것 없나, 혹시 오늘 내가 잘못한 것 없나" 이것만 생각하고 죄책감과 자책감 다 가지고 그렇게 평생 사는 것이라면 그게 어떻게 교회입니까?

이 베들레헴 교회 공동체는 그런 데가 아니었습니다. 좀 규정에 어긋나고 엉뚱해요, 이 여자가. 그것 남의 집 추수 망치는 것인데, 그런데 허락해 줬습니다. "하라고, 그냥." 그랬더니 그것도 대충 하는 게 아니라 열심히 주워요. 열심히 열심히.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가 얼마나 무리했는지, 그때 내가 뭘 얼마나 몰랐는지, 아 이게 은혜였고 나를 용납해 줬구나 이 공동체가' 그것 깨닫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교회는 조금 눈감아주는 것도 필요하고, 이해해 주는 것도 필요하고, 별난 사람 튀는 사람 독특한 사람 희한한 사람 이상한 사람, 그런데 그분에게 은혜가 먼저 임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게 순서입니다. 그래서 가르치지 말라는 게 아니고 순서가 중요한 것입니다.

2-2. 열심히 하는 초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