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로마서 3장 21절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오늘은 로마서 특강 세 번째 시간입니다. 주제는 '하나님의 의'이며, 로마서 3장 말씀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로마서 1장과 2장을 아주 상세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함께 나눈 말씀을 듣고, 다시 혼자서 로마서 지난 말씀을 한번 꺼내 곱씹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새로운 세계가, 새로운 말씀의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곱씹어 보고, 그 말씀이 지시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문맥에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를 제대로 줄을 치고 살펴보신다면 로마서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로마서 3장 21절을 읽었는데, 21절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21절의 시작이 '이제는'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NIV 영어 성경에 보면 '그러나'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But now'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러나 이제는' 이런 말이 나오면 그 앞과 그 뒤가 정확하게 나뉘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로마서 3장 21절 이전은 어떤 일이 있고, 21절을 기준으로 그다음은 어떤 세계가 펼쳐지느냐? 율법의 세계가 21절 이전이고, 21절부터는 율법이 아닌 하나님의 의가 새롭게 펼쳐진다는 말입니다. 'But now', 그러나 이제는 현재형을 쓰고 있기 때문에 21절 이전은 율법이면서 과거의 세계, 21절 이후는 하나님의 의이면서 현재이고 미래적인 세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질문입니다. 유대인의 특권이 무엇입니까? 로마서에서 말하는 유대인은 말 그대로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 먼저 선택받은 선민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할례받은 민족을 의미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적용할 때 유대인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은 우리 자신을 가리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이 말씀이 훨씬 더 우리에게 적용되고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유대인의 특권이 무엇일까요? 1절과 2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롬 3:1-2)
유대인의 특권이 무엇입니까? 유대인이 보다 더 나은 것, 할례받은 자의 특권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 말씀을 맡았다는 것은 굉장한 특권입니다. 우리는 유대인이라고 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먼저 선택해서 하나님 자녀 삼아 주셨고 하는 등등의 이야기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바울이 말하는 유대인의 특권, 가장 중요한 특권은 '말씀을 맡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데,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선택받은 특권은 말씀을 맡은 자로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여기 '맡았다'라는 단어, 헬라어(ἐπιστεύθησαν, 에피스튜데산)는 '위임받다'라는 뜻입니다. 위임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은행에 본인이 가지 않고 부인이 가든 남편이 가든 가족이 가든 제삼자가 가면 위임장을 써줍니다. 나를 대신해서 이 사람이 이 일에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나를 본 것처럼 이 사람을 대우해 주십시오. 그것이 위임입니다. 그래서 여기 '맡았다'라는 말은 위임받았다는 뜻입니다. 원래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직접 전하시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먹이시는데,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먹일 사명을 하나님이 위임하셨다는 것, 그대로 전가하고 그대로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에피스튜데산'이라는 단어의 원형이 중요한데, 원형이 피스튜오(πιστεύω)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피스튜오라는 단어는 헬라어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 피스토스(πίστος)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피스토스가 '믿음'이라는 뜻입니다. 피스튜오라는 단어는 '신뢰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맡겨주신 이유는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희를 신뢰하노니 내가 너희에게 말씀을 맡겨 주노라." 사실 유대인들이 신뢰받을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절대로 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은 그들을 무조건 신뢰한다 하시고 그들에게 말씀을 맡겨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면 신뢰를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신뢰받은 존재는 그다음 어떻게 해야 됩니까? 타인들에게, 아직까지 말씀을 받지 못하고 듣지 못한 이방인들에게, 우리 주변의 이웃들에게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는 그러면 거기서 우리에게 적용해 볼 수 있겠습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께서 신뢰하셔서 말씀을 맡겨주셨는데, 과연 나는 이웃들에게 신뢰를 주는 존재인가? 어떤 존재입니까?
말씀을 맡았다고 해서 꼭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나 교회학교 교사나 구역 지도자나 그런 사람이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을 맡은 자는 하나님이 피스튜오, 신뢰하셔서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신뢰를 주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가르쳐서 신뢰를 주는 자가 될 수도 있고, 말씀을 보이고 살아내어서 신뢰를 주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들은 세상에 믿지 않는 자들에게 피스튜오, 신뢰를 주는 자들입니까? 아니면 신뢰를 깨뜨리는 자들입니까? "나는 저 사람 절대로 믿지 못하겠다. 나는 저 사람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눈빛 그것만 봐도 기분 나쁘다." 이런 마음을 준다면 우리는 절대로 믿지 않는 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자들이 됩니다. 그런 교회 공동체, 성도들이 모인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인데, 교회가 어떻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겠습니까?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신뢰를 주는 사람들이 모여서 신뢰를 베푸는 곳이 바로 교회 공동체입니다.
여기에는 특권과 의무가 함께 공존합니다. 말씀을 맡았다는 것은 특권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택해서 말씀을 맡겼으니까 특권입니다. 특권만 받고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나중에 책망만 받습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 5남매 7남매 9남매 줄줄이 자녀들이 있으면 장남에게는 대단한 특권이 주어집니다. 생선을 굽더라도 가운데 토막 아버지 드리고 그다음 토막 장남에게 얹어주고 그다음은 뭐 먹든지 말든지 그냥 던져놓습니다. 장남은 그런 대접과 그런 대우를 받고 가정에서 자라고 성장합니다. 왜 그렇게 대우할까요? 특권입니다. 장남이니까. 그런데 그 장남이 잘 되어서 동생들 돌봐주고, 동생들 가정 건사하고 챙기고, 부모님 효도하고 섬기라고 장남을 그렇게 대우하고 돌봐주고 섬겨주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 문화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