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9장 1-2절 말씀입니다.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며 베냐민 사람이더라.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오늘은 사무엘서 말씀 공부 세 번째 시간입니다. '사무엘과 사울'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본문은 사무엘상 7장에서 9장까지입니다.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자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보았듯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겼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고, 언약궤는 빼앗겼습니다. 언약궤가 블레셋 지경에 있다가 하나님께서 다곤 신상을 치시니 다곤의 목이 부러지고 손목이 부러졌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백성에게는 독종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돌려보냅니다.
벧세메스로 돌려보냈는데, 벧세메스 사람들이 호기심에 들여다보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그래서 기럇여아림이라는 곳에 언약궤가 방치되다시피 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 중심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사람들이 언약궤를 불길하게 여깁니다. 두려운 것입니다.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겁이 나고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공동체 중심이 아닌 저 구석 어느 시골 마을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방치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무엘이 역사의 전면에 전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언약궤가 돌아온 후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 사무엘이 등장하는 이 자리에는 엘리도 없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도 없습니다. 제사장 가문이 한순간에 모두 멸절당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 지은 죄 때문에 그들이 다 죽고 멸절당했지만, 사실 어른이 없다는 것은 굉장한 부담입니다.
사무엘은 아직 연소한데, 엘리가 실로에서 버티고 있었던 것만으로도 노인이고 어른이니까 그래도 마음의 위로는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죽었습니다. 그 집안 사람들이 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제 사무엘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어른이 없다는 것은 사무엘에게도 부담이고, 지켜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굉장히 불안한 일입니다.
게다가 언약궤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중심은 실로의 성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했습니다. 그 위대한 모세 시절을 거쳐서 여호수아를 거쳐서 가나안 땅에 정착합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언약궤를 메고 가나안 땅의 모든 성읍들을 하나하나 정복했습니다. 그때부터 수백 년 동안 하나님의 언약궤를 중심으로 실로에 모셔놓고 사사시대가 지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약궤가 지금 없습니다. 실로의 성소는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사무엘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고, 거기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은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4천 명이 먼저 죽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회개하지 않고 그다음 나가서 3만 명이 또 죽었습니다. 3만 4천 명의 성인 남자가 죽었습니다. 그러면 과부가 얼마나 생겼겠습니까? 아버지 잃은 자녀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스라엘은 완전히 초상집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무엘이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만약 여러분이 그 상황에 사무엘이라면, 제가 그 상황에 영적 지도자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완전히 초토화되고 집집마다 곡소리가 일어나고 하나님의 언약궤가 이렇게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런 상황이면 위로부터 해야 된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가정을 잃고 아버지가 없어지고 이 나라가 다 초토화되었는데, "우리 힘내서 한번 잘해보자" 하고 위로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무엘의 첫 번째 메시지가 이랬습니다. 7장 3절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위로하는 말씀이 아니라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똑같은 말이 표현만 바뀌어서 두 번 반복됩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전심으로"라는 말이 있고 "마음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너희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이들이 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지 않고 그저 겉모습으로만 실로의 성소에 나가서 예배드리고 거기 가서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예물을 받는 홉니와 비느하스 제사장도 하나님께 전심을 다해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는 사람들이었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엘리도 자녀들을 책망하는 아버지가 아니었습니다.
예배는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모든 공동체는 저 위의 대제사장 집안부터 다 영적으로 무너져 있으니, 그들에게 신앙 교육이란 있을 수 없었고 전부 다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의 첫 번째 메시지는 "마음을 세워라, 마음을 하나님께 합하여 돌아오라, 너희 마음 중심이 하나님께 바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모든 행동은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을 살펴야 하는데, 이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면 마음 따로, 행동 따로, 생각 따로, 말 따로 그렇게 가면 신앙이 이중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