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자가 나타나 (눅 1:9-17)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 아이슬란드라는 나라는 척박하기가 이를 데 없고 추위도 굉장한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역사에 기록되고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가 약 870년부터였습니다. 그런데 초기에 이 땅에 정착한 사람들은 이 땅이 굉장히 비옥한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지대 지역은 나무의 키가 작아서 나무를 벌목하고 정착하며 집 짓기에 좋았기 때문입니다. 고지대에는 목초지가 많아서 양이나 짐승을 목축하기에 굉장히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정착자들은 그들이 원래 살던 곳에서 하던 방식대로 나무를 베고 벌목을 하고 집을 지었습니다. 양 떼와 염소 떼를 풀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무를 베었는데 더 이상 나무가 자라지 않았습니다. 양들을 풀어서 목초지에 풀을 뜯어 먹게 했는데 더 이상 풀이 자라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방법 저 방법을 다 써 보아도 자기들이 살던 지역의 생태계와 너무 달랐습니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그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화산재가 날아와서 토양 위에 쌓였기 때문에 그 토양이 굉장히 얕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토양이 얕으면 생태계 복원력이 그만큼 떨어집니다. 그래서 그들이 살던 고향 땅과는 너무나 다른 땅이었습니다. 그걸 알 턱이 없는 그들은 약 천 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했습니다.

열심히 씨 뿌리고 안 되고, 절망하고 포기하려고 했다가, 그다음 세대가 또 하고 또 안 되고, 가난해지고, 사람들은 죽고 그 지역을 떠났습니다. 그러다가 약 19세기 말쯤에 와서 그들은 이제는 농업을 포기하고 어업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때부터 20세기까지 그들은 탁월한 어업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섬나라 아닙니까? 둘러보면 전부 다 바다입니다. 배만 만들어서 띄우면 얼마든지 나가서 물고기 잡아와서 먹고살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 그 나라의 1인당 국민 소득이 약 8만 5천 달러 정도 됩니다. 그리고 전 세계 7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정답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미 우리가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기 싫어서, 귀찮아서, 인정하기 싫어서 그 길을 가지 않을 뿐입니다. 다 알고 있는데, 이미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친 바다로 배 띄워서 나가기 싫어서, 어쨌든 그곳에서 정착하고 살고 싶어서 그들은 천 년의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항상 일어나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십시오.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을 살았습니다. 뒤죽박죽인 인생이 된 사람도 아마 있을 것입니다. 제대로 한번 해보려고 일을 하는데 그 일이 또 다른 문제를 낳고, 그 문제가 또 다른 얽히고설킨 문제를 낳습니다. 잘해 보려고 하는데 잘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일수록 정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기본을 지키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립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가랴가 우리에게 그 답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1. 예배는 모든 것에 선행한다

1-1. 사가랴의 예배 사역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제사장 가문의 사람들입니다. 지식인입니다. 어려서부터 그들은 역사 교육을 잘 받았습니다.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그 민족의 역사와 과거는 어떠했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나라가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정치적으로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고 에돔 사람 헤롯의 압제 치하에 있습니다.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주님 앞에서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모든 계명과 규례를 잘 지키고 흠 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의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의인이라면 소박한 작은 소원 정도는 들어주셔야 되는데 가정에 자녀가 없습니다. 소원 성취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제사장의 직무를 성실하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오늘 본문이 알려 줍니다. 9절과 10절을 보십시오.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좀 쉽게 말하면 제사장이 예배를 인도했다는 뜻입니다. 사가랴 제사장이 예배를 인도하고, 백성들은 그 앞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제사장이 예배를 집례하고 인도합니다.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 앞에서 열심을 다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살아 숨 쉬는 그 공간, 귀하고 아름답지 않습니까?

1-2. 열심당의 비난과 예배의 우선순위

그런데 오늘 우리의 시각은 그렇지만, 그 옛날 그 자리에 있었던 유대인들 중에는 이것을 굉장히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 젤롯(ζηλωτής)이라고 하는 열심당원들이 있습니다. 가슴에 칼을 품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의 독립을 위해서 이 한 목숨 바친 자들입니다. 예수님 시절에도 열심당원들이 꽤 많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들의 시각에서 볼 때 이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한심해 보였습니다.

"지금 너희가 한가롭게 예배나 드리고 있을 때냐? 지금 너희가 성전에서 기도나 하고 있을 때냐? 제사장들이여, 너희들은 백성들을 이끄는 지도자들이니 일어나서 혁명을 하자. 얼른 일어나서 로마를 향하여 전진하고 에돔 사람 헤롯을 전복하고 우리 민족의 독립을 성취해야 되지 않겠느냐?" 열심당원들은 그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냥 이렇게 있는 사람들을 굉장히 무기력하고 능력 없는 사람으로 폄하했습니다. 그런 시각들이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 사가랴와 그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열심당원들이 그렇게 말하는 역사적 교훈, 역사적 배경도 있었습니다.

기원전 167년부터 기원전 142년까지 유대인들은 셀류쿠스 왕조를 향하여 독립 전쟁을 벌였습니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가 너무 강력하게 압제를 하니까 견딜 수 없어서 유대인들이 셀류쿠스 왕조를 향하여 들고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혁명을 이끈 가문이 마카비 가문이었는데, 그 가문은 바로 제사장 가문이었습니다. 그 혁명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되찾았습니다. 기원전 142년에 유대인들이 독립을 했습니다. 100년 동안 그 독립된 나라가 존속했습니다. 이른바 하스몬 왕조가 100년 동안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로마가 그 이후에 일어나서 그 왕조도 다시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 열심당원들은 제사장 집단이 그 일을 이끌었다는 데 의미를 두었습니다.

"너희들은 영적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이끌고 거리로 나가서 전투하고 백성들과 함께 맞서 싸워야 되는 존재들 아니냐? 지금 이 시국에 무슨 예배냐?" 그런 시각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들의 말이 헷갈리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야 될 것 같은데, 그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종과 우리의 처지와 우리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이런 것 다 제외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되는 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우리 인간으로서 가장 우선순위로 해야 된다고 명시적으로 기록해 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안식일에 쉬셨습니다. 안식일을 하나님은 규정해 주셨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고 복되게 하셨습니다. 십계명에도 안식일 규정이 있습니다. 그 말은 안식일에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라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떤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앞서야 되는 것이 예배입니다. 모든 것은 예배 그다음 그다음에 있는 것입니다. 남유다가 왜 망했습니까? 돈이 없어서, 실력이 없어서, 군사력이 약해서 망했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성전 신앙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성전을 불태우시고 그 성전의 모든 기물들, 모든 금은보화들을 다 약탈당하게 하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왜 망했습니까? 의인 10명, 예배드릴 만한 10명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노아 홍수 사건이 왜 일어났습니까? 예배 공동체가 붕괴되어서 일어난 것 아닙니까? 예배드리지 않는 백성, 하나님 앞에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 예배를 하나님께 경홀히 여기는 백성을 하나님은 심판의 대상으로 삼으십니다. 그다음 그다음이 있는 것이지, 예배는 모든 것에 선행하는 하나님 자녀의 가장 중요한 의무이자 목적입니다. 그것을 사가랴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시위가 벌어집니다. 큰 소리가 들립니다. "지금 당장 제사장들은 나와서 거리로 쏟아져 나오라. 백성들을 이끌고 나서라." 그런데 그는 먼저 해야 될 일이 예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백성들은 그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 없어서 망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백성들은 예배가 무너지면 그냥 다 망하는 것입니다.

2. 신실한 예배자에게 임하는 영광

2-1. 주의 사자가 나타나심

이렇게 성실하게 예배드리는 사가랴, 그리고 그의 백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1절과 12절을 보십시오.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서니라.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주의 사자가 향단 우편에 나타나셨습니다. 사가랴가 놀랐습니다. 더 나아가서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대단히 역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유다의 요아스라는 아주 훌륭한 왕이 계셨습니다. 요아스는 선정을 베푼 왕입니다. 그런데 그를 자식처럼 잘 길러 주었던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 있을 때까지만 그러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고 난 이후에 요아스는 사람이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