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6-20
세종대왕은 우리 민족의 가장 위대한 성군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한글 창제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위한 수많은 업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런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 얼마나 성실하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요? 우리가 가히 상상해 보면 엄청난 시간과 공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분은 늘 새벽 5시에 기상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꼭 세 번의 만남을 가졌는데, 아주 중요한 만남들이었습니다.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에는 윤대라고 이름하는 만남을 가집니다. 즉 돌아가며 독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왕이 독대를 한다고 하면 정승이나 판서 정도를 만날 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왕은 그 부서의 실무 책임자들을 만났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4급 서기관, 5급 사무관 정도의 실무 책임자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왕이 물어봅니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내가 임금으로서 이 일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합니까? 혹시 일하다가 어려운 일은 없습니까? 당신이 일하고 있는 부서에서 비리나 척결해야 될 일들은 없습니까? 이렇게 실무자들을 불러놓고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독대하고 묻기 시작하면 그 부서를 이끌어가는 정승이나 판서 입장에서는 굉장한 부담을 가질 것입니다. 비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그 부서는 말하지 않아도 조직의 기강이 함께 서 갈 것입니다.
오후가 되어서 오후 1시에서 3시에는 주로 경연을 가졌습니다. 조선의 모든 왕들이 경연을 가졌지만 이 세종의 경연은 여느 왕의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국가가 추진하고 있는 거대한 프로젝트나 아주 중요한 일들의 전문가 집단들을 다 모았습니다. 대신들이나 국가적으로 다 퍼져 있는 사람들 중에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다 모아서 함께 의견을 듣고 지혜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함께 열어놓고 대화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 일이 잘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세종 자신도 전문적인 식견을 준비하고 나와야 되는 건 당연한 사실입니다.
저녁이 됩니다. 밤 10시부터 11시 사이에는 구언을 듣습니다. 구언이라고 하는 것은 국가의 재난이나 위기가 닥치면 백성들을 불러서 백성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백성이 나와서 자기 동네 농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임금님, 우리 동네 한 농부가 있는데 그분은 참 이상하게 농사를 잘 짓습니다. 가뭄이 드는 해가 있어도 그분의 논에는 경작이 아주 소출이 넘쳐나고 이상하리만큼 농사가 잘 됩니다. 그분을 한번 만나보십시오.
그분을 불러오라 하여 데려왔습니다. 임금이 묻습니다. 너희는 어떻게 그렇게 농사를 잘 짓느냐고 물어보니 그 농부가 이렇게 말합니다. 외람되지만 관아에서 나리들이 가르쳐주는 대로 저는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그보다 조금 더 일찍 파종하고 조금 더 일찍 물을 대고 그렇게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세종이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조선에 나와 있는 농사를 가르치는 책들은 모두가 중국의 책들을 그대로 베껴온 책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중국의 자연환경과 이 나라의 자연환경이 같을 리가 없는데 그걸 그대로 가져다가 백성들에게 농사를 가르치니 농사가 잘 될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때부터 관리들을 시켜서 전국 방방곡곡에 농사 잘 짓는 아주 농사의 전문가들을 찾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분들을 다 만나서 하나하나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 이 땅에 맞는 농법을 정리해서 내놓은 책이 농사직설이었습니다. 농사직설 그 책이 나오고 나서 모든 한반도 이 땅에 있는 농민들의 삶이 한층 더 윤택해지고 좋아졌음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세종이 모든 사람들을 만나고 행한 일들을 보면 현장 중심의 실무형이었습니다. 절대로 현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현장은 복잡한 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문제가 일어나고 사고가 터지고 사건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있는 곳에 반드시 해결의 실마리도 있습니다. 세종은 그 일을 늘 염두에 두고 현장에 있는 백성들을 만나고 문제를 해결하기에 골몰했던 위대한 성군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본문에도 예수님의 사역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3년 공생애 기간을 보면 예수님도 현장을 단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주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 주의 백성들이 함께하는 그 자리를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분들과 함께 먹고 함께 마십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문제를 직접 손수 해결해 주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입니다.
오늘 이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제자의 자격에 합한 자를 방을 붙여놓고 이 자격에 합한 자는 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직접 찾아가셨습니다. 현장에 가서 예수님 마음에 합한 자를 직접 주님이 불러내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나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합당한 제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인지, 혹 나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이 있는지 우리 자신을 함께 돌아보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먼저 오늘 말씀 16절을 보겠습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절도 보겠습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예수님이 첫 번째 제자 4명을 부르셨습니다. 그 첫 번째 두 명, 즉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실 때 그들은 그물을 열심히 갈릴리 호숫가에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두 명, 즉 요한과 야고보를 부르실 때 그들은 찢어진 그물을 하나하나 한 땀 한 땀 깁고 있었습니다. 이 네 분은 성실하게 자기 삶의 현장에서 그물을 열심히 던지는 자들이었고, 그물을 열심히 깁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 않겠습니까?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었던 사람들, 그물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열심히 마음을 다해 던지는 사람도 있었을 테고, 던지기는 던지나 영혼 없이 할 수 없이 던지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그물은 가지고 있으나 던지기 귀찮아서 일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물을 깁는 사람들도 꼼꼼히 열심히 깁는 사람,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열심히 깁지 않고 있는 사람, 아예 찢어진 채로 그냥 방치하고 있는 사람, 수많은 사람들이 갈릴리 호숫가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