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 이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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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Y5Rfs_uEbU?si=th6gobjP--kmyTBZ

서해에게 두 살 위의 오빠가 생긴 건 삼 년 전의 겨울이었다. 그때 서해의 나이가 열일곱이었다. 이제 와 서해가 밟는 발자취는 스무 살의 자락으로. 사춘기가 애매하게 지난 해에 이어진 아빠의 재혼. 아빠가 누구를 만나겠다는데 자신의 의지 같은 게 의미가 있나. 그렇게 정신을 차릴 때에 서해의 행선지는 과천에서 서울로.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가족과 함께. 서해가 열일곱 살이던 때에 오빠는 열아홉이었다. 운동을 했었다더라. 성격이 못된 애는 아닌데, 모난 구석이 있을지도 몰라. 서해 네가 이해 좀 해 줄 수 있을까. 아줌마가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많이 거부했거든. 이제 와 고등학생이 된 서해에게 낯선 이의 부탁은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처음 식사 자리를 하던 날에 자리를 한 건 서해뿐이었다. 오빠라던 사람은 그날 자리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민망해하던 아줌마, 아니, 이제 와 새엄마의 얼굴이 서해에게 스쳐 흘렀다. 약소하고도 빠르게 이어진 두 사람의 재혼. 어려울 테니까... 아줌마라고 불러 주겠니. 그 말에 서해는 아무렇지 않게 호칭을 발음했다. 엄마, 하고. 서해가 태어나기를 기억이라는 걸 쥘 때에 엄마의 기억은 존재해 본 적 없어서. 그래서 엄마라는 호칭의 무게 같은 건 알지 못했다. 말 그대로 감정의 유무가 존재하지 않는 의미 없는 부름일 뿐. 서해의 호칭에 도리어 당황하는 건 새엄마였다. 그럼에도 낯선 감각을 숨기고 서해를 향해 다정히 웃어 보이는 일. 서해의 손을 느리게 쥐던 손길에서 이유 모를 감정을 경험했다. 그때에 서해의 손을 쥐는 모습을 뒤로 자신 몫의 리빙박스를 옮기던 형체. 서해는 중년 여성의 손길을 처음 경험해 봤었던 일. 그렇기에 이유 모를 감정을 겪고, 때때로 그 감정에서 벗어 나야겠다는 충동을 겪을 때. 엄마, 하고 발음하던 서해를 바라보던 시선. 감정의 변화 없이 서늘한 것이 서해를 향했다. 서해와 마주치던 시선에서 생각하는 일. 자신의 엄마를 향해 엄마, 하고 발음하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얼굴을 제대로 마주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마치 무의미한 것을 바라보던 무념 섞인 시선이 공명했다. 계단에 오르는 건 그렇게였다.

어린 시절 제 어미의 죽음을 경험한 서해는, 엄마라는 존재를 경험해 본 적 없었다. 그래서 어미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 같은 건 제대로 알지 못했던 일. 이제 와 자신의 모를 자처하는 정희를 향해 애써 친근히 굴었다. 때때로 유년 시절부터 남아 있을지 모르는 결핍이었다. 정희는 자신의 친모가 아니었으니, 서해가 어떻게 굴더라도 웃으며 받아 주었다. 어린 날의 서해는 그렇게 생각했다. 서해가 먹고 싶은 게 생긴다면 정희는 언제나 서해를 우선으로 음식을 만들어 주고, 음식을 주문해 주었다. 서해의 위로 열아홉을 자처하는 자신의 친아들을 두고도. 서해는 차츰 정희가 자신을 향해 제공하는 행동에서 마음을 놓았다. 선은 놓여 있을 테지만, 이유를 모르게 빠져만 가던 결핍이 채워지는 기분이었기에. 재혼 이후 서해의 첫 생일. 유명 브랜드에서 파는 고가의 지갑을 정희에게 선물로 받았었다. 눈을 깜박이던 서해는 다음날이 되어서, 등교하기 직전에 지갑을 바꿨다. 정희가 선물해 준 것으로. 새로운 지역. 이전의 서해를 모르는 아이들. 서해에게 태초부터 어미가 있었다고 생각할 아이들. 친구들을 따라 매점을 향하던 때. 서해 지갑 예쁘다! 누가 줬어? 입술을 쉽사리 떼지 못하던 서해가 발화했다. 그, 엄마가. 와, 우리 엄마는 이런 거 절대 안 주는데! 너희 엄마 대박이다. 어쩌면 오전에 지갑을 바꾸던 순간부터 이 모습을 기대했었을까. 서해가 매점에서 나오던 찰나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잘생겼다, 그치. 과천에서 피겨 했다가 서울로 올라온 거래. 때에 따라 몸이 굳는 건 반사적인 것이었다. 들었을까. 서해의 의문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시선은 여전히 무념 속으로. 서해의 존재마저 인지하지 않은 시선은 저 너머로 향했다. 마치 인지할 생각조차 없다는 것처럼.

졸업식. 서해가 열여덟의 반열에 오르고, 누군가는 스무 살에 오를 때. 아무도 가족인지 모르는데... 가야 돼요? 내뱉고도 실수라는 걸 깨달았다. 객관적인 사실을 나열한다는 것이 정희의 감정을 짚지 못했다. 정희의 얼굴은 변화 없이 웃었다. 두 사람 아직 안 친하지. 괜찮아. 엄마랑 아빠만 다녀올게. 서해 공부할 때 먹으라고 간식 테이블 위에 올려 뒀으니까 먹으렴. 카드 두고 갈 테니까 저녁 먹고. 계단을 오르고 방으로 향하던 서해의 발걸음이 멈췄다. 시선은 여전하게 낯선 방문으로. 일 년의 시간. 그 어떠한 대화도 나눠 본 적 없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관계였다. 구태여 음성조차 제대로 들어 본 적 없었고, 핸드폰에 저장돼 있는 열한 자리 숫자마저 정희를 통해 원치 않게 얻은 것이었다. 말마따나 머리가 전부 자란 이후에야 생겨 버린 새로운 가족. 부모에게 반발심을 지니고 싶지 않다면 척이어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서해와 다르게 그러지 않았던 일. 척이어도 서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 아닌가, 아니려나. 그저 서해라는 존재를 삶에 있어 지우는 것뿐일까. 아빠한테는 잘하잖아. 전부 떠나 굳이 가까워지기를 바란 적도 없었다. 반복적인 학습이 끝난 이후에야 아이패드의 전원을 끄는 것과 동시에 침대에 몸을 눕혔다. 스테이크 썰려나. 좋은 대학 갔다고 들은 것 같은데. 솔직히 부럽다. 나는 언제 스무 살이 될까. 정희가 준비한 간식은 먹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까무룩 잠에 들었다. 찰나에 무언가 깨지는 소리. 꿈을 꿨나, 내가. 잠에서 깨어날 때에 서해의 책상 위로 백화점에서 사 온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새벽 시간. 잠에 든 서해를 위해 정희가 두고 간 것이었다. 눈을 깜박이던 서해가 방을 나섰다. 서해가 사용하는 2층의 복도에는 작은 냉장고가 존재했다. 그 옆에 놓인 작은 정수기. 물을 마시기 위해서. 목을 축이다가도 2층 복도와 이어진 테라스로 시선이 향했다. 그곳은 서해의 방과는 거리가 멀었다. 누군가의 방과는 가까운 것이었다. 구태여 출입한 적 없었던 걸음이 그제야 충동적으로 향했다.

때에 따라 새벽에서 가장 밝은 것은 달빛이었으며, 그것과 닮아 있는 창백한 피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