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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제7권. 아직까지 미스터리 내공이 얕아 스칸디나비아 미스터리는 세 종류 (마르틴 베크, 해리 홀레, 밀레니엄) 밖에 읽어보지 못했는데, 개인적 취향으로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가장 마음에 든다. 해리 홀레가 신대륙의 하드보일드를 변주했고, 밀레니엄은 서스펜스 위주라면 마르틴 베크의 서술은 담담하다 (는 것이 내가 세 시리즈 각각에 가진 인상이지만, 미스터리 마니아라 하기에 한없이 부끄러운 사람이 하는 말이니 별 가치는 없다).

읽으면서 이 소설이 1970년대에 집필된 것임을 의식적으로나마 계속 상기했는데, 첫째로 이 소설이 그려내는 스웨덴 사회의 모습을 (인터넷의 부재와 몇 년 전에 우편번호가 도입되었다는 것과 같은 몇몇 흔적들을 제외하면) 무심코 현대의 스웨덴으로 생각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며 (소위 말하는 구미 국가들에 대한 “국가통”을 느낄법한 지점이기도 하다), 또 그와 동시에 지금의 유럽 사회가 표면적으로나마 거리를 두려 하는 그네들 공동체의 폭력성·군사주의적 색채를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작중에서 스웨덴 경찰의 반대항—스웨덴 경찰 자신들이 품고 있는 문제를 일찍이 직면했고 해결한 롤 모델—로서 영국 경찰이 계속 언급되는 것이 유럽의 근대화 후발 주자들이 “서구의 서구”에 품는 양가감정을 드러내고 있다고 여기면 과잉 해석일까.

소설 자체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마르틴 베크는 (어찌 보면 지리할 정도의) 수사 과정에 비하여 해결부의 클라이맥스는 약한 느낌. 상술했던 담담함의 근원이기도 하고, 작중에서 다뤄지는 사건이 “특별한 비정상”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경찰서에 흘러 들어가는 사건 중 하나, 우리의 일상 뒷면에 분명히 존재하는 폭력 중 하나라는 인식을 형성한다. 사건의 해결은 사건의 해결일 뿐, 드라마틱한 변화를 수반하지는 않는다. (특히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추리소설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저자들이 이름 붙인 대로 “범죄소설”이라는 장르가 조금 더 어울릴 특징이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마르틴 베크를 읽을 때마다 스칸디나비아에서 살고 싶어진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이하는 소설 내 문장 인용.

“…그들이 왠 이름 모를 잡지에 선전문을 쓰는 대신 이 책이 7권에 해당하는 열 권의 범죄 소설을 씀으로서 자신들의 견해를 밝혔다는 사실이다. 저자들은 원래 시리즈 전체에 ‘범죄 이야기’ 라는 부제를 붙여두었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라고도 볼 수 있는 저 부제에는 이중의 의미가 있다. 일단은 열 권의 소설이 범죄소설이기 때문이고, 시리즈 전체는 힘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들을 대하는 방식 자체를 범죄로 본 저자들의 고발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 서문. 8페이지.

“가증스러운 사회학자들에게는 성역이 없었다. 심지어 어느 스웨덴 연구진은 영국 경찰의 신화를 깨부수는 데 성공하여 그들에 대한 인상을 현실화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무기를 소지하지 않는 영국 경찰이 다른 몇몇 나라의 경찰에 비해 폭력적인 상황을 만드는 비율이 낮다는 걸 보여준 거였다. 덴마크 당국도 이 사실을 깨달아서, 이제 덴마크 경찰관들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무기 소지가 허용되었다.

하지만 스톡홀름은 그러지 않았다.”

– 91페이지.

“하지만 마르틴 베크는 오랜 경험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고, 장기적으로는 소득이 있는 작업이라도 처음에는 거의 모두 무의미해 보인다는 것도 알았다.”

– 173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