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여름의 한낮을 9살의 딸과 그 아버지가 함께 보낸다. 방학을 보내는 콘도는 1층짜리로, 잘 정돈된 잔디가 깔려있는 마당은 붉고 넓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다. 다른 누군가는 보이지 않고, 해는 머리 바로 위에 떠 있다. 어머니는 잠시 외출을 하였다. 딸과 아버지는 어떻게든 그 더운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아버지는 딸에게 장난감 화살놀이를 제안한다. 시리얼 상자 위에 플라스틱 컵을 올려 목표물을 만든다. 고무로 된 촉이 날아갈 수 있는 거리를 잰 뒤 그 곳에 목표물을 두고, 차례대로 화살을 쏜다. 아이는 처음에 서툰 자세로 화살대를 쥐다가, 점차 익숙하게 시위를 당긴다. 목표물을 맞히게 되는 횟수가 늘어남과 동시에 실증을 느낀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다. 왜냐하면 더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도 반복되는 빗겨감과 맞춤, 유치한 게임의 승과 패에 일일이 반응해 주는 것에 지쳐간다. 그는 이내 가위바위보를 멈추고, 아이가 계속 화살을 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뒤에 있는 테라스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얇은 고사리 팔이 쏘아 날린 ‘탁’ 소리와, 연거푸 피워진 담배의 냄새, 그리고 뜨거운 정오의 시간이 목 뒤에 맺힌 땀방울의 따가움 사이로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