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SAP Emarsys, Customer Loyalty Index 2025

조사 기간: 2025년 6월 5-12일

대상: 미국·영국·독일·호주·대만 10,006명 (16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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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돌아가던 그 가게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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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서울 어느 동네 빵집에서 겪은 일입니다. 십 년 넘게 다니던 곳이었죠. 주인 할머니는 제가 들어서면 말없이 소금빵 세 개를 봉투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주문하기 전에요. 어느 날 그 가게가 문을 닫았습니다. 재개발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다른 빵집을 찾았고, 거기서 앱으로 주문하고 포인트를 적립했습니다. 할머니는 제 이름을 알았지만, 앱은 제 구매 히스토리를 압니다. 무엇이 더 친밀한 관계일까요? 2025년 SAP Emarsys가 발표한 Customer Loyalty Index는 이런 질문에 대한 통계적 답변처럼 읽힙니다. 지난 5년간 꾸준히 상승하던 '진성 로열티(True Loyalty)'가 처음으로 감소했습니다. 34%에서 29%로, 5%포인트. 그 자리를 '트렌드 로열티(Trend Loyalty)'라는 새로운 범주가 채우고 있습니다. 단골이라는 사회적 관습이 해체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여전히 68%가 "특정 브랜드에 충성한다"고 답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한 걸까요? 충성의 내용이 아니라 충성의 형식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를 선택하지만, 그 선택의 논리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신뢰·사랑·헌신에 기반한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충성. 많은 브랜드가 지향하는 ‘로열티의 성배’로 묘사

사회적 영향·바이럴·문화적 모멘텀에 의해 생기는 단기적·기회주의적 충성. 유행이 식으면 빠르게 약화되기 쉬움

트렌드라는 이름의 순간적 공모

보고서가 새롭게 정의한 '트렌드 로열티'는 기묘한 현상을 포착합니다. 15%의 사람들이 TikTok에서 바이럴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제품을 삽니다. 20%는 그것이 트렌드라는 사실 자체에 감정적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29%는 트렌드가 끝나면 처음의 집착은 어디갔냐는 듯 급격히 흥미를 잃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짧은 주의 지속 시간이나 세대적 특성으로 치부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여기서 새로운 형태의 집단성을 봅니다. 바이럴은 현대판 구전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마을 사람 열 명의 추천 대신 모르는 십만 명의 조회수가 신뢰를 구성한다는 점입니다.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는 1973년 논문 "약한 연결의 힘"에서 이미 이런 현상을 예견했습니다. 당신이 잘 아는 다섯 명보다, 당신이 모르는 오백 명의 행동 패턴이 더 강력한 정보가 될 수 있다고요. TikTok은 이 원리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인프라입니다. 100만 조회수는 100만 개의 약한 연결이 만든 집단 지성—혹은 집단 충동—의 가시화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형성된 충성은 공중에 떠 있는 듯합니다. 19%는 바이럴이면 더 신뢰한다고 하고, 16%는 광고나 제품 리뷰보다 SNS 트렌드를 더 믿습니다. 그런데 그 신뢰는 지반이 없습니다. 오늘의 트렌드는 내일의 알고리즘 변경 한 번에 피드에서 사라집니다. 우리는 영속을 가정하지 않는 충성을 실천하고 있는 겁니다.

64%의 침묵, 혹은 브랜드의 투명화

더 놀라운 수치가 있습니다. 64%의 소비자가 구매할 때 브랜드명을 아예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브랜드명이요. 20세기 내내 기업들이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각인시킨 바로 그 이름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일종의 실용적 허무주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선택지, 너무 많은 정보, 너무 투명한 생산 과정. 역설적으로 완벽한 투명성이 브랜드를 투명하게—즉 보이지 않게—만든 것 아닐까요.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했듯 브랜드는 현대의 신화였습니다. 나이키는 그리스 승리의 여신, 애플은 에덴동산의 선악과. 그러나 신화가 작동하려면 거리가 필요합니다. 제단과 신도 사이의 거리, 스크린과 관객 사이의 어둠.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우리는 제조 공장의 실시간 라이브 스트림을 보고, CEO의 사생활을 Twitter에서 추적하며, 제품 결함을 Reddit에서 집단적으로 해부합니다. 신비가 해체되면 신화는 상품 목록으로 전락합니다. 64%의 침묵은 어쩌면 탈신화화된 세계에서 살아가는 소비자의 실용적 선택일지 모릅니다.

개인화라는 거창한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