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경제학자 스테파노 자마니(Stefano Zamagni)는 시장경제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전체선(total good)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선(common good)을 지향하는 시민(사회적)경제다. 이 구분은 단순한 개념상의 대비가 아니라, 오늘날 사회연대경제 정책이 어떤 방향을 향해야 하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자마니에 따르면 전체선이란 사회 구성원 각자의 선을 모두 더한 총합이다. 이 논리에서는 일부의 후생이 0이 되더라도, 다른 누군가의 이익이 이를 상쇄해 총합이 커지면 사회 전체는 발전한 것으로 간주된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익숙한 공식이 바로 이 전체선의 사고방식이다. 반면 공동선은 다르다. 공동선은 모두가 함께 누리는 선이며, 한 사람의 선이 무너지면 전체의 선도 함께 무너진다. 전체선이 덧셈의 논리라면 공동선은 곱셈의 논리다. 단 한 사람이라도 배제되면 결과는 0이 된다.

<그림 1> 전체선과 공동선 (제작: NotebookLM)

<그림 1> 전체선과 공동선 (제작: NotebookLM)

예를 들어, 한 지역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대거 창출되어 평균 소득이 크게 상승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그 과정에서 돌봄 공백이 발생해 노인과 장애인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주거비 상승으로 일부 주민이 지역을 떠나야 했다면, 전체선의 관점에서는 “총량이 늘었으니 성공”으로 평가될 수 있다. 반면 공동선의 관점에서는 단 한 집단이라도 삶의 기본 조건이 무너졌다면, 그 성장은 결코 성공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 구분은 단지 철학적 논쟁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걸어온 성장 경로는 분명 전체선의 논리에 가까웠다. 고도성장기 동안 총량의 확대는 정당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불평등과 지역 붕괴, 취약계층의 희생은 ‘불가피한 비용’으로 처리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양극화와 사회적 분절은 이 전체선 중심 발전 모델의 후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등장한 것이 사회연대경제이다.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 소셜벤처 등은 이윤의 극대화보다 사람과 관계,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우선하며, 자마니가 말하는 공동선 지향 경제의 실천적 형태로 평가할 수 있다. 사회연대경제는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보조 장치가 아니라, 경제의 목적을 ‘총합의 성장’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의 유지와 회복’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였다.

<그림2> 공동선 지향 경제로서 사회연대경제 (제작: NotebookLM)

<그림2> 공동선 지향 경제로서 사회연대경제 (제작: NotebookLM)

그러나 이를 육성한다는 지금까지의 정책이 과연 공동선을 구조적으로 키워내고 있었는가를 생각해본다. 오히려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비교 가능한 성과로 환원하는 방식에 더 익숙해져 있던 것은 아닐까. 이를테면 사회적기업의 매출과 고용 규모가 크게 증가했지만, 그 성과가 특정 유형의 인력이나 특정 영역에만 집중되고, 가장 취약한 집단의 접근성은 개선되지 않았다면 이는 전체선의 확장에 가깝다. 반대로 매출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돌봄·주거·에너지와 같은 필수 영역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사회적 위험을 함께 분담하는 구조가 작동했다면, 이는 공동선의 실현에 더 가까운 성과라 할 수 있다.

최근 사회연대경제 정책이 다시 활기를 띠면서 이러한 지점이 다시 우려스럽다. 사회적 가치를 점수나 금액으로 환산하고 이를 재정 지원과 연결하려는 접근은 정책 집행의 명확성을 높일 수는 있으나, 자칫 사회연대경제를 전체선을 확장하기 위한 또 하나의 정책 수단으로 되돌려 놓을 위험을 안고 있다. 공동선이 “얼마나 많은 가치가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으로 환원되는 순간, 사회연대경제는 다시 성과 경쟁과 효율 중심의 논리 속으로 흡수되고, 본래의 문제의식은 흐려질 수밖에 없다.

자마니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연대경제의 목적은 전체선의 총량을 키우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어느 누구도 0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사회의 바닥을 지탱하는 것이다. 돌봄·주거·의료·에너지와 같은 필수 영역에서 공동체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가, 사회적 위험이 개인에게 전가되지 않고 함께 분담되고 있는가, 바로 이러한 질문이 정책 성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